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이 글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월11일부터 12일까지 생탁연산제조공장 앞에서 열린 생탁 노동자를 위한 1박2일 투쟁난장에서 연대 발언한 전문이다

▲ 김진숙 지도위원이 1박2일 투쟁 난장에서 생탁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지지하며 연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장영식

제가 크레인 위에서 제일 하고 싶었던 건, 노동해방도 아니고 민주노조 사수도 아니고, 사실은 목욕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떨고 나면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던 겨울. 온종일 으슬거리는 한기도, 덜덜 떠느라 저리고 결린 어깨도, 겨울 내도록 곱아서 펴지지도 않던 손가락도, 제대로 펴지지도 굽혀지지도 않던 무릎도, 뜨거운 물에 한번만 들어갔다 나오면 다 풀어질 것 같았습니다.

봄이 오는 걸 제일 먼저 알린 건 꽃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미칠 것 같던 가려움이었습니다. 피가 나도록 긁으면 눈처럼 떨어져 쌓이는 살비듬을 보며 목욕 한번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은 크레인 밑에 시커멓게 서있던 용역들과 담벼락 밖에 늘어서 있던 경찰들 몰래 하늘을 날아가 목욕을 하고 다시 올라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더 춥고, 더 가려웠습니다.

▲ 김진숙 지도위원의 감동적인 연대 발언을 듣고 있던 생탁노동자들이 지난 투쟁 과정을 떠올린 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장영식

▲ 김진숙 지도위원의 감동적인 연대 발언을 듣고 있던 생탁노동자들이 지난 투쟁 과정을 떠올린 듯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장영식

생탁 동지들은 지금 무슨 꿈을 꿀까요. 휴일 날이면 고구마 한 개를 밥이라고 주던 회사에서 쫓겨나 길거리에서 식은 밥을 먹으며 저들은 어떤 꿈을 꿀까요. 감옥의 재소자들의 한 끼 식대가 1552원이라는데 그 1/3도 안 되는 450원짜리 밥을 먹던 저이들은 지금 어떤 꿈을 꿀까요.

한겨울 젖은 발이 너무 시려워 장화를 지급해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던 저들은 이 추운 겨울 노동청 앞에서 노숙을 하며 무슨 꿈을 꿀까요. 아침이면 남들처럼 출근하고, 저녁이면 남들처럼 퇴근해서 식구들과 함께 저녁 먹는 꿈.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던 동료들이랑 민주노조 복수노조 떠나서 월급날이면 시장에서 순대 한 접시 놓고 막걸리 한 사발 마시는 꿈.

고기반찬이 아니어도, 산해진미가 아니어도 식구들과 둘러앉아 먹는 밥이 세상 제일 맛난 밥이고, 비단금침이 아니어도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자는 잠이 세상 가장 편한 잠이라는 걸 60이 다 된 이제야 사무치게 깨닫습니다.

▲ 이날 1박2일 투쟁 난장에는 부산지역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했다.ⓒ장영식

그 꿈이 뭐라고, 그 꿈이 뭐가 그리 거창하다고 289일을 길바닥에서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냉장차로 운반해야 할 막걸리를 일반트럭으로 운반하고, 쥐가 들끓는 현장은 분명 식품위생법 위반이라 그것만 밝혀지면 제 자리로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근로기준법조차 위반한 회사, 노동청에 고발하면 바로 잡힐 줄 알았습니다. 그게 우리가 믿었던 상식이고, 그게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법이고 원칙인 줄 알았습니다.

상식보다 빽이 우선이고, 법보다 돈이 위에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우리는 참 바보들이었습니다. 온 식구들이 나서서 부동산 투기에, 대를 물린 병역비리에, 온갖 부정부패 비리 덩어리 총리 후보자를 보며, 작은 아버지 장례식에도 못 가 보고 뼈마디가 부서져라 일하며 한 달 13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10만원만 더 받으면 날아다닐 것 같던 우린 참 바보였습니다.

▲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부산시청 앞에서 연산동 부산합동양조 앞까지 생탁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1박2일 투쟁 난장에 참여를 호소하며 행진했다.ⓒ장영식

경찰은 국민의 편이고, 노동자는 노동자 편이라 믿으며 60평생을 살았던 우린 참 순진했습니다.

저와 몇몇 동지들이 부산역에서 쌍차 동지들을 응원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한지 두 달이 다 돼갑니다. 담배 값이 인상되니 노숙자들이 제게 와서 하소연을 해요. 담배가 비싸지니 사람들이 장초를 안 버린답니다. 담배 값 내리는 데모를 하면 전국의 노숙자들을 자기가 조직해 보겠답니다.

재벌들 세금은 깎아 주고 서민들 등골을 빼먹어 하루 40명이 넘게 자살하는 나라에서 복지를 말하는 박근혜,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국민행복을 말하는 박근혜. 그런 박근혜가 만들겠다는 나라와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너무나 다르다는 걸 확인한 2년이었습니다.

▲ 1박2일 투쟁 난장에 함께 한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생탁연산제조공장 앞에서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치며 연대의 난장을 펼쳤다.ⓒ장영식

세월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계약직 정홍원 총리는 다시 돌아와 정규직이 됐는데 304명은 단 한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왕종근 씨가 생탁 광고를 하며 생탁의 오미를 느껴보라 합디다. 생탁의 다섯 가지 맛은 뭘까요? 쥐가 돌아다는 현장에서 만든 막걸리 맛이 하나요, 고양이가 빠져 죽은 막걸리 맛이 둘이니, 생탁이 아니면 세상 어디서 술 취한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맛을 보겠습니까? 지하암반수로 만든다고 해 놓고 수돗물로 만든 물맛이 셋이요, 한 달에 2300만 원씩 챙겨 가며 우리의 등골을 빨아먹는 41명 사장의 좔좔 흐르는 기름 맛이 넷이요, 평생 흘린 피땀으로도 모자라 법에 보장된 권리를 요구했다고 289일째 길거리에서 흘리는 생탁 노동자들의 피눈물이 다섯 번째 맛이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딛는 듯 불안하고 편치 않은 289일이었지만, 적금을 깨서 동료들의 생계비로 내 놓던 조직부장님. 남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죄인이 된 듯 가슴 졸이며 여기까지 온 우리 아지매들. 그렇게 서로서로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살면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289일이었지만, 세상 가장 귀하고 가슴 뿌듯한 순간도 많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김종*동지, 송복*동지, 이종*동지, 진덕*동지, 황경*동지, 이옥*동지, 이해*동지, 김영*동지, 임명*동지 힘내십시오.

우리 꼭 승리해서, 대법원에서 마저 패하고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굴뚝 위에까지 올라가 싸우는 쌍차 동지들, 송전탑마저 철거된 텅 빈 공장안 굴뚝 위에서 261일째 싸우는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 그리고 또 고공으로 올라간 LGU+와 SK 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우리가 만든 생탁 막걸리 한잔씩 대접합시다.

풍산동지들, 학비동지들, 방문간호사 동지들, 택시지부 동지들, 우리 꼭 승리해서 현장으로 돌아갑시다.

한진 조합원들은 여러분들의 힘으로 다음 달이면 모두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날이 꼭 올 수 있도록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 생탁노동자들은 1박2일 투쟁 난장에 참여한 민주노총부산지역본부와 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승리하는 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장영식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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