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지난 12월 5일 미합중국 뉴욕의 제이에프케이 공항에서 활주로로 향하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회항한 일이 있었다. 이른바 ‘땅콩 회항’이라고 불리며 우리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대한항공 창업주 3세인 조현아 부사장이 마카다미아넛 서비스를 문제 삼아서 승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였고, 결국은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고 문제가 되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했고, 조현아 부사장 역시 사과를 했다. 그러나 진심어린 마음이 보이지 않은 사과로 인해 여론은 더욱 들끓었고, 이제 이 사건은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의 문제와 핵심은 버릇없는 재벌 3세의 못된 행실이 아니다. 못된 행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그것이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면 사법처리를 받으면 될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왜 사무장이 비행기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나?”하는 점이다. 건강한 상식선에서 말하자면, 기내에서 난동 수준의 소란을 피운 조현아 부사장이 내려야 하고, 부사장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하고 불법적인 명령은 거부되어야 하고, 비행기는 “매뉴얼”대로 이륙했어야 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유튜브 KE Koreanair 게시 A380 홍보영상 갈무리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와 조직 문화 안에서 부당하고 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하고, 그 기업과 조직의 원칙과 “매뉴얼”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원칙과 매뉴얼을 따르기 보다는 부당하거나 불법적인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상급자의 명에 따르는 것이 우리나라의 조직 특성이다. 이러한 문화 또는 행동방식은 결국 그 조직-그것이 기업이든지 국가든지-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방식의 가장 깊은 뿌리는 공적인 영역을 사유화해 버리는 “사적 이익이나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진 폐쇄된 지배자들의 집단”(요한 바오로 2세, "백주년", 46항 참조)이다.

사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덫은 거대 기업집단의 족벌 세습체제다. 온갖 불법과 탈법으로 재산과 경영권은 세습되고, 재벌 2세와 3세의 임원 승진은 일반인보다 훨씬 빠르다. 능력과 경력으로 보다는 핏줄로 맺어진 관계를 통해 기업이 운영되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재벌기업들의 경쟁력은 많은 부분에서 국가의 정책적 도움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자 감세로 대표되는 자본 축적 우선의 조세정책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보다는 연구개발비, 또는 국가 자산을 공정한 시장 가격 이하로 장악하거나 정부에 물건을 팔면서 시장 가격 이상을 받아 챙기는 방식으로 보조금을 받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식의 기업 경영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가지겠으며 그들의 수익이 어떻게 우리 사회 전체의 수익으로 분배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우리 경제를 염려하는 분들은 혹여 재벌기업이 외국으로 옮겨 갈까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그분들의 염려는 한편 이해되기는 하나, 내가 보기엔 노파심에 가깝다. 한국의 재벌들이 조현아 부사장과 같이 버릇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시장, 고학력의 숙련된 노동력, 세금 감면 정책과 정부 보조금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옮겨갈 만큼 멍청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덫 역시 권력의 사유화다. 출퇴근에 대한 개념도 없어 보이는 우리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권력을 몇몇 사람들과 나누어 행사한다. 가장 공적인 영역이 되어야 할 곳이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기록물의 수준은 “찌라시” 수준이다. 이 정도 수준의 조직에다가 "의사결정과정이 어떠한지"를 묻는 것은 코미디일 뿐이다.

정치와 국가는 물론이거니와 경제 역시 “모든 이”를 향해야 한다. 즉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들이 모든 이를 위한 사회적 수익이 되어야 한다. 시장이 그 역할을 못한다면 국가와 정치가 나서서 조정해야 한다. 공동선의 원칙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읊는 것이 의미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의 영역까지 모두가 사적 이익을 위해 몇몇 집단이 뭉쳐져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할 사람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누가 비행기에서 내려야 할 것인가?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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