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10]

우리신학연구소 설립 초기부터 했던 일 가운데 교회 진단 작업은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누군가에 의지하기보다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어디 한국교회의 현실이 그런가? 뛰어 봤자 벼룩이요, 하느님 손바닥이라고 본당에 적을 둔 신자의 신앙생활은 교구장과 본당 주임사제의 손바닥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래서 소위 진보적 신앙인들에게 주교회의 의장이 강우일 주교라는 점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한 것은 축복이요, 은혜이겠지만 보수적 신앙인들에게 그들은 ‘빨갱이 사제단’, ‘종북 사제단’의 우두머리 정도로 치부될 뿐이다. 실제로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을 표했던 교황이 떠나고 나서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은 “평화 화해를 외치며 갈등 분열 조장하고 떠난 교황”이라는 짧은 논평을 내기도 했다.

교회 진단 작업은 교회 조직 구조의 정점에 있는 주교, 사제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교회 공동체를 구체적으로 쇄신하려는 방편으로 시작한 일이다. 주교, 사제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천주교회 시스템을 바꾸면 구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주년 사목회의 「교회 운영」의안 역시 교회 고유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 구조의 쇄신이라는 점에서 교회 운영 전반을 다뤘다. 의안은 머리말, 교회운영 일반, 교구운영, 본당운영, 맺음말의 순서로 총 5장으로 구성됐으며 6개 항목의 제안 사항을 첨부하고 있다. 의안에 첨부되지는 않았지만, 의안 내용보다 개혁적인 안(교구장 이동 및 주교임기제 검토, 교구 간 균형 발전을 위한 사제 교류, 사목협의회의 의결기관화 등)을 다룬 제안 사항의 내용을 보면 사목회의가 어느 수준까지 교회 쇄신의 의지가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시노드의 바람이 지나간 자리

2000년 대희년을 전후로 한국천주교회는 교구마다 시노드의 바람이 불었다. 인천교구를 시작으로 수원, 서울, 대구, 청주교구가 시노드를 추진하였고, 안동교구의 경우는 시노드라는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농민사목을 주제로 시노드와 같은 수준의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시노드(synod)는 ‘함께 걸어감’을 뜻하는 그리스어에 기원을 둔 말인데 교구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문제를 연구, 검토하고 효과적인 해결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30년 전의 200주년 사목회의는 한국천주교회 차원의 시노드였던 셈이다. 200주년 사목회의의 결과로 나온 문서들이 사문화된 점에 대한 아쉬움일까, 시노드가 쇄신을 향한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으로 시노드 과정에서 진행했던 여러 교구의 진단 작업에 열심히 쫓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시노드 이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200주년 사목회의 때와 다른 답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200주년 사목회의 때보다 진일보한 회의 진행 방법과 진단 도구들을 사용하면서 수고와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갔음에도 결과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 시노드에 열심히 참여했던 그룹들 안으로부터 ‘시노드 무용론’, ‘교구진단 무용론’, ‘조사무용론’ 등의 허망한 단어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쇄신할 수 있다는 미래 희망조차 앗아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대학원 은사 신부님이 진단 작업에 열심인 제자의 모습을 보시고 오래전 던지신 한 마디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쓰러져가는 교회가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는 일 아니냐? 오히려 한 번 제대로 넘어져, 밑바닥을 봐야 쇄신의 출발이 되지 않겠냐?” 맥이 탁 풀렸지만, 당시엔 적당한 답을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구조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은 쇄신의 두 축

본당 수준의 이야기를 해 보자. (1)일부 성직자의 권위의식에 따른 피라미드식 운영과 평신도의 소극적 태도, (2)지역현실에 대한 복음적 판단과 그에 합당한 사목계획 수립 노력 부족, (3)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본당사목계획 미흡, (4)사후 평가 활동의 부재. 200주년 사목회의가 지적한 30년 전 본당 운영의 문제들이다.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전혀 옛날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3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은 넘게 변했을 시간인데 교회는 변화의 무풍지대란 말인가? 독재자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고, 선거부정시비와 강정, 밀양, 세월호 유족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면 교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서슬 시퍼런 독재 시절보다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듯하다. 권력 집중의 가톨릭 방식과 형식적이지만 민주주의 방식을 지향하는 사회, 그 사이에서 쇄신의 방향을 찾아야 할 듯하다.

▲ 안동교구 풍양 농촌 선교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지금여기 자료사진

진단 작업을 하면서 종종 교회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면 과연 쇄신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한다. 주민투표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더라도 어떤 사제를 본당 주임으로 모셔올지, 교구장 주교의 결정 과정에 해당 교구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다면 이러한 변화를 맞는 신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퍽 흥미로운 일인데, 현재의 교회 상황으로 볼 때 흥미로운 결과보다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우려된다. 대다수의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신자들은 침묵하고, 밖으로 돌던 대수천(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들이 본당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시스템을 바꾸려는 사목 진단 작업이 오히려 쇄신의 걸림돌이 아니냐고 되물으셨던 은사의 지적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떤 전제냐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교구나 본당 진단 작업의 경우 처방과 치료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대부분 진단 과정에 교구장 주교나 본당 사제가 동반하지 않거나 못한 경우들이다. 더구나 본당의 경우는 본당 사제가 동반하더라도 인사이동 이후를 고려한다면 교구 차원으로까지 동반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반면 수도 공동체의 경우는 교구와 달리 자기 완결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지니고 있고, 규모 면에서도 움직이기가 쉽다. 그래서 구체적인 치료 효과가 금방 눈에 보인다. 과거 수도회 진단 작업을 함께했던 한 수도회가 식별 과정을 거쳐 수도회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현장 속으로 가는 걸 보면서 이러한 쇄신의 효과는 당사자인 수도회는 물론이고, 수도회의 변화한 존재 방식을 바라보는 교회 구성원들에게도 큰 기쁨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권력자의 선출 방식을 민주화하는 식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과제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우리)와 타자(너희)를 흑백의 구도로 나누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너그러움의 여백에서 민주주의와 복음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의견이 아무리 상반된다 해도 상대방의 인간성마저 부정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중요한 만큼 그에 걸맞게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식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내는 일이 중요해지는 요즘이다.
 

   
 
경동현 (안드레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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