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우리 아버지는 원예사셨다. 어머니는 글을 좋아하는, 책을 내지 않은 시인이셨다. 우리 집 정원엔 늘 나무들이 가득했고, 오요도 꽃이 가득 핀 날에는 꽃이 아깝다며 어머니가 우리를 재촉하여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가끔씩 그 사진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수녀가 된 딸의 사진첩과 우리 가족들의 사진첩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져가라고 하신 후, 아버지의 옷가지들과 함께 어머니는 그 사진첩들을 불태우셨다. 아마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보관해두고 싶어 가지고 갔을 법한 오요도 사진 아래 있던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이 시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난 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요즘 천변을 걸으며 갖가지 꽃들을 본다. 물이 맑지도 않은데, 해오라기들로 천변은 화려하기만 하다. 내가 언제 이 길을 걷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는지, 오늘은 출근하며 나도 모르게 이 행복을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오라기들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기도 하고, 고기를 잡으려고 물 한가운데 집중하고 서 있기도 한다. 이름 모를 꽃들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빛을 발하며 서 있고, 무리 진 달맞이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그 천변의 한 켠에는 새벽시장 상인들이 벌써 물건을 거의 팔아,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은 몇 가지 채소를 더 팔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모든 것이 묵주를 들고 기도하며 걷는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나의 일상이다. 상인들의 얼굴은 검고, 젊은이가 없다. 그들 중 누군가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기도 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마늘을 까면서, 또는 파를 다듬으면서 옆에서 장사하는 또 다른 터줏대감들과 꼭두새벽부터 허물없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은 위치도 바뀌지 않고 내일 아침이면 모두 바로 오늘 있었던 이 자리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마치 출석이라도 부르듯 나와 설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바친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 KBS2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가족사진’을 부르는 김진호

어느 날 조카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보고 듣게 된 김진호의 ‘가족사진’은 참 감동을 주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의 가족특집에서 소개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 노래가 실화를 바탕으로 가수 자신이 만든 노래라는 소개를 들으며, 나는 노랫말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이 노래 들어봤느냐’며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하고, 그날 점심을 먹고 난 후엔 아예 그 노래를 틀어놓고 직원들과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거기 자신을 희생하셨던 분들이 있어서인 건 아닐까? 고향이 늘 가고 싶은 땅이 되는 건, 거기 자신을 남김없이 내어준 거름 같은 분들이 있어서인 건 아닐까? 그래서 누구에게나 어릴 적 가족사진은 추억이 되고, 꿈이 되고, 고향이 되고, 미래가 되는 건 아닐까?

오늘 저녁기도 후엔 서랍에 고이 모셔져 있는 사신 몇 장 없는 앨범이라도 꺼내서 가족사진을 들여다보아야겠다.


가족사진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설레는 웃음은 빛 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딸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 속
아빠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 김진호 - 가족사진 (KBS2 <불후의 명곡2> 5월 24일 / 동영상 제공 KBS Youtube KBSKpop)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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