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요즘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는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한다. 홀로 자식만 바라보고 산 ‘순정’의 아버지가 ‘이기적’인 자식들에게 있는 대로 상처를 받을 즈음, ‘돈 많은 여인’을 만나 새로운 전성기라도 맞게 되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향후 아버지의 ‘불효 소송’이라는 놀라운(!) 일이 예고돼 있다. 주 시청자인 장년층의 갈 데 없는 울분과 억울함을 (가장 만만한) 가족에게 터뜨리는 식이 될까 우려스럽다. 김수현 작가의 2012년작 JTBC ‘무자식 상팔자’가 포문을 연 소위 자식 원망 드라마가 본격화 되는 것은 아니길 빈다.

얼마 전까지 시청률의 제왕은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였다. 꼬이고 얽힌 출생 비밀의 극대화와 무제한급 악녀의 진화가 주요 줄거리였다. 친엄마까지 양딸과 손잡고 친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이야기가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으로 생생하다 못해 소름 끼칠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빨아들일 듯한 화면이었다. 악녀들의 눈빛은 브라운관을 뚫고 나오려 했고, 시청률은 치솟았다. ‘뻔한 것 같은데 보면 눈을 뗄 수 없다’는 시청 소감이 많았다. 종영을 앞둔 KBS 일일극 '뻐꾸기 둥지'는 난자와 정자 단계 출생의 비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대한민국 드라마는 마치 출생의 비밀을 제작 원칙으로 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출생의 비밀 외에 뭔가가 더 들어가 줄 때 그제야 비로소 ‘장르’ 구분과 차이가 생긴다. 아닌 것 같다고? 한번 찬찬히 둘러보자. 적어도 현재 방영중인 지상파 드라마들은 출생의 비밀과 DNA 내지는 타고난 귀속지위의 ‘엇갈림’에 대한 코드가 주요 뼈대다. 아니면 그렇게까지 혼신을 다해 ‘감별’하고 ‘전쟁’을 치러가며 얻은 아이가 커서는 부모에게 ‘배은망덕’하는 스토리로 막장의 향연을 펼친다.

출생의 비밀, 제작의 으뜸 원칙인가?

▲ 다른 새의 둥지에 낳은 뻐꾸기 알(이미지 출처=en.wikipedia.org)
그런데 따져볼 게 있다. 출생의 비밀을 내세웠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망하는 드라마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만일 출생의 비밀을 거의 ‘모든’ 드라마에 적용했다면, 이 소재가 ‘비결’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착시(錯視) 현상이 일어난다. 가족끼리 싸우고 또 싸우는 플롯 또한 마찬가지다. 만일 방송사가 그런 믿음에 의한 방침을 세웠다면, 방송사로부터 편성을 따내야 하는 외주제작사와 작가나 연출자들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된다. 말로는 ‘시청자가 보니까’ 만든다고 한다. 정말 시청자의 취향에 대한 반영일까?

KBS '뻐꾸기 둥지'는 심지어 국민의 수신료로 유지된다는 ‘공영방송’의 일일극이 윤리 문제를 외면한 채 대리모 스토리로 시청률만 챙겼다. 어떤 아이를 두고 ‘엄마’가 누구냐가 아니라 ‘누구의 난자’로부터 비롯되었느냐를 따지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난자들끼리의 충돌, 대리모라는 극단적 상황을 ‘애증’ 차원에서 다룬다. 과학 다큐가 아니다. ‘일상성’과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을 기치로 내걸고 자리 잡은 저녁 일일극이다.

출생의 비밀은 진화를 거듭하다 이제 난자와 정자의 문제, 세포 조작까지 감수하고 있다. 난자의 주인은 이제 ‘엄마’가 아니다. ‘공여자’쯤 되겠다. 황우석 박사가 여성 연구원까지 이용해가며 널리 유포시킨 가장 나쁜 개념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그저 ‘난자 공여자’이며 중요한 것은 누구네 집의 ‘씨’냐는 점이다. 재벌가 상속 싸움이라면 천문학적 돈이 오갈 테니 그럴싸한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치자. 대다수 서민들이 ‘동일시’ 속에 시청하던 패턴의 일일드라마에까지 왜 이 소재가 핵심이 되어버렸을까?

'뻐꾸기 둥지'는 제목부터가 생명을 수단화한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남의 노고와 헌신으로 제 새끼를 키운다는 뻐꾸기의 습성, 남의 자식을 밀어 떨어뜨려야만 내 자식이 사는 야만의 둥지가 ‘보편’이라는 뜻인가? 이게 ‘홈 드라마’의 참뜻이 아니라면 이제 출생의 비밀은 재고되어야 한다. 세상 누구에게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특이 사례라면 ‘세상에 이런 일이’의 취재 대상일 뿐이다.

시청률이 높으면 누구에게 좋은가?

인기 드라마의 열매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시청률 전쟁은 시청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광고시장과 방송사의 판촉과 ‘수익극대화’를 위한 것일 수 있다.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상의 기쁨이나 생명의 신비는 그려지기 어려운 듯한, 이보다 더한 작위적 상황은 없을 성 싶은 극단의 연속인 드라마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시청률이 높으면 광고주와 방송사는 웃는다.

방송사는 광고로 제작비와 운영비를 충당한다. 그러니 어떤 인기 드라마가 광고 ‘완판’ 됐다고 해봐야 시청자에게 남는 건 거액 ‘광고비’ 때문에 비싸진 상품들을 사야 하는 부담뿐일지 모른다. ‘막장’이라고 비웃으며 쉽게 소비하지 말고, 왜 우리가 즐겨보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은 다 TV 밖으로 밀려났는지 따져 봐야 할 때다.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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