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오전 11시,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미사가 봉헌됩니다. 경찰이 우리를 들어내어 구석으로 밀어내면 육중한 대형 트럭들이 공사장 안으로 무엇인가 잔뜩 싣고 들어갑니다. 움푹 움푹 패일 만큼 공사장 입구의 도로가 훼손되는 정도를 보면 싣고 가는 자재들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얼마 뒤면 건축 자재 대신 엄청난 양의 살상무기들이 기지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다를 통해서, 육로를 통해서, 헬기를 통해서 들어가는 살상 무기로 기지가 채워지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국가 안보를 빙자한 무기 장사들에게는 환호할 일이겠지만 그 무기에 쓰러져 갈 사람들, 그들의 운명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까요.

문득 지난 주 몇몇 언론에서 짧은 뉴스로 보도한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프랑스 다소사가 이집트에 24대의 전투기를 수출한다는 내용입니다. 재빠르게 지나가는 뉴스였지만 저에게 그 뉴스는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50억 유로(6조 3100억 원)! 라팔(Rafale; '폭풍'이란 뜻) 전투기 24대! 수출하는 전투기가 24대면 수출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전투기 수출로서 발생하는 연쇄 효과가 더 관심거리입니다. 연쇄 효과란 무엇이겠습니까?

완제품에는 다소의 이름이 새겨지겠지만 부품, 설계, 제조, 테스트 등을 500여 개 이상의 업체가 담당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계약이 성사되던 날 프랑스 국방부가 환호했다고 합니다. 일자리 창출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입니다. 이 전투기가 실전에 배치되면 그 성능을 확인하면서 구입을 준비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페르시아 만 6개국 안보협력체인 걸프협력이사회(GCC)는 전투기 ‘라팔’의 성능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집트는 IS(급진이슬람무장단체 이슬람국가)를 향해 보복 공습을 시작하면서 이 전투기를 7월에 실전 배치한다고 하므로 성능은 곧 확인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 수출은 이제 주변국들로 번지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번 계약에는 신형 다목적 해군 프리깃 함정 1척과 단거리 중거리 겸용 공대공, 공대지 미사일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전투기와 군함, 미사일 등 육, 해, 공의 모든 무기가 포함된 거래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전쟁에서 육, 해, 공의 구분은 어쩌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집트 정부는 최근 IS의 테러로 커다란 불안에 휩싸이면서 군사 작전에서 공군전력의 강화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라팔 전투기 도입이 성사된 배경이라고 합니다. 국방 전문가들에 의하면 2011년을 기준으로 국제 무기거래 시장의 규모는 약 900억 달러(약 100조 원)가 된다고 하는데 동유럽과 중동의 정세가 불안하고 중국의 세력 확장의 의지가 강화되면서 국제 무기시장의 규모는 급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팔’ 전투기의 파괴력은 이미 성능 시험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성능시험 결과를 보지 않았지만 막연히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던 미 공군의 전투기 성능만 생각해도 추측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65년 전의 기술로 만들어진 전투기도 파괴력이 엄청난데 하물며 오늘날의 첨단 기술로 제작된 전투기는 더 할 나위 없지 않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무기 장사는 화해보다는 갈등을 좋아하고 더 많은 무기 소비를 위해 이왕이면 갈등이 오래가길 기대합니다. 또한 소비가 많으려면 싸움 기간이 길어야 합니다. 한국전쟁 휴전 후 63년 동안 이 조그마한 우리 땅덩어리에 어떤 무기가 얼마나 들어왔겠습니까?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 한국전쟁 3년 1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무기들이 소비되었겠습니까? 또 하나, 왜 한국전쟁은 3년 동안이나 끌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전쟁은 길었습니다.

▲ 한국전쟁 중 미국 공군이 북한의 동해안 원산반도의 남쪽 철로를 공격하고 있다.(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왜 3년이나 긴 시간을 두고 전쟁을 했을까? 밀리고 당기는 전쟁의 와중에 왜 휴전선은 그 자리에 그어야만 했을까? 이점을 주목한다면 한국전쟁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전쟁이 시작되어 1년쯤이 되는 1951년 5월은 전선의 변동이나 진전이 없이 교착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런 전쟁의 교착상태가 있을 때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일임에도 한국전쟁은 이때부터 2년여를 더 끌었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1년 뒤인 1951년 5-6월 전선과 2년을 더 끌고 그어진 휴전선의 위치가 거의 같습니다. 그렇다면 1951년 5월에 전쟁을 그만뒀다면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입니다. 2년을 더 싸웠지만 서로의 영토 확장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수많은 희생자만 났을 뿐입니다.

1951년 6월 이후,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전쟁연구가들은 휴전선의 위치를 두고 4개월 정도 논쟁하고 18개월이라는 긴 시간은 포로 문제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요? 이렇게 논쟁이 2년 지속되는 사이 미 공군의 무차별 폭격이 있었습니다. 이 폭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특히 1951년 11월 5일 이후와 정전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952년 이후에 미군 폭격은 주로 비인도적인 네이팜탄 폭격이었습니다. 이때는 정전협상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미군은 이른바 ‘협상하면서 죽이는’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때 소비된 무기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왜 이렇게 많은 무기를 ‘정전 협상을 진행하면서’ 쏟아 부었을까요? 2차 대전 때 쓰다 남은 온갖 폭탄들을 우리나라의 곳곳에 쏟아 부었겠지요?

이 때 무기 장사들은 얼마나 환호했을까요? 무기 장사들이 재고정리를 한 셈이겠지요? 장사꾼들은 재고가 많으면 자금 회전이 막힌다고 합니다. 미국의 군수회사 창고에서 재고 무기가 줄어들 때 미국의 경제는 어땠을까요? 1년에 끝낼 수 있는 전쟁을 3년씩 끌면서 우리 땅에 폭탄이 투하될 때 마다 무기장사들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환호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환호하는 만큼 죽어야만 했던 억울한 원혼들은 지금 어디서 구천을 떠돌고 있을까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이 멈추질 않습니다.

아, 참, 우리나라가 2014년 세계 171개국 중 10번째로 국방비(36조 2300억)를 많이 쓴 나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아! 온통 미국에 퍼 주고, 그럼에도 전시작전권은 없고, 군납 비리로 장성 출신들은 줄줄이 구속되고....

경찰들은 다시 우리들 들어내어 구석으로 밀어냅니다. 대형 트럭들이 굉음을 내며 해군기지공사장 안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아! 저 굉음은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원혼들의 흐느낌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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