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노래였던 “내 발을 씻기신 예수”가 요즘 자꾸 떠오르는 것은 교황님께서 방문하셨던 까닭일까? 그분이 수인들의 발을 씻기는 사진을 본 때문일까? 사순절도 아닌데, 그냥 그 노래가 입에서 자꾸 흘러나온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자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내게 익숙한 <갓등중창단>의 노래가 아니라 가수 <바다>의 노래가 들려온다. 남성의 목소리와는 다른 감동이 있다. 그런데 그 목소리보다 더한 감동은 그 뒤에 있었다.

자신이 가수라는 직업의 화려함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평범한 신앙인임을 이야기하는 <바다>가 나에겐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바다>는 중고등학교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꿈에 대해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의 학생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꿈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언제 이 노래가 시작되었을까? 나도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2제자는 아니지만, 12제자와 똑같이 내 발을 씻기시는 예수를 관상한다는 것은 감격적이었다.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마음은 벅차다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내 부족함에 대한 깨달음과 미안함과 감사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목구멍이 아파올 만큼의 흐느낌이었다.

때로는 정말 중요한 걸 잊고 사는 순간이 있다. 내가 처음 부르심을 깨달았던 순간이 중요한 건 그 순수한 지향 때문이다. 부르심의 첫 순간엔 나와 하느님, 그 둘밖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느님께서 나의 행복을 바라실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내겐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어느 순간이든 힘들거나 식별이 어려운 순간이 올 때면 내 자신에게 단순해지자고, 솔직해지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정말 중요한 것이 보인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이 온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우리에게 어린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는 아무 것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욕심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다. 그저 지금 그 순간에 만족한다.

욕심이 없을 때 우리는 솔직해진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나의 순수한 모습을 찾아 나설 용기도 그때 생긴다. 성소를 결정할 땐 그만큼 단순했던 것 같다. 내가 결정했다기보다 부르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용기를 가졌다고 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부를 땐 예수와 내가 그 주인공이 된다.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과 그 사랑을 느끼는 내가 거기 있다. 그리고 내 발을 씻기는 그의 무릎 꿇은 모습이 나의 중심을 깨운다.


내 발을 씻기신 예수

         - 신상옥 작사/작곡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참된 삶을 보여주셨네

가시밭길 걸어갔던 생애
그 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죽음 앞둔 그 분은
나의 발을 씻기셨다네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그 모습 바로 내가 해야 할 소명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먼훗날 당신 앞에 나설 때
나를 안아 주소서
 

(바다가 부른 '내 발을 씻기신 예수' / 유튜브)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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