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믿는다는 것]

제가 사는 수도원에는 작은 텃밭이 있습니다. 짬이 날 때마다 가서 밭을 가꾸지요. 본래 그곳은 집이 있던 자리였는데 그래서 땅이 몹시 척박했습니다. 집이 허물어진 뒤 몇 년 방치되어 있던 곳에 밭을 만들기로 한 다음에 제일 먼저 바닥 콘크리트를 깨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돌을 엄청 골라냈어요. 그랬어도 첫 두 해 동안에는 고구마를 심어 수확할 철이 되면 고구마를 캐는지 돌을 캐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밭 꼴을 갖추어갑니다. 해마다 음식 쓰레기를 묻고 퇴비를 만들고 효소를 뿌려주는 수고가 들어간 탓일 겁니다.

올해는 호박을 많이 땄습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린 뒤 텃밭 가장자리에 숨듯이 매달려 있는 맷돌호박을 따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아, 이 호박은 평소에 나를 잘 챙겨주시는 피정 지도 신부님한테 선물로 드려야지.’ ‘이 유난히 큰 녀석은 가족 수녀회에 보내는 게 좋겠다.’ 혼자 흐뭇해서 웃습니다. 이 수확물을 받으며 기뻐할 사람을 생각하면 저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호박을 따다가 밑을 파 보면 굵은 뿌리가 땅 깊숙이 뿌리내린 걸 보게 됩니다. 아, 이렇게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뻗으니까 큰 호박을 맺을 수 있는 거로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우리 믿음의 생활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내려가 그 속에서 이런저런 돌들을 골라내고 하느님이 들어오지 못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발효시켜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분노나 슬픔이나 외로움들조차 때로는 내게 오시는 말씀의 씨앗을 자라게 하는 영양분이 됩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나는 일들이 믿음의 일이고 기도라고 한다면, 믿음과 기도를 통해 열리는 열매가 ‘삶’이겠지요. 이 삶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형제들, 우리 이웃들을 위한 것이겠지요. 믿음에서 삶을 분리해버리면 그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상봉
예수님도 사랑의 이중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셨지만, 요즘은 유독 하느님 사랑만을 강조하고 이웃 사랑은 도외시하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립니다. 신자가 교회에서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되지 왜 이런저런 사회문제에 관여하느냐, 하는 거지요. 그러나 이런 말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 이야기 속의 사제나 레위인처럼 살라는 주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하시면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기도하는 일은 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일이고 그것은 거기서 만난 하느님을, 거기서 체험한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도 “창녀와 세리들의 벗”이라는 험담을 들으셨지만 이것은 그분이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불편해 했던 사람들의 타박이었습니다. 믿음이 삶으로 열매 맺고 그 삶을 통해 우리 믿음이 더욱 굳세어지기를, 그렇게 우리 또한 마리아로서도 마르타로서도 예수님 곁에 머무는 신앙인이기를 희망합니다.

황인수 신부/성바오로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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