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비천주교인들에게, 천주교 신자들은 죽은 이의 가족들이 선행을 많이 하면 먼저 이 세상을 떠나 연옥에 있는 그들 가족이 천국으로 간다고 믿는다고  여겨지나 봅니다. 살아 있는 가족의 선행과 먼저 떠난 가족의 구원이 연결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 연옥, 랭부르형제.(14세기 말-15세기 초)
음....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도신경에 나오듯 "모든 성인의 통공"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서로 소통한다는 것을 믿고 있으니 살아 있는 가족과 이 세상을 떠나 저 곳으로 먼저 간 가족 사이의 마음의 일치도 가능해집니다. 이런 가능성이 허용됨으로써, "있을 때 잘하지 못한" 자식들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계속 뭔가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납니다. 행복해지는 일입니다.

행복해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점검해 봐야 할 일은 가족들 사이의 관계망 안에서만 선행이 유효한가 입니다. 마치 가족 간에 묶인 휴대폰 서비스마냥 가족들 사이에서만 무제한 통화 혜택을 받는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자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비춰 보면 남겨진 가족과 죽은 이의 구원은 사실상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제자들이 눈먼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 여쭤 봤습니다.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시길,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요한 9,1-3)

죽음이나 구원이 직접 언급된 구절은 아니지만, 유추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예수님은 개인이 당하는 장애(혹은 죽음)는 죄와 무관하며, 가족끼리의 관계와도 연관지을 것이 아니라고 명시해 주십니다. 즉, 누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도 아닙니다. 단지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런 논리로 생각해보면, 각 개인 당사자나 부모가 선행을 많이 했다고 그것이 직접 구원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선하신 하느님의 일이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상태를 드러내 보여 줍니다. 이때 선행은 구원을 간청하는 기도의 측면이 있으나 구원 자체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좀 실망스런 답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앙 안에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안에서 꼭 내 가족만 챙기지 않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곳의 관계가 저 세상까지 확대되듯, 내가 맺은 관계도 신앙 안에서, 저 세상의 영혼들에게까지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 우리의 선행이 연옥의 영혼들이 하느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나의 선행이 내 친족만 도와줄 것이라는 인식 범위를 넘어서게 해 주는 것이, 가톨릭 신앙 중 "통공"이 가지는 연대성과 그 범위라 하겠습니다. 속풀이에서 예전에 다루었던 “연옥을 알고 있나요?”를 다시 읽어 보시고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