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22]

로마에서 프란치스코의 자취가 가장 뚜렷한 곳은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프란치스코는 1210년, 회규를 인준받기 위해 초기 동료들과 함께 이곳에 온다. 지금은 교황이 바티칸에 머물지만 당시에는 라테라노가 교황청이었던 것이다. 서기 324년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축성한 라테라노 대성당은 1305년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교황이 머물던 곳이다.

▲ 라테라노 대성전 정면.ⓒ김선명

성당 앞 광장에 서니 대성전의 정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세상과 (로마)도시 모든 교회들의 머리이자 어머니’라고 불리는 곳답다. 1210년 프란치스코가 동료들과 이곳에 올 때 교황은 인노첸시오 3세. 그는 강력한 교황이었다. 역사는 그가 4차 십자군을 보내 예루살렘을 정벌하게 했으며 스페인에서 무슬림을 쫓아내는 데도 관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피레네 산맥 부근에도 십자군을 보냈는데 당시 이단으로 여겨지던 카타리파 때문이었다. 카타리파는 중세에 청빈을 기치로 교회의 쇄신을 부르짖던 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룩한 가난뱅이(santo poverello)’ 프란치스코는 로마에 왔던 것이다.

▲ 라테라노 대성당을 떠받치는 프란치스코.ⓒ김선명
“교황님은 이 말을 듣고 심히 놀라셨다. 왜냐하면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도착하기 전에, 교황님은 라테라노의 성 요한 성당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이 볼품없고 왜소한 수도자가 자기 등을 성당 밑으로 밀어 넣어서 성당을 떠받치는 환시를 보았기 때문이다. 교황님은 깨어나셔서 의아스러워하셨고 놀라워하셨다. 신중하시고 슬기로우신 교황님은 이 환시를 숙고하였다. 그리고 며칠 안 되어 복되신 프란치스코가 교황께 와서 방문한 목적을 아뢰었던 것이다”(세 동료의 전기 51)

수도생활을 막 시작하던 무렵 “수도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큰 건물, 정원, 성당...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수도자들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때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사람을 끄는 것은 온기, 사랑이다. 성당이 아무리 웅장하고 멋지더라도 거기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보는 이들이 없으면 종내에 그곳은 비게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알아보는 일이 뭐 어려울 게 있겠느냐고? 사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냥 주위를 둘러보면 된다. 장사꾼의 눈에는 사람들이 돈으로 보일 것이고 정치꾼들의 눈에는 사람들이 표로 보일 것이다. 힘을 추구하는 이의 눈에는 사람들이 자기 명령을 따르는 존재말고 또 무엇이겠는가. 허영장이에게는 자기에게 박수치고 칭찬하는 사람들 아니면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들 눈에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지만 그러면서 그들 역시 사람의 본모습에서 멀어지게 된다.

▲라테라노 대성전 안(왼쪽), 대성당 내의 성프란치스코 경당.ⓒ김선명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해 주신 이야기가 기억난다. “인수야,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단다.” “예? 에이,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잖아요!” “악아, 모르는 소리다. 호랑이는 사람을 안 먹어.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란다. 호랑이 속눈썹을 하나 이렇게 딱! 빼서 우리 눈에 대고 보이면 다 보이는 거여. 사람 같아 보여도 저건 쥐, 저건 닭, 저건 개...그렇단다.”

이렇게 어느 집이 사람 아닌 사람들로 차게 되면 더 이상 사람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유럽 교회들이 텅텅 비게 된 이유가 어디 있을까? 사람들이 그곳에서 찾는 것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가 아닐까? 1205년 말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일으켜 다오” 하시는 십자가 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1210년 로마에 와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회규에 대한 구두 인준을 얻는다.

▲ 라테라노 대성전 앞의 프란치스코와 동료들 청동상.ⓒ김선명

대성전 앞 광장 건너편에는 1210년 회규를 승인받기 위해 로마에 오는 성인과 동료들의 모습을 담은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1926년 성인 서거 7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다. 지친 동료들은 주저앉아 있지만 성인은 대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리고 서있다. 이 조각상이 교황과 얼싸안고 있거나 회규의 승인을 받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바라보며 서 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있는 교회, 우리가 무릎 꿇고 있는 성당 밖에서 이 거룩한 ‘가난뱅이’는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가면 하느님의 집은 비워지며, 그렇게 가면 하느님의 집은 무너지게 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은 이름의 교황님이 지금 늘 외치고 계시는 것처럼.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