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2월 8일(연중 제5주일), 마르 1,29-39

 몇 해 전, 이맘때 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피정을 했습니다. 10여 일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바라보던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가 살아가는 자리는 흙이 많지 않았고 주변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었습니다. 피정집 주변에 많은 나무들이 있었지만 유독 그 나무에 눈이 갔던 이유는 평탄한 곳이 아닌 아주 비탈진 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나무의 뿌리가 밖으로 나와 주변의 바위를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무의 고단한 삶이 느껴졌습니다. ‘그래, 세찬 바람이 불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저리 했겠구나....’ 물론 다른 뿌리는 물과 양분을 찾아 땅 속으로 내려갔겠지요. 피정을 마칠 즈음, 그 나무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곤 물었습니다. ”나무야, 너는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니?“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가 당당하게 보였습니다. 삶의 경외감이 올라왔습니다. 또한 ’그래 이 땅에서 나무 한 그루가 살아가는 것도 저리 힘겹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오늘 첫째 독서에서 욥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고, 고통의 밤이고,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간다.”(욥기 7,1-4.6-7) 주변을 돌아보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기도 하고, 이 사회의 모순과 잘못된 정책으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사람도 아프고 산도 아프고 바다도 아프고, 어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곳곳에 아픔이 자리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해가 지자 사람들은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복음에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지만, 그 아픈 사람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 그네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아팠을까? 어떤 이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오랫동안 앓았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돌보는 이 없이 질긴 목숨을 외롭게 이어 갔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들 모두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그 많은 치유 이야기들은 예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곳은 하느님의 연민이 가는 자리입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 절망과 실의에 빠져 캄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희망으로 환한 빛으로 끌어올리는 예수님. 그러기에 예수님의 치유는 그저 몸의 질병을 낫게 하는 의료기술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그분의 치유는 상처 입은 몸과 부서진 인간성의 치유, 인간 존재의 고귀한 모습을 회복시키는 사랑과 생명의 행위였습니다.

배고픈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듯이, 아픈 이들을 보면 그분은 참지 못하시기에, 아마도 예수님은 그 많은 아픈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병을 낫게 하는 일을 늦은 밤까지 이어 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고단하셨을 텐데 좀 더 늦게까지 주무시지.... 기도를 마치시곤 다시 회당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전형적인 하루 생활을 보여 줍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시고, 낮에는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아마도 오후부터 저녁, 밤늦게까지 치유하는 일에 전념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 예수님이 보이질 않자 제자들이 찾아 나섰고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건만, 다른 고을로 가자고, 나는 복음을 선포해야 하고, 나는 이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라고. 그렇게 예수님은 매일같이 기도하고, 기쁜 소식을 아픈 몸과 마음에 불어 넣어 주고,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여정을 걸어가셨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하루 생활을 보면서 저의 하루여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른 아침 그날 복음을 읽고 나서 묵상하고 미사를 드립니다. 낮에는 주어진 사도직을 하고 잠들기 전에 의식 성찰을 합니다. 상황에 따라 저녁에 미사를 드리기도 하지만 큰 틀은 기도(미사)와 일, 성찰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 갑니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그분께 대한 신뢰가 자라나고, 그분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우리 안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납니다.

낮에는 사도직을 하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저의 체험을 나눕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을 수행하는 종들”인 예수회원들은 “하느님의 발자국을 따르며” 각자의 사도직의 자리에서 복음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비록 약함이 있고 불안전한 인간이지만. 잠들기 전에 의식 성찰을 합니다. 오늘 하루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삶이 생명의 길이었는지 죽음의 길이었는지, 하느님의 뜻에 걸맞은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어긋났는지, 부족하고 죄스러운 자리에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청하고 다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잠자리에 듭니다.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의 한 생애가 이루어지듯이 하루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성찰로 마칠 때, 우리는 좀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나의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고, 성찰은 삶과 사고에 새로운 관점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일하고 놀고, 공부하고, 노래하고, 놀고, 밥 먹고, 잠자고.... 그 모든 자리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찾으며 걸어갑니다. 온전한 인간됨의 길이고, 사랑의 길이고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가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예수회 성소 담당, 청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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