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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약을 알고 있다[할머니 탐구생활 - 12]

올해 들어 다울이가 자주 아프다. 무리해서 놀거나 먼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하면 어김없이 몸살을 앓는다. 봄에는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 달 넘게 고생을 했고 그 뒤로도 배탈에 감기에 줄줄이 사탕처럼 탈이 나니 나는 줄곧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아픈 아이와 함께 아픔을 겪어 내는 일은 오롯이 엄마인 내 몫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손발과 온 몸 구석구석을 주물러주고 발 목욕을 시켜서 땀을 흘리게 하고 따듯한 차와 죽염을 수시로 먹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손을 따거나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도 하고…. 병원이 멀기도 하거니와 애당초 병원에 기댈 생각일랑 없는지라 그동안 쌓인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밤낮 없이 아이와 함께 씨름을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길면 사흘 정도를 보대끼면 다울이는 몸속 대청소를 무사히 잘 마치고 다시 씩씩한 아이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말이다, 얼마 전에 내 임상 경험에 없는 새로운 증상이 출현하여 나를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그러니까 화순 나들이를 다녀온 다음 날 아침이었는데, 아침밥으로 삶은 감자를 먹던 다울이가 갑자기 울상을 짓는 것이다.

“감자 먹으니까 입이 아파.”

처음엔 감자의 아린 맛 때문인가 해서 밥을 주었더니 그래도 아프단다. 뭔가 이상해서 다울이 입 안을 들여다봤더니 입병이 났는지 양쪽 볼 안쪽에 하얀 게 잔뜩 나 있었다. 피곤해서 그런 것이니 하루 이틀 푹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아이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죽을 끓여 줘도 한 숟갈도 채 넘기질 못하고 급기야 물을 먹어도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입맛은 살아있는데 입이 아파서 못 먹는 괴로움! 얼마나 괴로웠으면 밥상 앞에서 다울이는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나도 밥 먹고 싶어!!!”이러면서 말이다

그런 다울이를 앞에 두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가 있나.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느긋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꿀은 물론이요 프로폴리스가 좋다고 하여 발라주기도 하고, 어떤 책에 보니 달개비를 갈아서 불에 달여서 염증 부위에 붙이면 약이 된다고 해서 그것도 해 봤다. 약을 바를 때마다 다울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통에 진땀을 빼야 했지만 바른 뒤에 낫기야 한다면야!

하지만 크게 차도가 보이지 않아서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수봉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다울이가 얼굴이 쑥 빠졌네. 어디 아픈감?”
“입병이 심하게 나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어요. 배는 고픈데 뭘 먹을 수가 없으니까 얼마나 짜증을 내는지…. 다울이 무서워서 밥도 숨어서 먹는다니까요.”
“오메! 진작 알았으믄 유부자 좀 갖다줄 건디. 입병 났을 때는 유부자가 제일이여. 병원서 준 약은 세 벌을 먹어도 안 듣는디 유부자 끓인 물을 머금고 있응께 금방 낫드랑께.”

수봉 할머니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 수봉 할머니가 주신 오배자 한 움큼. 나와 아무 관계 없는 줄 알았던 벌레 알집이 입병에 명약일 줄이야. ⓒ정청라

“유부자요? 그게 뭔데요?”
“옻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에 열린 거 있어. 안에 나비가 들었는디 그게 약이라드만. 어떤 아줌마가 약으로 쓴다고 부탁하길래 쪄서 말려 놨었는디, 그 아줌마 다 줘블었는가 남겨 놨는가 모르겄네. 내가 가서 찾아 볼텡께 기둘려 봐.”

잠시 후, 수봉 할머니는 신문지에 돌돌 말은 유부자를 가지고 나타나셨다. 이게 정말 약이 될까 의심 반 기대 반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 말대로 물에 넣고 끓여서 그 물을 오랫동안 머금고 있게 했더니 놀랍게도 단방에 효과가 나타났다. 정말이지 이렇게 신기할 수가! 도대체 유부자가 뭐길래?

   
▲ 붉나무를 찬찬히 살피다가 오배자를 발견했다. 아직은 이르고, 좀 더 여물어서 벌레집이 커졌을 때 따야 약이 된단다. ⓒ정청라

다울이 아빠는 유부자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직접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와서 수봉 할머니에게 보이더니 유부자는 아무래도 붉나무에 달리는 오배자 같다고 했다. 오배자라면 붉나무에 기생하는 벌레가 잎에 낳은 알집! 천연염색 재료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은 있는데 이게 다울이를 구하는 약이 될 줄이야. 실제로 오배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항균작용이 뛰어나 구내염 치료제로도 쓰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부자는 오배자가 틀림없다.

아무튼 수봉 할머니가 가져다주신 오배자 한 움큼 덕분에 입병 대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입도 잘 못 벌리던 다울이는 다음 날부터 입을 점점 더 크게 벌릴 수 있게 되었고 이것저것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맛보았다. 밥이 이렇게 맛있는 건 줄 몰랐다며 능청을 떨면서 말이다.

이로써 나는 병이 나면 여기저기 소문을 내라던 옛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나 숱한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엄청나게 다양한 임상 경험을 축적한 할머니들에겐 더더욱 소문을 내야 한다. 할머니는 분명! 약을 알고 있다. 
 

정청라
귀농 8년차, 결혼 6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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