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카카오톡’을 사용하다가 ‘텔레그램’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국내에 서버(server)를 둔 카카오톡에서 독일에 서버를 둔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러한 집단적 행동을 두고 ‘탈출’, ‘피난’, 또는 ‘망명’이라고 불렀다.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한 셈이다.

이러한 사이버 망명의 기원은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세월호 사건 당일 7시간과 관련하여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발언했다. 이틀 뒤 대검찰청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엄단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후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서기호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이 회의에는 유관 기관장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의 대표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의 책임자들도 함께 참석했고, 검찰은 ‘사이버상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사이버상의 명예훼손에 관하여 구속 수사와 무관용 수사를 원칙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카카오톡을 비롯해서 여러 포털 사이트와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으로 유언비어, 명예훼손 관련 글을 포털 사이트에 삭제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날의 국무회의 발언에서 시작해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100만 명 이상이 사이버 망명을 감행했다!

▲ 이미지 출처=텔레그램 홈페이지 갈무리

사이버 망명이라고 불리는 이런 사태를 단순한 해프닝이나 소동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이 일이 우리 사회의 맨얼굴, 더 정확히는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럽과 같은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것은 ‘죄목’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개념’조차 없다. 정치 지도자를 풍자하거나 비꼬는 일은 크게 보아 정치적 비판의 한 부분이고, 그것이 도가 지나치다 하더라도 그것을 국가권력이 판단하고 조치하겠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개념’을 가진 대통령이 한 말씀하시자, 검찰은 방송통신망법을 무시하고서 명예훼손의 ‘죄목’을 엄단하겠다며 카카오톡과 밴드 등을 사찰하기 시작했다. 이것 자체로 정치적 비판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가 권력의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해 ‘개념’없는 이러한 짓들이 그들이 살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우리의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사이버상의 정치 사찰을 계기로 진행된 사이버 망명으로 인해서 국내의 IT 산업과 미디어 산업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카카오톡이 창조경제의 모델이라고 추켜세워 놓고서는 이제는 ‘개념’없는 짓으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창조경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만 열면 민생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민생을 내팽개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성숙한 민주주의야 말로 건강한 시장 경제의 밑바탕이다. 먹고 살기 힘든 때야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경제력이 갖추어지면 성숙한 민주주의가 모든 이를 위한 민생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라 경제의 힘으로야 미합중국이 세계 최고이겠지만, 나랏돈의 많은 몫을 전쟁 비용과 국방비에 쓰는 미합중국 민중의 삶이 북유럽 시민의 삶보다 행복하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다는 것은 뻔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 10위권의 부자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 역시 우리의 민주주의가 견고하지도 건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견고한 민주주의 그리고 노동조합을 비롯한 강력한 사회적 연대의 힘이 평등하고 안정적이며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참된 민주주의는 선거와 같은 형식적 절차를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공동선의 추구와 투신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선의 추구란, 사회적 경제적 진보에서 지금까지 소외되어 왔거나 가장자리에 밀려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이들을 위하여 지구상의 여러 지역 사이에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을 이용”(간추린 사회교리 363항)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기분 따라 국가 권력이 법과 절차를 망가뜨리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앉을 곳과 누울 곳을 몰라서 헤매는 수준의 민주주의를 가지고는 민생 경제는 아직도 우리에겐 갈 길이 먼 곳이다.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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