[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부활이다.
마치 내 입으로 첫 숨을 쉬는 그날처럼 새롭게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의 느낌.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설레임.

부활은 그런 것일까?
어쩌면 그것보다 더 벅찬 감동과 기쁨이 있으리라.
어두운 동굴을 통과한 뒤 느끼는 빛의 고마움처럼.

오늘 누가 무덤 안에 갇힌 사람인가?
빛을 잃은 사람인가?
오늘 누가 빛을 누리는 사람인가?
빛 속에서 가슴을 열어젖혀 태양을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인가?

세월호 1주년을 맞으면서, 내가 사는 원주에서도 주교님과 함께 4월 16일에 미사를 바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감영 앞에 늘 있는 작은 천막에 한 번도 발길을 들여놓지 못한 나로서는, 이렇게 기억하도록 초대해 주는 시간이 고맙다.

매일 저녁기도 때 다음날 기억하는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을 미리 기도 속으로 초대하지만, 내가 직접 당한 일이 아니다 보니, 희생자들의 가족들만큼 가까이 그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 미안하다.

그들은 얼마나 이 부활절에 자신의 아들딸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준비 없이 보낸 사람들이 갖는 아픔을, 그것도 사고로 잃은 아픔을 어떻게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십자가 아래 서 계셨던 성모님은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을 두 눈을 뜨고 지켜보아야 했다. 조금씩 더 가까이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늘어지는 몸을 가슴으로 느껴야 했다.

그런데도 ‘왜?’냐고 묻지 않으셨던 분. 그 고통을 견뎌내셨던 분.

그 어머니만이 답하실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의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아들을 먼저 보내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그래서 이 부활의 시간에 성모님께 세월호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맡겨 드리고 싶다. 그 부모님의 아픔을 위로해 주시라고 청하고 싶다.

그리스도의 향기 가득한 날이면, 억눌린 이들이 일어설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 가슴 아픈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일어설 수 있으면 좋겠다.

얼마나 답답하면 마음의 병이 날까?
얼마나 힘들면 방 속에서 두려움으로 나설 수가 없을까?
얼마나 짓눌렸으면 다시 일어설 용기를 버렸을까?
그들이 모두 일어섰으면 좋겠다.

일어서서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헤쳐 보여라도 줄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부활! 부활! 부활!

삶의 부활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그들의 손을 맞잡아 줄 사람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엠마오의 길을 멀리서 찾지 않으리라.
오늘 내 삶의 길에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에게서 멀어져 나의 가시 돋친 말로 아픔을 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거친 행동으로 상처를 받아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에게서 빵을 떼는 예수님을 만나리라.


그리스도의 향기 가득한 날이면

- 김태진 글,곡

늘어진 두 팔에 힘을 주어라.
두 무릎을 꼿꼿이 세워라.
겁에 질린 자를 격려하여라.
용기 내어라. 무서워하지 말라.
그때에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
그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뛰리라.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그분 향기 가득한 날에
기쁨 즐거움에 젖어 들리라.
아픔과 한숨은 스러지리라.
그리스도 향기 가득 세상 넘쳐 흐르리라.
모든 사람이 웃고 살리라.
모든 사람이 웃고 살리라.

 

이미지 출처 = windpacer04.deviantart.com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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