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 2]

이 글을 통해 나는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성직자』의안에서 제안했던 내용들이 지난 시간 얼마나 이행되었는지 살펴보고, 이어 이를 토대로 오늘날 요청되는 새로운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직자』의안에서 제안한 내용들의 이행 여부와 평가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이하 사목회의)는『성직자』의안 47항을 통해 다음 아홉 가지를 제안하였다. 한국교회 실정에 맞는 새로운 편제의 성무일도 간행, 종신부제직 도입, 성소후원회 설립, 성직자 양성의 특별계획 수립,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성직자 인사규정 마련, 연금․의료보험․납세규정 마련, 사제 휴가 실시규정 제정, 사제 연수, 사제 생활과 식복사 지침 등이다. 이외에도 의안 1~4장에서 제안에 가까운 방향 제시들이 다수 있었다.

우선 47항의 제안들 가운데서는 종신부제직 도입, 성직자 양성의 특별 계획수립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 천주교회 전체 차원, 또는 각 교구 차원에서 이미 실현되었다. 각 장에서 제시하였던 방향 특히 제4장 ‘사목 기획 및 협의 기구’는 한국 교회가 성장 발전하면서 대부분 실현되었다. 1~3장은 사제들의 자세와 직무 수행에 대한 요청이었기 때문에 이행결과에 대한 양적 평가는 어려우나 정성적으로는 비교적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의안에서 다룬 대부분의 제안과 방향들이 이행 가능하였던 데는 신자의 양적 증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신자의 양적 증가는 그동안 교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인적․물적 자원부족 의 해소로 이어졌다. 한국교회는 이 늘어난 자원을 토대로 사목 활동이나 선교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뤄냈다.

두 번째로 1987년 이후 한반도의 사회정치적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교회는 대외 활동을 줄이고 내부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다. 외부로 향하던 교회의 관심이 내부를 향하게 되면서 교계제도의 체계화․공고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세 번째로 평신도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결과이지만 신자들의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실제로 평신도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그 결과 사제들도 신자들의 높아진 욕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대로 사목활동과 사제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 영향은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다 가지고 있다. 또한 평신도 전문가들의 증가로 본당사목평의회, 교구사목평의회, 교구 각 위원회, 주교회의 전국위원회 등의 구성이 용이해졌다.

마지막으로, 사목회의와 현재까지의 기간 사이에 ‘대희년’을 지내면서 각 교구들은 이를 계기로 시노드를 개최하고 사목회의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다. 특히 교구 시노드는 교구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일부 결과를 사목에 반영함으로써 신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의 두 가지 제안은 왜 실현될 수 없었을까? 종신부제직은 ‘사회 여러 분야에서 평생을 근무하다가 50~55세에 정년으로 퇴직한 군인이나 공무원들’(47항 2)이 복음적 봉사직, 혹은 선교에 투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되었다. 성직자 양성은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나 군인 및 교육 공무원 출신의 청년 퇴직자 등 제2의 인생으로 전적인 자기 봉헌이나 선교를 지망하는 사람, 또는 원시공동체에서와 같이 일정한 지역에 항구히 머물며 직업인으로 활동하면서 성직을 수행할 수 있는 자들’(47항 4)에게 혼인 유무와 관계없이 사제성소를 개방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두 제안은 한국교회의 사제성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아예 검토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실제로 1983년 1,069명이던 한국인 사제수는 2012년 말 4,578명으로 약 4.3배 성장하였다. 같은 기간 신자수가 3.13배 성장하였으니 사제증가율이 신자증가율을 크게 앞선 셈이다. 물론 다른 나라 특히 미국교회에서 볼 수 있는 바처럼 사제 숫자가 양적으로 늘어나도 종신부제직 도입은 가능하다. 그러나 사제성소가 많고 사제들의 나이가 젊은 경우에는 거의 도입을 고려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도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최근 사제성소 증가율이 주춤한 반면, 유능한 평신도 자원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여서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이 제도의 도입을 적극 고려해볼 수 있다. 이렇게 투신을 원하는 신자들에게는 사제직은 물론 수도직도 개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

향후 방향과 제안

사목회의 당시 한국교회는 급속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 물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의안에서 제안하는 내용들이 사제들의 기본 생활, 복지, 교육지원과 관련되어 있었다. 넓게 보면 성소 후원회 설립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1장에서 다룬 사제들의 삶, 영성생활과 관련된 요청에 기초한 제안은 성무일도 편찬 한 가지뿐이었다. 2~3장에서 다룬 내용들도 제안으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현 상황과 미래를 고려하면 이 1~3장에 기초하여 방향과 제안을 도출하는 게 자연스럽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의 흐름에 발맞춰 평신도의 역할이 더 커지는 교회로 변모해 갈 전망이다. 또한 보편교회의 무게 중심이 남반구로 이동하고 있고, 앞으로 이 흐름이 더 가속화될 전망이어서 그만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정의의 과제가 사목과 선교에서 중요해질 터이다. 교회 안에서 보조성 원리 실현이 중요해질 것임은 물론이다. 이 때문에 사제들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권위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 겸손한 자세로 수도자, 평신도와의 연대와 협력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교회 쇄신과 복음화’ 과제는 사목회의 당시만큼 현재도 매우 중요하다. 사목회의는 이 과제 실현을 위해 무엇보다 ‘성직자들의 쇄신과 성화가 선행되어야 한다.’(2항)고 갈파한 바 있다. 특히 물질적 풍요와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는 사제 쇄신과 성화가 더 중요한 과제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과제는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사제들 각자의 삶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미 사제들을 교육․양성․복지 측면에서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사목회의가 갖추기를 바랐던 사목적 토대들도 대부분 구축하였다. 이제 사제들 스스로 쇄신과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

또한 사제들은 의안 11항에서 요구한대로 ‘독서를 통해 전승 문화와 현대 지식 함양, 시대의 징표를 읽는 지혜’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현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불과 삼십년 만에 지구적으로 외연을 넓히게 되었고, 사회도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사제나 신자 모두 보통 이상의 식별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커졌다.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지식도 요청된다. 이제야말로 가톨리시즘이 무엇인지 한국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때이다.

이렇게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를 사제들이 수행할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보조성 원리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사제 본연의 역할에 비추어 불필요한 일은 수도자와 평신도에게 과감하게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기도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이렇게 위임을 해도 불안하지 않을 만큼 내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리함으로써 사목회의가 꿈꾸었던 사제상, 교회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 방향만은 사목회의가 다시 열린다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여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사목회의의 꿈은 아직 미완성이니 말이다.


 
박문수
신학자.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와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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