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2014년

▲ 주인공 산드라.(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주))
그녀는 오늘도 힘겹게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우울증 약을 삼켜야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사는 게 쉽지 않다. 병가로 휴직한 상태에 있다가 이제 복직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그녀의 복직과 남은 직원들의 보너스 지급을 놓고서 16명 직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그녀의 복직이 무산되었다고 통보한다. 그녀는 작업반장의 개입으로 인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월요일 아침에 재투표를 실시할 것을 사장으로부터 확인받는다. 남은 이틀, 주말 동안 그녀는 16명의 동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 식구의 둥지인 안락한 집을 비워 줘야 한다. 영화는 월요일 아침이 오기 전, 그녀가 16명의 동료들을 한명씩 만나서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금세기 최고의 예술영화 감독이라고 칭송받는다. 그들은 벨기에 출신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뒤늦게 극영화 감독이 되었다. '로제타'(1999)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들'(2002)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더 차일드'(2005)로 또 다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로나의 침묵'(2008)은 칸 영화제 각본상, '자전거 탄 소년'(2011)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칸 영화제 6회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가진 다르덴 형제는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2014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또 다시 이름을 올렸다.

우리가 모두 부러워 마지않는 북유럽의 한 나라. 사회복지가 잘 이루어지고 있고, 여성의 지위가 높으며, 약자에 대한 차별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상상하는 나라. 그러나 놀랍게도 그 나라에도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주로 하층민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는다. 그들의 영화에 장식미는 없다. 바로 날 것 그대로의 현실에 카메라를 가져다 놓으며, 인물들이 다양한 사건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 속에 펼쳐낸다. 이번 영화 '내일의 위한 시간'에도 다르덴 형제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는 마리옹 코티야르가 분한 산드라의 일거수일투족을 비춘다. 주말에 갑작스레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보너스를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차례로 만나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목격하는 과정 자체가 긴박감을 준다. 야속하지만 그들에게도 급한 사정이 있다. 대학생 아이의 학비에 쓰거나, 재혼 비용을 마련하거나, 1년치 전기세를 포기할 수 없거나, 그냥 큰돈이 생겨 좋다는 이들에게 자꾸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 '내일을 위한 시간',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2014년(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주))

보너스를 택한 게 맘에 걸려 하다가 산드라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가 못내 고맙기만 하다. 그녀가 빠져도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으며 남은 동료들은 야근 수당을 요긴하게 쓰고 있다는 사정도 알겠다. 작은 회사를 간신히 운영하는 사장을 탐욕스러운 자본가라고 비난할 수도 없다. 모두가 구구절절한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연대와 배려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경쟁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탓할 일이다. 하지만 당장 현실은 월요일 투표가 산드라의 내일을 결정한다는 것.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자유만을 허락한다. 결국은 돈을 가진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사회의 여러 가지 경우들이 전개된다. 이주노동자, 불법 알바, 싱글맘, 주말 노동, 이혼에 처한 여성, 위태로운 처지의 계약직 등 우리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여러 처지의 인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산드라가 사람들을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똑같다. 매번 반복되는 말과 상황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16명의 처지가 모두 다르고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작은 변주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긴장감이 만만치 않게 재미있다. 관객 스스로 손가락으로 찬성과 반대를 세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 나가는 여정은 스릴이 넘친다.

그녀가 선택을 받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가 최종 해결책이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의 수가 남아있고, 오히려 그녀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것은 영화의 반전이다. 최종 도덕적 선택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동료들의 선택의 딜레마는 바로 그녀의 딜레마로 바뀐다.

척박한 현실을 겪어 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짝 따라가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인해 한 여성 노동자의 디테일한 감정과 호흡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는 바로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지막에 웃는다.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리고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가난해도 자존심을 지킬 수 있어서, 자본의 노예가 아니라 희망을 품은 사람이어서,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난 거장의 향취가 듬뿍 묻어나는 엔딩이 진심으로 만족스러웠다. 

▲ '내일을 위한 시간'의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주))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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