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연애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들이 올 여름부터 지금까지 꽤 여럿 만들어졌다. 나름 야심차게 기획했고 만듦새도 제법 야무졌다. 그런데 시청률 면에서나 여타의 반응들이 기대만큼 높지 않았다. 미혼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연애 드라마의 ‘온도’는 미지근했다. 과연 36도 이상을 넘어본 적은 있을지 싶을 정도다.

8월에 시작해 10월초 종영한 '연애의 발견'(KBS)도 보던 사람들이 보는 선에서 끝났고, '월드스타' 비(정지훈)가 오랜만에 출연해 걸그룹 ‘'프엑스(f(x))'의 크리스탈과 연인으로 나오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SBS)나, 감우성과 그룹 ‘소녀시대’의 수영이 짝을 이룬 '내 생애 봄날'(MBC), 배우 주원과 심은경, 백윤식의 연기력이 기대됐던 '내일도 칸타빌레'(KBS) 등이 모두 고전 중이다.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만화 원작과 일본 드라마가 있는 작품의 리메이크인 '내일도 칸타빌레'의 경우는, 원작의 열혈팬들에게 비교 당하면서 더욱 곤란한 지경이다. ‘우리 이야기’처럼 공감이 가는 것도 아니고 연기나 분위기가 ‘우리 드라마’ 식으로 편안하게 와 닿는 것도 아니어서 어색하다는 것이다. 이런데 무슨 연애며 무슨 사랑이 가능해질까 싶다.

‘발견’하고 경쟁해야 하는 연애의 피로

▲ '연애의 발견'.(사진 출처=KBS 홈페이지)
시즌3까지 제작된 tvN의 '로맨스가 필요해>시리즈의 정현정 작가와, 가장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주열매’를 열연했던 정유미를 기용한 KBS '연애의 발견' 얘기부터 해보자. 케이블TV에서 성공한 로맨스가 지상파 버전으로 방영된 셈인데, 꽤 ‘야한’ 장면들과 실감나는 연애 ‘밀당’으로 나름 파격적 편성이긴 했다. 게다가 제목부터 느낌이 팍팍 오지 않는가. 연애의 발견이라. KBS 2TV 월화극 '연애의 발견'은 연애 세포마저 말라 버린 시청자를 도발하려 했다.

그렇다. 연애는 이제 발견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콜럼버스가 바다 건너에 있던 기존의 땅을 '신대륙'이라며 '발견'이란 단어를 새로 발명해냈듯이 말이다. 그런 연상에 따르면, 연애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원래의 원주민들이 평화로이 살고 있던 곳을 침략한 것에 불과하다. 연애를 전면에 내세우며 '발견'을 표방하는 이야기가 갈 곳은, 어쩌면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에 관한 슬픈 내기처럼 꼬이고 엉키며 흘러갔다.

여주인공 한여름(정유미 분)은 남하진(성준 분)과 열애중인데, 모든 행동지침의 출발선은 과거의 애인 강태하(문정혁 분)였다. 모든 매뉴얼이 강태하로부터 연유했다. 한여름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시청자는 혼란스러웠다. 기억 속의 강태하인지, 강태하와는 해보지 못한 것을 받아주는 대상으로서의 남하진인가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까지 헷갈렸다.

하진은 여름에게 사실상 중간 정거장 혹은 일종의 '힐링 센터'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이 정말 '둘의 경험'이라면, 여름은 여전히 강태하와 이별하지 못했고 남하진과도 본격적인 연애로 가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진과의 관계는, 태하와 실패한 것을 만회해 성공의 기억으로 남기려는 여름의 안간힘 혹은 몸부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여름은 끝내 갈팡질팡하며 비현실적으로 멋진 두 남자 사이를 헤맸다. 시청자가 사랑스런 한여름 아니 배우 정유미에게 감정이입하게끔 조율된 여주인공 본위의 로맨스는 어쩐지 판타지처럼 보이면서도 속 빈 강정 같았다. 두 남자를 갖고 노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몰라 분열 직전 상태로 보이기도 했다. 이는 요즘 대부분의 '연애' 드라마가 반복하는 패턴이기도 하다. 제일 모르는 것은 자기 마음이기 일쑤다. '밀당'과 '어장관리'에 빠져 양다리를 헤매면서도 똑똑하고 자기 일 잘하는 당찬 이미지를 유지하며 '과거'와도 화해를 해야 한다. 피로하기 짝이 없는 중노동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여름은 태하의 그늘을 떠난 적이 없어 보인다. 태하에게 받은 상처가 많았는지 사랑이 대단했는지, 여름은 자기도 모르게 연애 백과사전처럼 돼 버렸다. 진심은 안 보이고, 연애에서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어떤 여우 같은 말과 기발한 유혹으로 평범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상황을 달달하게 넘길까만 고민하는 온갖 '공식'과 '요령'으로만 가득 차 있곤 했다. 그러다 결국 여름은 (시청자의 예상대로)태하의 그늘로 들어가 버렸다. 하진은 유년의 기억을 다시 잇는 선택을 하고 말이다.

사랑, 둘의 경험이 되려면

시청자는 요즘의 연애 드라마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몰입은 안 되고 계속 지켜보기보다는 다른 소일거리를 찾게 된다. 우선 질문하고 싶어진다. 드라마 속의 그들은 왜 연애를 하는가? 그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연애로 인해 새로 '발견'되어야 할 이는 다른 그 어떤 사람이 아닌 로맨스의 주인공 자신이어야 할 텐데, 왜 기껏 (익숙한)과거의 기억이나 과거의 상처와 닮은꼴을 찾아내는 첫사랑 집착증으로의 회귀일까?

사랑은 둘의 경험이라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사랑이 '둘'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적어도 셋은 넘는 것 같다. 두 사람이 만날 때 '돈이 끼어든다. 한 번 그렇게 '나'와 '너' 아닌 요소가 틈입하고 나면, 제4와 제5의 요소가 끼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부지기수로 온갖 요소가 난입한다. 그러다 '나' 혹은 '너'가 이 틈바구니를 못 견디고 떠나갈 수도 있다. 혼자 남겨져도, 사랑할 때 끼어든 온갖 잡스런 요소들은 여전한 부담으로 남아 괴롭힌다. 혼란은 여전하다. 내가 누군지는 여전히 모른다. 어쩌면 이게 진짜 연애의 민낯은 아닐까.

TV드라마 속 같은 연애를 누군들 안하고 싶겠는가. 문제는 그런 사랑엔 돈이 아주 많이 든다는 것이다. 남자 주인공들은 늘 빠진 것 없이 다 갖추고 있으며 있는 거라곤 '마음의 상처'뿐이다. 여주인공들은 늘 집 있고 차 있는 사람에게 간다. 돈 있는 자들의 연애는 어쩌면 젊은 시청자들에게는 이제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가 배제된 채 너무 화려하고 매끄럽다. 잔뜩 공들여 환상을 직조할 수는 있겠지만, 젊은이들이 감정이입하기엔 차라리 게임과 스마트폰이 더 마음 편한 것 아닐까.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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