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 8]

올해 10월에 열리게 될 제3차 세계주교시노드 임시총회의 주제는 ‘가정사목과 복음화’이다. 현대 사회의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으로 소집한 시노드에서 ‘가정’을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6월말 발표된 의안집을 참고삼아 볼 때, 이번 세계주교시노드에서는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현대의 시선에 맞게 재해석하고 특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위한 사목방안을 고민하게 될 것을 보인다. 30년 전 200주년 사목회의에서도 ‘가정사목’은 지역사목, 교리교육과 더불어 사목활동 분야에서 따로 다뤄질 만큼 주요한 의제로 논의되었다. 당시 가정사목에 대한 주요 논의내용과 제안들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가정 교회’

200주년 사목회의 <가정사목> 의안은 가정사목의 중요성에 대해 “개인의 구원과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 구원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2항)며, 가정과 사회의 긴밀한 연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정의 위기가 단순히 가족 간의 관계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비롯된 경우가 많으며, 또한 가정의 위기는 고스란히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200주년 사목회의가 가정을 사회문화적 상호관계성과 관련하여 성찰함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200주년 사목회의는 가정을 교회로 강조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면서 평신도 사도직이 시작되는 공동체로서의 ‘가정 교회’로 인식한다(18항). 이는 당시에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1981년)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 세계의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을 정리한 이 문헌에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임무를 1) 인간 공동체의 형성, 2) 생명에의 봉사, 3) 사회발전에의 참여, 4) 교회의 삶과 사명에의 참여라는 네 가지 역할로 정리하였다. 이 문헌의 기본 관점인 ‘가정 교회’로서의 복음적 소명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200주년 사목회의 <가정사목> 의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하지만, 200주년 사목회의 <가정사목> 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제안사항은 그런 통합적이고 대사회적인 관점을 크게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리스도인 가정과 관련한 ‘특수사목’ 영역으로 한정 지으면서 소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3항). 총 9장으로 이뤄진 <가정사목> 의안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서의 신앙생활과 가정윤리 등 주로 교회 내적인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안의 끝에 붙여진 다섯 가지 제안사항 역시 1) 혼인과 가정문제 연구소의 설립, 2) 자녀교육을 돕는 부모용 교본과 지침서 마련, 3) 신자 가정을 위한 가정잡지 필요, 4) 가정문제 상담자 양성 및 상담소 설치 운영, 5) 교구법원 요원 양성과 활성화 등 특수한 영역으로서의 ‘가정사목’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구 설립이나 교육 자료 마련 수준의 제안에 그치고 있다.

본당 중심의 사목에서 가정 중심의 사목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가정사목은 경제개발계획 차원에서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하면서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되자,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제14조)이 포함된 이 법이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 때문에 70~80년대의 가정사목 활동은 주로 자연적 가족계획 방법을 소개하고 보급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비록 200주년 사목회의에서 가정의 공동체성과 사회적 관계성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전반적인 가정사목의 관심은 생명운동으로 치우쳐 있었고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가장 기초적인 사회 공동체로서 가정이 갖는 의미와 그리스도인 가정의 사도직 역할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를 맞으면서부터이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가정의 해’를 맞아 <가정 교서>를 발표하고, 이때부터 3년마다 가정의 의미와 소중함을 되새기는 ‘세계가정대회’도 열기 시작했다. 한국 천주교회도 이 해에 가정사목 교서를 발표하고 ‘전국가정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가정사목을 전담할 기구를 교구 차원에서 마련하는 등 가정사목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여러 가정 문제가 제기되면서 가정사목은 점점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2000년을 전후로 열린 몇몇 교구의 시노드에서도 가정사목을 비중있게 다루었으며, 2001년부터 한국 천주교회는 성가정 축일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게 되었다. 특히 2004년 ‘가정’을 주제로 열린 제8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 정기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한 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이라는 사목교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문헌에서는 200주년 사목회의에서 언급했던 가정의 공동체성과 사회적 관계성을 좀 더 구체화하고 있다. 이 문헌에서는 특히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인 가정이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을 수행함으로써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하고(21항), 가정사목을 “사목의 일개 영역이 아닌 사목의 핵심 영역으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요청된다.”(60항)고 제시하였다. 지난 호 <특수사목: 청소년(학생) 의안>의 필자였던 조재연 신부도 언급했듯, 앞으로의 사목은 ‘가정 친화적’인 분위기의 통합적인 시선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가정 교회’의 사목자인 평신도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나 출산은 점점 불가능하거나 기피의 영역이 되고, 가정 공동체 안에서 친밀함을 나누지 못하고 고립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위를 조금만 돌아봐도 위기에 처한 가정이 쉽게 발견되는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과연 그리스도교 신앙은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교회의 가정사목은 대체로 가정이 이혼 등으로 해체되지 않고,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성과 생명 윤리를 실천하며, 기도와 신앙 안에서 긴밀한 복음적 친교를 나누는, 소위 ‘성가정’을 지향하는 사목 정책과 프로그램 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위기 가정의 문제에 대처하는 사회복지 차원의 접근도 있지만, ‘성가정’을 기본 전제로 전개되는 분위기 때문에 ‘가정 교회’는 평범한 가정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정작 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위기의 가정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의 심정으로 교회 밖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곤 한다.

교회공동체가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거룩함을 지향하며 세상 안에서 사랑의 성사(표징)가 되는 것처럼, ‘가정 교회’ 역시 온전한 성가정만이 아니라 부족한 나름의 모습 안에서도 복음적 삶을 지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려는 인식과 노력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세상 속에서 어려움에 부대끼면서도 거룩함을 추구하는 신자 가정이야말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상의 가정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훌륭한 ‘가정 교회’가 될 수 있다. 교회의 가정사목은 성가정이 되지 못하는 이들을 배제하거나 단죄하는 사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가정이 세상 안에서 ‘교회’로 살아가는 사목이 되어야 하고, ‘가정 교회’의 주인인 평신도가 사목자로서 세상 안에서 봉사하는 사목이 되어야 한다.

“평신도는 가정성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고유의 성소를 받은 것이며 평신도 활동의 처음 대상이 가정이다. 가정사목의 성패는 평신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으며 이웃 가정 안에도 올바른 가정사목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200주년 사목회의 <가정사목> 의안 5항)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일상의 경험을 신학으로 풀어내고 싶은 평신도 신학연구자. 여성인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이며, 특히 종교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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