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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나를 깨뜨리다, 프란치스코의 오상 _라베르나2[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20]
황인수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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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6  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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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숙소 앞을 거닐다가 휴스턴에서 온 마리아를 만났다. 젊었을 때 미국으로 이민한 그는 남편이 열 살, 네 달 된 아이 둘을 남기고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32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혼자 살았단다.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아이들이 자라면 형편이 나아지리라 생각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어려움도 자랐노라고, 우리가 수도자라고 했더니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란다. 자녀인 루카와 줄리아나를 위해, 자신의 회심을 위해 그리고 루카와 줄리아나가 아이들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다. 아마도 손자들이 걱정인 게다. 삶의 고통과 근심은 언제나 끝나는 것일까.

라베르나. 프란치스코가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받은 곳, 그래서 그런지 성지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들은 어떤 고통을 안고 이곳을 찾아왔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저 표정들 너머에 어떤 아픔과 슬픔이 숨어 있을까. 성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를 모두 여섯 번 찾았다고 하는데 그가 오상을 받은 것은 1224년 마지막 방문 때의 일이다. 그해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새벽에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기도한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님,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주십시오. 첫째,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의 가장 괴로웠던 수난의 시간에 받으셨던 그 고통을 할 수 있는 만큼 제 영혼과 육신이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둘째, 당신이 저희 죄인들을 위해 그 수난을 기꺼이 견디어 내실 만큼 불타올랐던 그 사랑을 제 마음에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느끼게 해 주십시오.”

   
▲ 오상 경당 전경(왼쪽), 성인이 오상을 받은 자리.ⓒ김선명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고통과 사랑을 청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고통, 그 고통의 최고 형태가 십자가라면 십자가는 동시에 가장 큰 사랑이 된다. 다섯 상처는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다. 우선 꼼짝할 수 없게 두 손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정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은 십자가 위의 사람은 옆구리로부터 심장을 찔려 피와 물을 쏟는다. 예수께서 옆구리를 찔리는 것은 로마 병사들의 전투 수칙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군인들이 가슴을 보호하는 흉갑을 차기 때문에 로마 병사들은 전투할 때 옆구리를 긴 창으로 찔러 심장을 관통하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무기와는 가장 거리가 멀었던 사람, 벌거벗은 예수에게 이 군인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때 이미 죽은 예수의 심장 속에는 피와 물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에 물과 피가 쏟아졌던 것이라고. 그렇게 하느님의 죽음은 명백하게 되었다.

오상 경당 정면에는 로비아의 안드레아(Andrea della Robbia)의 테라코타 작품 ‘십자가에 못박히심’이 있다. 테라코타는 흙을 구워 만드는 일종의 도자기다. 흙으로 빚은 형상에 뜨거운 열이 가해져 예술 작품이 되듯 성인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달구어져 주님의 다섯 상처를 육신에 품게 된다. 오상 경당의 바닥, 성인이 오상을 받은 자리에는 “주님, 여기에서 당신의 종 프란치스코에게 우리 구원의 표지를 보여주셨나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대리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작은 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의 표시처럼 타오르고 있다.

   
▲ 오상을 받는 프란치스코(왼쪽), 프란치스코의 기도처.ⓒ김선명

사랑에는 사랑으로 응답하는 법이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법이다. 그리고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은 바로 나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험한 산길 오르신 그 발
걸음마다 크신 사랑 새겨 놓았네.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신 그 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대속하셨네....

나를 깨뜨려 너를 살리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걸 생각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닮고 싶었던 성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리보토르토에서 형제들과 첫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책인 십자가를 늘 펼쳐 읽었던 프란치스코, “항상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살았고 십자가의 달콤함을 인식했으며 십자가의 영광을 설교했던” 프란치스코는 라베르나에서 그렇게 사랑하던 십자가를 닮게 된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닮는 법이니까. 이렇게 둘은 하나가 되었다.

   
▲ 순례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나서.ⓒ김선명

이곳에 묵으면서 친해진 순례자들과 보나벤투라 경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피렌체에서 온 세르지오와 안나마리 부부, 학교에서 종교 과목 선생님으로 일한다는 바르바라와 엠마누엘라. 매일 나를 깨뜨려 너를 사랑하는 길에 부름받은 사람들, 우리는 모두 프란치스코가 걸은 길 위의 순례자들이다.

   
▲ 천사들의 마리아 성당 제대 위의 십자가 모양 마이크.ⓒ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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