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연옥이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 우리는 어떻게 연옥을 알고 있죠?

그렇죠. 성경을 눈을 씻고 뒤져봐도 연옥이란 낱말은 안 나옵니다. 연옥이란 단어는 연구에 따르면 12세기에나 비로소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연옥은, 저승이라는 사후 세계의 공간이 개념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생긴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공간적으로 하늘과 저 땅 속 깊이 자리 잡은 두 곳이 인간의 머리 안에 사후 세계로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리스도께서 수난 받고 죽었다가 되살아나셨다는 사실에서, 그분이 머무셨던 죽은 이들의 공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제 3의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다녀오신 저승이 지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지옥에도 이미 구원을 위한 출구가 생겨난 셈인데, 그렇다면 지옥은 사실상 없는 것이 되는 겁니다.

▲ Dante and Beatrice in Paradise(로제티).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 30 곡. 하얀 면사포(믿음)에 감람나무 잎사귀를 쓴 베아트리체가 나타남. 녹색 망토(소망)와 붉은 옷(사랑)은 모두 의미를 갖는다.
지옥이 없다면 아주 행복하겠죠? (개인적으로 답해 보시길!) 그러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지옥을 하느님의 빛으로부터 절대적이고 영원히 단절된 상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내려가셨다가 사흘 만에 돌아오신 그 공간은 지옥과는 다른 죽은 이들의 세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연옥이 있다는 단서입니다.

이렇게 등장한 연옥은 천국에 이르기 위해 영혼이 정화되어 다듬어지는 공간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정화의 과정은 이미 이승에서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즉, 이승에서 어려운 삶(병고, 가난 등)을 통해 영혼이 받아야 할 정화의 시간을 이미 보냈거나, 기도, 자선 등의 공덕을 많이 쌓았거나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한 이들은 이미 살아있을 때, 정화의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맞이하여 그들의 영혼은 즉시 천사들에 이끌려 천국으로 향하게 되어 있지만, 천국으로 가기에는 아직 미흡하여 일정한 시간동안 영혼을 다듬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정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이리하여 성경에는 명시되지 있지 않았음에도, 마땅히 필요한 공간이 (인간의 이성적 추론을 통해)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옥이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었습니다. 즉, 죽은 이들이 세상 마지막 날 결정적인 판결을 받을 텐데 이때까지 미결의 상태로 있는 영혼들에게 머물 공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연옥은 공간적으로 지옥과 인접한 곳이자 생태환경도 지옥과 거의 다를 것 없는 열악한 곳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느끼셨겠지만, 지옥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구원에 대한 희망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연옥은 그 기능상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영혼이 정화되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옥에서는 일단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연옥 영혼 중 가장 버림받고 소외된 영혼이 있다고 신앙인들은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가장 버림받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상태의 영혼에게 전대사*를 받아 기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에서 살아있는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하루라도 빨리 천국에 이른 영혼들이 그냥 입을 닦겠습니까? 그 영혼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산 자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는 믿음이 우리 신앙 안에는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성인의 통공’입니다. 천국에 이른 영혼들, 곧 성인들의 기도가 이승과도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이어지는 세계가 이분법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게 행복하지 않으신가요? 연옥은 우리에게 고통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을 건네주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연옥은 하늘에 이르는 여정의 최종 단계입니다 (물론 천국 직항노선을 타는 분들도 계시지만). 지금의 삶이 고달프다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연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영혼이 정화되고 있다고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전대사: 우리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받아야 하는 벌이 남아있는데 그것을 교회용어로는 ‘잠벌’이라고 합니다. 잠벌은 통회와 회개에 대한 내적인 태도를 행실로 드러내 보이는 것, 즉 보속행위를 통해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합니다. 대사에는 전대사(indulgentiae plenariae)와 한대사(indulgentiae partiales)가 있습니다. 전대사는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주는 것이고, 한대사는 그 벌의 일부를 없애는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전대사를 받아 가장 버림받은 영혼에게 양도를 할 경우, 그 영혼은 모든 벌을 면제받고 천사들에 이끌려 하늘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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