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벌써 오래된 일처럼 여겨지지만 작년 2013년은 가톨릭교회에서 길이 기억될 만한 한 해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가 전격 사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해다.

그 이전의 8년 동안 베네딕토 교황의 리더십은 여러 가지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교황에 선출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를 고수하는 성 비오 10세회(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개혁과 교리에 반발하여 창립된 성직 수도회)의 르페브르 주교를 복권했고,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의 강연에서는 무슬림을 폄훼하는 듯한 표현 때문에 한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재임 기간 동안 계속해서 세계 각국 사제의 아동성추행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특히 교황 자신이 뮌헨 교구장이었을 때 발생한 사제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사임 직전에는 바티칸 은행의 부패와 돈세탁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그는 열정과 신념에 가득 찬 신학자이긴 했지만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분의 사임은 성령의 부르심에 대한 순명이라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교회 역사상 600년 만에 교황이 사임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베네딕토 교황이 신앙교리성 장관이었을 때부터 줄곧 비판적이었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조차도 교황의 사임이 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프는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으로 앞으로 죽음으로 교황직무를 마감하는 전통이 사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임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오르는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프란치스코가 교황이 되었고, 남미 출신 교황으로 인해 앞으로는 유럽에서만 교황이 선출되는 전통이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교회의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 난민선 침몰 사건을 보도하는 영국 BBC뉴스 갈무리 ⓒBBC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직후 ‘로마와 온 세상’(Urbi et Orbi)을 향해 보내는 첫 강복에서 무엇보다도 모든 신자들의 기도로 자신을 먼저 축복해 달라고 청하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성 요셉 대축일에 봉헌된 착좌미사에서 새 교황은 요셉 성인이 예수님과 성모님의 보호자였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우주의 모든 피조물의 보호자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첫 사목 방문지를 난민들의 거주지였던 람페두사 섬으로 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는 곳마다 정의와 평화, 화해와 연대를 설파했다. 인간과 노동의 존 엄을 선포하고 물질문명이 만들어 놓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무관심의 세계화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이들의 연대를 주장했다. 교황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비판과 화법 때문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무엇을 숨기거나 손익을 계산하지 않았다. 아동성추행 희생자들을 직접 만나서 사과하며 함께 기도했다. 프랑스의 개혁적 금융인을 바티칸 은행장으로 발령했다. 연민과 연대, 진정성과 투명함이 그의 리더십의 기초였던 것이다.

▲ 바티칸 신임 은행장 장 밥티스트 드 프랑쉬
이제 내일이면 교황이 우리를 찾아온다. 많은 이들은 교황이 우리나라의 많은 갈등의 현장을 방문하기를 기대했다. 그런 기대와는 달리 교황의 방문 일정을 살펴보면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보아 온 교황의 모습대로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세월호 유가족,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 송전탑에 희생되는 밀양 주민들, 용산참사 유가족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 한국사회의 갈등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한다. 교황께서 한국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을 기꺼이 들어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드리길 기대한다.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 주시길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독점자본의 비정과 국가권력의 야만을 꾸짖어 주시길 기대한다. 변두리로 몰려난 사람을 더 큰 마음으로 껴안지 못했고 강도당한 사람에게 참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지 못했던 교회도 꾸짖어 주시길 기대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에 새로운 봄을 열어 주시길 희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렇게 새봄을 열어 주시길 희망하지만, 새봄을 맞이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교황이 정의와 평화의 길을 제시하시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연대를 말씀하시더라도, 그 길을 걸어가고 그들과 손잡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있지만, 교황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참고 Leonardo Boff, Francesco d'Assisi, Francesco di Roma-Una Nuova Primavera per la Chiesa, EMI, 2014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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