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 4]

200주년 사목회의 「수도자」의안은 한국교회 최초로 수도자 생활을 다룬 문헌으로 ‘수도생활’, ‘양성’, ‘사도직’, ‘반성과 전망’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의안은 변화하는 한국사회 안에서 수도생활의 근본과 도전에 대한 수도자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당시 수도회들이 안고 있던 고민과 도전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한 질문들이다.

① 수도회 고유 카리스마의 퇴색, ② 정체성 부족, ③ 신원의 위기감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는 1970-80년대 한국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맞춰 활동과 기능 위주로 삶이 변화하면서 고유의 카리스마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일 중심 생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특히 활동 수도회들은 선교를 위해 교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수도자를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모두 본당에 보내야 했고, 유치원 학교, 병원 등에도 손길을 보태야 했다. 이러는 동안 한국의 수도회들은 각자의 은사에 관계없이 점차 닮은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안 사항과 후속 실천

▲ 수도자 의안의 제안사항

한국교회 최초로 수도자 생활을 다룬 문헌이라는 공적에도 불구하고, 「수도자」의안은 현대 사회 안에서 수도 생활이 받는 다양한 위기와 도전을 감당하기에는 원론적이고 평면적이라는 반응을 들어왔다. 위에서 보듯이 의안집의 제안 사항들을 표로 정리해보았다. 새로운 비전, 전망을 제시했다기보다는 향후 과제를 중심으로 정리하였고, 굵은 글씨와 밑줄로 표시한 것처럼 교구장 주교와 사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 제시에 수도자들의 큰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전 존재를 걸고 교회에 투신한 수도자들인데, 교회 내 권력관계에서는 교구장이나 교구 사제에 비해 변방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제안사항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안 사항들이 말잔치에서 그치고 말았던 다른 의안과 달리 「수도자」 의안은 수도회의 구체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수도회 차원의 공동 식별을 통해 수도회의 고유한 정신을 사도직에 더욱더 반영하고, 은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도직을 과감하게 정리한 예가 이에 해당한다.

일례로 오늘날 의료 산업은 의료시장 개방과 병원 자본의 경쟁으로 병원이 대형화, 기업화되고 있는데, 수도회들은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 상황에서 수도회 교유의 정신을 지키면서 병원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과감히 정리했다. 2005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부평성모병원(지금의 인천성모병원)을 인천교구에 넘겼고, 2007년 성가소비녀회는 성가병원(지금의 부천성모병원)을 서울대교구에 넘겼다. 환우의 인권을 존중하는 개방형 병원으로 알려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진료병원인 성가소비녀회의 ‘성가복지병원’의 운영은 수도회 고유의 정신을 살린 사도직 사례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수도회의 은사에 맞지 않아 학교 운영을 교구에 넘긴 사례, 해외 오지에 선교사를 파견한 사례 등 「수도자」의안의 제안 사항들은 소금 녹듯 새로운 사도직 현장으로 녹아들었다.

오늘의 수도회, 종교 NGO로 존재할 수는 없을까?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간의 수도자 현황 통계에 따르면 수도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성소의 감소 내지는 중지, 교회 안팎에서 활동 범위의 축소,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지금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활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추세를 보더라도 최근 15년 동안 성소는 꾸준히 있어 왔지만 이전에 비하여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성소자 평균 연령도 높아졌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수도원 피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자유주의 사회가 약속한 행복이 허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역사를 중시하는 수도원 생활은 현대인의 삶의 가벼움과 신상품 추구에 대한 반박이며, 수도원의 고요함은 온갖 정보기술의 패권에 대한 항의이다. 또한 수도원의 고독은 ‘가족의 가치’가 영혼을 온전히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을 보여주는 무언의 증거이다. 하지만 수도원 피정이나 순례 열풍 속에서 많은 이들이 피정을 하고 싶어 하지만, 수사나 수녀가 되려는 이는 거의 없다. 피정과 순례를 소비하는 평신도들을 탓할 문제일까?

과거에 비해 신자들 일상의 삶과 신앙 활동의 간극은 더욱 멀어지는 것 같다. 삶 따로 신앙 따로가 다수의 모습이고 이를 일치시키려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본당 사목에서는 이에 대한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복음화의 의미가 ‘신자비율 몇 퍼센트’식의 양적 성장, 발전 개념과 혼용되고 있는 것이 교회 현실이다. 헌데 해법은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없는 것도 아니다. 육아 문제를 부모들이 직접 해결하기위해 시작된 공동육아 운동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대안학교 운동으로, 마을 운동으로 이어진 사례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잘 들여다보면 가정사목을 말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형태의 본당사목이나 형식화된 소공동체 운동과 생색내기에 그치는 지역복음화 사목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교구 중심의 본당 사목 시스템 안에서 이러한 실험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수도회들이 오늘날 진행되는 다양한 대안공동체 운동의 사례에서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영감을 얻고, 수도회의 새로운 전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수도회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면 돈 되는 사도직도 과감히 정리할 수 있었던 그런 용감함으로 말이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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