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200주년 사목회의 - 1]

한국판 제2차 바티칸공의회, 200주년 사목회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응답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안으로는 교회의 내적 쇄신을 추구하고 밖으로는 세상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인류의 공동선을 증진하고자 한 사목적인 공의회였다. 이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한국 천주교회의 방식으로 응답한 것이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선교 200주년을 맞아 열렸던 사목회의라고 볼 수 있다.

200주년 사목회의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 즉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같이 참여하여 회의하고 토론하는 획기적인 자리였다. 사실 한국교회 안에서 전국 규모의 이런 회의를 개최한 것이 처음이라 회의의 명칭이나 내용, 방식 등 그 어느 것도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래서 200주년 사목회의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전국 교구와 수도회, 평신도 단체 등 현장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였다. 덕분에 교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열띤 참여로 얻어진 총 313개의 제안이 모이게 되었다.

▲ 200주년 사목회의 의제
이 제안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라 교회의 내적 쇄신(내성, Ad intra)과 세상과의 대화(대화, Ad extra) 분야로 나뉘어 총 12개의 의제로 정리되었다. 각각의 의제는 사회조사 등 학문적 뒷받침을 받으면서 1년 동안 약 200여 회의 분과회의, 간담회, 세미나, 연수회 등을 통해 검토되었다. 이러한 회의와 합의를 거쳐 마련된 의안 초안을 바탕으로 각 교구에서는 1983년에 교구 사목회의를 진행하였고, 그 논의 내용을 반영한 의안을 가지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친히 참석한 가운데 전국 사목회의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1980년 11월부터 1984년 12월 1일 폐막까지 4년여의 준비기간과 본회의를 거친 200주년 사목회의의 모든 의안은 90% 이상의 투표 결과로 종결되었고 주교회의에서 가능한 것부터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하며 마무리되었다. 후속 조치로 10년 후인 1995년, 주교회의는 사목회의 의안을 반영한 ‘한국천주교회 사목지침서’를 발간하였다.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일깨우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의안작성을 총괄했던 정의채 몬시뇰은 한 학술회의에서 200주년 사목회의가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특히 평신도의 정신과 위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였다. 사목회의 과정에서 수많은 평신도가 그들이 지닌 신심, 지식,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능력을 쏟아 사목회의 의안집 작성에 협력하면서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중요성을 실감케 했다는 것이다. (정의채, 「200주년기념 사목회의 20주년을 맞으며」, 『제21차 정기학술회의 자료집-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재조명』,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2004.)

평신도들은 200주년 사목회의에 전문위원과 대의원으로 함께 참여하면서, 교회의 일은 성직자나 수도자의 몫이라는 통념을 벗어나 자신들의 의무와 권리를 자각할 수 있었다. 성직자의 권위에만 의존하며 수동적인 참여에 머물렀던 평신도들은 자신들도 교회운영과 사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성직자나 수도자도 평신도와 함께 논의하는 경험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정립한 친교의 교회관을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는 평신도와 여성의 교회 참여에 대한 적극적인 권고, 평신도 종신부제직 수여 문제, 평신도 연구기관 설치 등 평신도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다양한 제안들이 담겨있다. 본당이나 교구 단위의 다양한 협의 기구에 평신도의 참여를 강조하였고, 심지어는 주교회의에도 평신도가 참관하여 자문할 수 있도록 권고하기도 하였다. 비록 최종 의안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주교 선출에 대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제청으로 교황님이 임명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평신도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다 하는, 포용적이고 인간적 넓이를 지닌 인격자로서의 평신도상을 그려내기도 했다.

한국적인 교회를 꿈꾸다

200주년 사목회의는 세 가지 사항에 유의하도록 하였다. 첫째, 사목회의는 이미 알려진 신앙의 원리원칙에 충실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법을 연구 검토하여 한국 교회의 참된 성숙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목적 회의가 되도록 노력하였다. 둘째, 사목회의는 보편적 교회 안에서 자리하면서 한국 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수용하고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토착화 가능성을 탐구하고 적극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이 땅의 민족 문화 창달과 인간다운 삶을 증진하는데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셋째, 200년 교회사를 회고하면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터득하고, 민족복음화라는 목표를 위하여 오늘의 현상을 분석․검토하면서, 미래 지향적인 선교대책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원칙들이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한국인의 문화와 삶 속에 토대를 둔 ‘토착화’된 교회이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대부분은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 사회 현실 안에서 제대로 육화(토착화)되지 못함을 지적하면서, 한국인의 심성과 한국 사회 현실에 맞는 사목을 지향하고자 했다. 한국 역사에서 이제 겨우 200년 역사밖에 안 된 그리스도교가 의미 있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한국 고유의 문화 전통과 이웃 종교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함을 인식한 것이다. 이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에서 아시아적 선교 방식으로 제시한 전통문화와의 대화, 이웃 종교와의 대화,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라는 삼중대화의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은 한국인의 삶이나 사유방식에 거부감 없는 신학과 전례를 모색하면서, 한국 사회와 문화를 복음화시키고자 하는 지향을 곳곳에 담아내고 있다. 소공동체의 활성화나 협의적인 사목 체계를 고민하며 민주적인 교회운영을 제안한 것 역시 시대의 요청을 읽으면서 한국 천주교회에 맞는 사목 구조를 만들어내고자 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빛이 되는 교회를 지향하다

200주년 사목회의가 준비되던 1980년대 초반은 교회로선 103위 순교성인의 시성을 추진하며 신앙의 자긍심이 한껏 고무되던 때이기도 했지만, 당시 한국 사회는 신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갈망이 뜨거운 저항으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땅에 빛을!’이라는 구호 아래 열린 200주년 사목회의는 신자들뿐 아니라 ‘빛’을 갈망하던 국민들의 염원에도 응답하는 것이었다.

200주년 사목회의는 그 의의와 목적에 대해 “안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새로워진 모습을 지향하고 밖으로는 온 겨레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유감없이 전하며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려는 것이다. 특히 사목회의는 온 교회와 더불어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시하여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특수사목’ 의안을 통해 고통 받는 이들 중 청소년(학생),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에 대한 사목적 관심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사회’ 의안에서는 사회정의, 언론, 사회 개발, 사회복지, 교육의 문제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폭넓게 다루었다.

인간다운 삶과 공동선 실현을 지향하는 ‘사회’ 의안은 세상의 정의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정의에도 눈길을 돌렸다.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감히 정의에 관해 말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로 교회가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쇄신하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교구 간의 불균형, 도시 본당과 시골 본당 간의 불균형 등 교회 안에서도 일치와 친교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모습이라든가 교회 안에서 일하는 이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습을 먼저 돌이켜보며 스스로 사회정의의 가르침에 맞는 교회가 되고자 했다.

200주년 사목회의 정신을 살려내기 위하여

200주년 사목회의 당시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 의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은 이 의안들이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사목 방향 설정에 큰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한국 천주교회의 방향을 제시한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은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새롭고 획기적이다.

그동안 200주년 사목회의 제안 중 일부는 ‘한국천주교회 사목지침서’에 실렸지만, 대부분의 제안은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않고 빠르게 잊혔다. 2000년 대희년을 전후하여 몇몇 교구에서 시노드를 개최하며 200주년 사목회의가 추구하던 교회의 비전과 방향을 교구 차원에서 다시 다뤘지만, 그 역시 대부분 문서로만 남고 사목 현장에 충실하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논의는 있되 그것을 실천하여 변화하려는 교회의 노력이나 성숙함이 뒤따르지 못한 결과이다.

이번 기획 연재는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을 다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시점에서 각 분야의 의안을 다시 쓴다는 관점에서 그 내용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변화에 비춰 200주년 사목회의 제안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한국 천주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덧붙여보고자 한다. 한 해 동안의 연재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을 성찰하며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일상의 경험을 신학으로 풀어내고 싶은 평신도 신학연구자. 여성인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이며, 특히 종교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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