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 3]

200주년 사목회의 「평신도」의안은 전체 12개 의안 가운데 가장 내용이 많다. 「수도자」의안의 10배, 「성직자」의안의 4배에 이른다. 1984년은 한국인 사제가 1,081명에 평신도가 약 185만명이던 시절이다. 숫자로만 보면 사제의 1,700배쯤 된다. 요즘은 사제증가율에 비해 신자의 증가율이 주춤하면서 그 차이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분량으로 볼 때 「평신도」의안이 사목회의에서 그만큼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의안의 구성은 총 2부에 걸쳐 4개 장 160개 항목으로 이뤄져있다. 또 의안 말미에 26항의 제안 사항과 함께 15항에 걸쳐 ‘가톨릭 여성의 위치’를 별정문제로 다루고 있다.

제안 사항에 대한 평가

여기서는 「평신도」의안의 결론에 해당하는 제안 사항의 내용을 범주화하여 살펴보고 그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겠다. ‘운영 개선’은 기존의 사목 관행에 개선이 필요한 제안, ‘인프라 구축’은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필요한 제안, 마지막으로 ‘인식의 변화’와 관련된 제안의 3개 범주로 구분해 보았다.

▲ 평신도 의안 26개 제안사항

위의 제안들은 3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에 적용해도 이상적인 제안들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희년법은―가령 모든 토지를 원주인에게 되돌려준다거나 이스라엘 노예는 무조건 해방한다는― 너무나도 이상적이어서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었는데, 결국 200주년 사목회의 다른 의안들과 마찬가지로 「평신도」의안도 화려한 말잔치로 끝난 셈이 되었다. 아무런 후속 실천이 없었던 ‘인프라 구축’관련 제안들은 물론이고, ‘운영 개선’ 제안들도 사회의 변화에 밀려 실시된 ‘의료보험’과 같은 몇몇 사례를 빼면 거의 변화된 것이 없다. ‘좋은 본당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가끔 강의를 나갈 때마다 단골 사례로 거론하는 것이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이다. ‘처방전은 잘 받았는데 약을 처방하지 않고 방치한 사례’로 말이다. 쇄신을 향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200주년 사목회의 이후 몇몇 교구가 진행했던 시노드는 사목회의와 마찬가지로 진단과 처방, 그리고 후속 조치가 일관되게 이어지지 못하고 엇박자를 내는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시간 들이고 돈 들여 사목진단 해봐야 교회는 바뀌지 않는다.’는 비관론이 유행하는 듯하다. 열심히 공은 들이는데 바뀌는 게 없을 때 사람은 소진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과 기쁨은 식어간다. 열정과 기쁨이 소진되는 교회 구조이다 보니 새내기 신자들은 본당의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소진되고, 교구의 스탭들은 복지부동하는 종교공무원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간다.

「평신도」의안의 26개 제안사항을 표로 정리하다보니 30년 전이나 요즘이나 우리의 생각 속에는 시스템을 바꾸면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잡은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는 시스템이나 건물과 같은 하드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목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라는 소프트웨어가 구시대적이라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사실 이 제안들은 평신도들에 대한 ‘신뢰’만 깔려 있으면 모두 가능한 일들이다. 뭐가 두려운 것인가?

오래된 희망 노래를 다시 부르기 위해

30년 전 「평신도」의안 작성 당시의 한국교회와 평신도의 처지가 지금은 어떨까? 앞의 평가에서 적었듯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평신도들이 중심인 우리신학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있는 평신도 연구자들의 처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연구소에는 5명의 상근 연구 활동가 외에 10여명의 연구위원들이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의 전공 분야는 신학, 종교학에서 철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대학 정규직도 있고, 비정규직도 있고, 고등학교 교사도 있지만 신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은 예외 없이 비정규직 강사 생활로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생업 전선에 뛰어든 연구자도 있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수업이라도 할 수 있어 벌이가 있지만 방학 때는 반백수로 지내가 십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학교 수업 외에 연구 프로젝트 지원 사업에 아주 민감한 편이다. 주로 정부 지원 프로젝트이고 가뭄에 콩나듯 교회의 지원 프로젝트가 있다.

지난해 11월 2주에 걸쳐 서울, 인천, 광주, 대전, 청주 교구 등 여러 교구 주보에 “주교회의 평신도기금 운영위원회의 장학생 모집공고”가 실렸다. 장학금 지원 분야에 3명, 교회 관련 학술연구비 지원 분야에 2명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위원들에게 연구비 지원 정보를 공유할 생각으로 주교회의에 문의해보니 2명의 연구자에게 각각 300만원씩을 지원한단다. 아무런 지원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전국적인 홍보 효과에 비해 겨우 연구자 2명만 지원하는 이런 이벤트는 생색내기 행사에 그칠 뿐 구조나 제도 개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올해 지원 공고가 다시 뜨게 되면 또 지원하게 될 것이다. 이게 평신도 신학자들의 팍팍한 일상인 탓이다.

올해는 200주년 사목회의 30주년인 동시에 우리신학연구소의 설립 20주년이기도 하다. 연구소의 오랜 숙원 가운데 하나가 제대로 된 ‘평신도 양성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다. 그동안 생존을 핑계로 계속 뒤로 미뤄 두었던 꿈이기도 하다. 시스템을 바꾸면 교회쇄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하드웨어에 집중하다 보니 의식을 바꾸는 소프트웨어에는 같은 노력을 들이지 못했다. 아직 열정이 남아 있다면 누굴 탓하기 전에 오래된 희망 노래를 다시 불러볼 일이다.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신파가 아니라 열정과 기쁨을 구체화하고 성사여부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우리들 스스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감사하며 부르는 찬가 말이다. 다행히 연구소를 포함해 몇몇 단체들과 ‘평신도 양성센터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올해가 지나기 전에 소박하게나마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듯하다. 요즘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은 새로운 노래가 아니라 오래된 희망을 다시금 일깨우는 찬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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