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라의 할머니 탐구생활 - 마지막]

엄마가 된다는 건, 나를 위해 바치던 시간을 온전히 아이 몫으로 내어 놓는 것이 아닐까? 내가 빛나던 화려한 날들을 미련없이 떠나보내고 너를 빛내기 위해 온 힘을 다 쥐어짜는 날들....

이제는 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거울 앞에 선 퀭한 내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다울이는 가끔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엄마, 엄마 손은 왜 이렇게 까칠까칠해? 보라 이모 손은 부드러운데.... 엄마도 예쁜 옷 좀 입어. 엄마가 못생겨 보이는 거 싫어.“
"엄마가 엄마 챙길 시간이 어디 있냐. 밥 해야지, 빨래 해야지, 청소 해야지, 다랭이 똥 치워야지.... 엄마도 한때는 예뻤어. 근데 하느님이 예쁜 거 포기하면 너희들을 선물로 주신다고 해서 너희들을 선택한 거야."
"정말이야? 엄마도 옛날에는 예뻤어?"
"그러엄!"

다울이에게 큰소리를 칠 만큼 예뻤던 것은 아니지만, 물론 내게도 젊음 그 자체만으로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던 시간이 분명 존재했더랬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떠올리는 게 무슨 의미겠냐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불을 때는 동안만이라도 여유롭게 불만 때고 싶건만 다울이가 책을 꺼내 들고 와 읽어달라 하고, 다랭이는 등 뒤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으이구, 이놈 자슥들.... 엄마가 잠자코 있을 틈을 안 주는구만."

투덜거리며 다울이에게 책을 읽어주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합천에 살 때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었다. 오랜만에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머, 선생님. 어쩐 일이세요?"
"다울이 엄마. 설매실 아즈매가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캐서 전화 했습니다. 바꿔 드릴게요.
.....
우찌 사노. 아들만 둘이라 카대. 아 키우느라 고상이 많겄다."
"어머, 설매실 할머니! 안 그래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나도 참 보고잪다. 한번 안 오나?"
"가야지 가야지 하는데 쉽지 않네요. 그래도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볼게요."
"됐다 마. 아 둘 델꼬 우찌 움직이겠노. 심 들어서 안 된다. 우리가 함 가께. 서국장 차 타고 나들이 삼아 가께."
"오시면 대환영이죠. 제가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옛날엔 얻어먹기만 했잖아요."
"아이구마, 참 보고잪다. 진짜로 보고삐다. 서국장 바꿔주께.(울먹울먹)
......
다울이 엄마, 설매실 아즈매 운다. 다음에 마을 할머니들 모시고 전라도로 꽃구경 갈게요. 아즈매 한 좀 풀어주게."
"네, 꼭 오세요. 꼭!!!"

전화를 끊고 나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어버렸다. 설매실 할머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목구멍이 뜨거워지더니만 마침내 불덩이처럼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린 것이다.

"엄마, 왜 울어? 어른들도 울 때가 있어?"
"응. 엄마는 지금 설매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우는 거야. 목소리 들으니까 너무 보고 싶어서. 너도 산들이가 놀다간 다음 날 하루 종일 산들이 보고 싶다고 했잖아. 엄마도 그런 마음이야."
"아.... 근데 설매실 할머니가 누구야?"
"엄마가 처음 시골에 내려와 살 때 엄마를 돌봐주고 사랑해 주신 분이야."
"청라 이모 책(“청라 이모의 오순도순 벼농사 이야기”, 정청라, 토토북, 2010)에 나오는 할머니?"
"응, 바로 그분!“

▲ 설매실 할머니 집 들마루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던 사진을 찾아내어 자꾸 들여다본다. 할머니 표정이며 말투가 내 마음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하며, 내 삶이 거기에서부터 새로 돋아났음을 고마워하며. ⓒ정청라

다울이에게는 간략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 설매실 할머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참 많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오히려 말문이 꽉 막혀버릴 만큼 말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아홉 꽃띠에 처음 밟아본 경상도 땅, 낯선 경상도 사투리와 시골 환경에 나는 꼭 외국인이 된 것 같았다. 과연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정을 붙일 수 있을 것인지 내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던 그때에, 설매실 할머니가 나타나 버팀목이 되어 주신 것이다. 그야말로 수호천사처럼 나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면서.

예를 들어, 내가 밭일에 지쳐 고단해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쉬다 해라!" 하는 설매실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그때가 쉬는 시간이 된다. 할머니가 어르신 몰래 가져온 소주병을 꺼내 큰 컵으로 하나 가득 따라 주시면 얼떨결에 받아 마시고는 알딸딸하게 취한다. 할머니는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시고, 나는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정말이지 설매실 할머니와 함께라면 저절로 장밋빛 인생이 되었다. 생소주엔 밭에서 막 뽑은 풋마늘이 좋은 안주가 된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뿐인가. 농사는 물론 살림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콩 심는 간격부터, 각종 나물 이름, 두부나 메밀묵 만드는 법, 모내기 요령, 사람답게 사는 법 등, 하여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굉장히 심오한 것까지 나는 설매실 할머니로부터 배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가 손님을 대하는 자세였는데, 하다못해 집 앞에 전봇대를 점검하러 나온 아저씨까지도 불러다 먹을 것을 챙겨 주셨다. "내 자슥도 밖에서는 저래 고생하고 살낀데.... 다 내 자슥같다 아이가." 하시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정이 차고 넘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는 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잠깐 서울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올라치면 엄마 갖다 주라며 고춧가루며 시래기, 쑥 같은 제철 먹을거리들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언제 올낀대?"하며 눈물을 글썽이시기도 하고, 어쩌다 예정보다 늦게 돌아올 때면 "와 이제 왔노?" 하며 샐쭉한 표정으로 째려보시기도 했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얼마나 그리웠으면 내게 그런 눈빛까지도 보내신 건지....

이렇게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 내게 더없는 애정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여태껏 땅을 밟고 살 수 있는 건, 설매실 할머니가 보내준 사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설매실 할머니가 해주신 밥, 들려주신 말씀, 나눠주신 선물 등 그런 것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듣게 된 설매실 할머니 목소리가 내가 사랑받던 시간, 그 따듯한 느낌 속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래, 나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으며 살았지. 그 사랑이 나를 살라고 내게 길을 보여 주었지. 그렇다면 이제는 나도 아낌없이 누군가를 사랑해 줄 때가 아닐까? 사랑은 사랑을 낳아야 진정 제 몫을 다하는 것. 삶은 그렇게 돌고 돌아 이어지는 것. 설매실 할머니의 울먹이는 사랑이 나를 다시 사랑으로 태어나게 한다.

"애들아, 이리 와봐. 엄마가 꽉 안아줄게."

나는 다시 엄마로 사는 기쁨에 젖는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 할머니 탐구생활 연재를 마치며

누군가 내게 충고했다. 시골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더냐고. 젊은 나이에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도시에서 이것저것 경험하며 살다가, 이 다음에 나이 들면 내려와 살라고. 도대체 꼬부랑 할망구들 사이에서 무슨 재미가 있고 배울 게 있겠느냐며....

하지만 나는 그분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 도시가 온실이라고 하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이라면 시골은 온실 밖의 세상이다. 온실 안에 사는 사람들은 겉보기엔 삶을 화려하게 꽃피우는 듯해도, 안으로는 생명의 기운이 메말라 있다. 반면 시골 사람들, 적어도 시골에서 내가 만난 할머니들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겉모습과 달리 그 내면에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추위와 비바람의 공격을 맨몸으로 견뎌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기 안의 생명력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뜻에서 나는 할머니들의 악착같은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과 용기를 얻었다. 누군가 가르쳐준 지식이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놀아나지 않고) 자연스러운 본성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내 몸과 마음은 온실에 대한 미련을 전부 다 떠나보내지는 못했을지언정, 떠나온 게 맞다는 그리고 언젠가는 할머니들 계시는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까지도 갖게 되었다.

'할머니 탐구 생활'은 바로 그 확신에 대한 증언이었다. 덜 여문 새댁이 단단히 여물어 씨앗으로 영글어 가는 할머니들 삶을 흘깃거리며 삶의 방향키를 잡는 여정이기도 했다. 또한 잘 산다는 게 뭔지, 나이 든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려움과 고난이 꼭 절망이 될 수밖에 없는지 등 할머니들 삶을 바라보며 묻고 또 묻는 질문 자체가 내게는 더없는 선물이었다. 때로는 정답 그 자체보다 물음 안에 더 큰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이제 연재를 마치며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음을 맞을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래서 더욱 삶의 소중함을 알고 삶을 활기차게 가꾸어가는 할머니를 꿈꿔본다. 내 자식 아끼듯 다른 자식 품어주며, 그렇게 온 생명을 끌어안고 어깨춤을 추면 좋겠다. 할머니란 말의 어원이 '한(큰) 어머니'에서 왔듯이 엄마의 울타리를 늘이고, 늘이고 늘여서 아무 경계 없고 억지 권위나 위엄 없는 편안한 자리에 다다르고 싶다. 

지금까지 '할머니 탐구생활'을 맡아주신 정청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정청라
귀농 10년차, 결혼 8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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