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매일 오전 11시, 제주 강정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미사가 봉헌됩니다. 이제 동장군의 기세도 해방의 봄기운에 자리를 내주고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위한 군사기지 건설은 쉼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시간 동안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공사차량들의 숫자 만큼 생각도 많고 그 생각은 끝이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얼마 전 주한 미 대사가 피습을 당했다는 뉴스가 모든 언론을 장식할 때 참기 어려울 만큼 역겨웠습니다. 그가 피습을 당했을 때 언론과 몇몇 정치인의 태도는 부끄러움을 넘어서 측은하고 가련할 정도였습니다. 폭력으로 부상당한 리퍼트 대사의 상처와 치료를 염려하기보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기다리던 때가 왔다는 듯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념 몰이로 김정은이 지시한 테러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본질을 흐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위키백과가 정의한 ‘테러(terror)’의 뜻은 이렇습니다.

“테러(영: terror)는 프랑스어 terreur가 어원이며, 이것은‘거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라틴어 terror에 다시 기원을 둔다. 이 라틴어는 라틴어 동사 terrere에서 파생되었으며, 이것은‘겁을 주다’라는 뜻이다. 테러란 정치적 반대파를 진압하기 위해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는 방침이다. 이 용어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공포 정치 때 처음 사용되었다”

테러에 대한 이런 해석을 볼 때 지난 3월 5일 민화협 초청 행사에서 리퍼트 주한 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목과 팔을 다치게 한 김기종 씨의 행위는 테러, 습격 등 여러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건 발생 뒤 여러 정치 지도자급 인사들과 언론은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나아가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로 확대하며 북쪽 김정은이 지시한 사건으로 몰아갔습니다. 1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특별 수사팀을 구성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김기종 씨의 폭행보다는 이 호들갑이 더 방정맞고 소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망상 증세가 있는 정신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벌인 ‘습격’ 정도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테러리스트인가

어떤 목적으로 이 사건을 김정은이 시켰다고 주장하는지.... 이런 주장은 우리사회의 상식과 합리성에 대한 테러이며 보통 사람의 정서에 대한 테러입니다. 이런 주장은 적대적 이념 대립을 부추기며 냉전적 사고로 사람들을 겁주고 큰 ‘공포’를 안겨 주는 극악한 테러행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사건을 김정은이 시켰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은 분명히 불순한 의도를 가진 악질적 테러리스트들이며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인면수심의 장본인입니다. 앞서 인용한 테러의 어원대로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공포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어떤 이득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있겠습니까?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 김정은을 거론하며 사람들을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겁박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번처럼 ‘폭력을 이용한 문제해결’은 동의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김정은이 시켰다는 주장에 또한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주장이야말로 악랄하고 비열하며 우리사회를 분열시키는 악질적 테러 행위임을 분명히 말한다. 때문에 그런 추하고 극단적인 테러행위를 지금 당장 중단하라. 지금 생활고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협박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당신들은 기회만 있으면 사람들을 겁주고 공포를 조장하여 당신들의 이득을 보존했으며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그런 당신들의 행태를 때로는 가엾이, 때로는 염려로, 때로는 탄식으로 참으며 인내해 왔다.

그러나 더 이상 극단적이고 악질적인 테러에 겁박 당하면서 살기에는 합리와 상식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음을 명심하라. 사실 당신들의 현재 권력은, 그리고 그 권력에서 나오는 기득권은 부정선거로 얼룩지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것임을 당신들도 알고 있다. 당신들의 권력은 국가기관이 동원되어 선거부정을 저지른, 그 기반 위에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사람들은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은 당신들의 불안한 권력행사를 인내로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고 매우 가능성이 큰, 부정하게 얻은 권력에 대한 때 늦은 양심선언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더 이상의 오만과 방종은 당신들에게 매우 큰 불행이 될 터이니 부디 그 악질적인 테러행위를 지금 당장 중단하라. 당신들과 모두를 위해서라도.”

▲ 강정마을 안 군 관사 부지.ⓒ정현진 기자

테러가 일상인 강정

사실 테러로 말하면 강정에서는 일상입니다. 2007년 4월 26일 저녁, 강정의 주민 2000여 명 중 80여 명이 몰래 모여서 불법적 임시총회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신청을 한 것 자체가 테러입니다. 대다수의 주민들은 회의가 열리는 줄 몰랐고 사전에 고지해야 하는 마을 임시총회는 사전 고지가 없었습니다. 007작전 같은 그 회의에서 해군기지 유치결정은 표결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을 공동체에 대한 테러이며,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테러입니다. 백성들의 세금으로 만든 엄청난 예산을 쓰게 되는 사업을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서민경제에 대한 테러이며 합리와 상식에 대한 테러입니다. 이렇듯 해군기지 자체가 인간의 존엄과 품위에 대한 테러입니다.

2012년 3월 7일 새벽, 강정 주민들은 차가운 밤하늘 위로 퍼지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급히 강정천 다리로 모여야만 했습니다. 주민들의 수많은 아픔과 사연을 품으며 긴 시간 고통을 달래 주었던 구럼비 바위가 잔인한 군화와 폭약에 의해 테러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기어코 해군은 테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구럼비 바위는 그렇게 영원히 주민들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는 창조질서에 대한 테러이며 자연생태에 대한 테러이며 향토 역사에 대한 테러입니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자연에 대한 학살이며 제2의 4.3’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극심한 테러는 지난 1월 31일에 있었습니다. 해군은 ‘강정 주민 동의 없이는 해군관사를 짓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어겼습니다. 주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기지를 건설하던 해군은 ‘주민의 동의 없이 관사를 짓지 않겠다’며 주민들을 회유하면서 해군을 믿지 못한 주민들이 관사 부지 앞에 쳐 놓은 농성천막을 1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강제 철거했습니다. 주민은 100여 명이었고 진압병력은 1000여 명이었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연행되고 폭력을 당한 주민들이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테러이며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시민에 대한 테러입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상처 입은 주민들의 상처 부위에 다시 폭력을 가하는 확인사살이며 악질적 테러였습니다. 이처럼 강정은 쉼 없이 테러를 당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해군은 이 작은 마을 강정의 테러리스트입니다.

방위사업 비리의 몸통은 어떨까?

뉴스가 들립니다. 방위사업 비리로 정옥근 전 해군총장에 이어 황기철 전 해군총장이 구속되었습니다. 수사는 곁가지만 맴돌았습니다. 정관계 로비 의혹은 손도 못 대보고 군 전반으로 확대하지 못했음에도 합동수사단에 적발된 비리 규모는 육군 13억, 공군 243억, 해군 1707억입니다. 겉돌기 수사인데도 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수사한다면, 과연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서는 얼마나 큰 비리가 드러날까요? 그 돈이 흘러간 곳을,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삼척동자도 알 것입니다. 서민경제에 대한 테러이며 고단한 서민의 실낱같은 희망을 테러하는 일입니다. 테러리스트들! 더 이상 인내를 시험하면 상상 이상의 큰 화를 입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를 맡아 주신 양운기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