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신학 오디세이아]

나에게 봄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들의 하나인 미시시피주에 있는 텃와일러(Tutwiler)로 가는 짐을 꾸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올해로 다섯 번째 여행인데,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이 여행은 늘 새롭다. 외국인 선생을 믿고 따라나선 내 학생들을 데리고 남부의 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문득 내가 대학 다닐 때 농활 가던 생각도 나고, 새 세대가 가꾸어갈 이 세상은 인종차별이나 어떤 종류의 억압도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자꾸만 내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사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잘사는 주이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가난한 이민자 가정 출신의 멕시칸, 흑인들이 많고,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남부는 처음 와보는 신세계다. 내 학생들은 삶의 신산을 알기에, 청소부들의 파업이 일어났던 멤피스의 거리를 걸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마지막으로 연설하다 저격당한 모텔에 세워진 인권운동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열심히 노트하고, 눈물을 훔친다. 그런 내 학생들을 보면 나는 또 여지없이 이 젊은이들과 사랑에 빠진다. 이 젊은이들에게서 또 많은 새로운 것들을 보고 배울 것이기에 설레기도 한다. 유홍준 선생이 말했던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게 된다고.

ⓒ박정은

이 여행을 위해 나는 학생들과 진지하게 수업을 한다. 글로벌 가난과 그 구조, 그리고 잊힌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성찰하게 한다. 늘 조용하고 진지한 지미가 물었다. 왜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이 다 잘산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나는 정말 좋은 질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미국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 미국이 어떻게 보이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미국이란 국가의 이미지를 이야기한다. 맥도날드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서. ‘풍요로움과 부유함’이라는 미국의 이미지를 말이다.

물론 지금 대학을 다니는 이 새로운 세대에게는, 미국보다는 일본, 한국 같은 나라가 더 풍요의 상징이다. 그들은 ‘강남스타일’을 따라 부르며, <별에서 온 그대>를 다운로드 받아서 본다. 그들 눈에 한국은 삼성 폰을 만드는 나라이고, 누구나 어학연수를 오며, 값비싼 명품 핸드백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지와 실제는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하게 한 후, 결론으로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나라에도 가난한 나라에도 살고 있으며, 단지 마음이 없으면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언젠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칼럼에 썼는데, 내가 이 수업과 여행을 즐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을 수 있어서다. 여행 중 학생들은 마음에 깊이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술술 꺼낸다. 그럴 때, 그들은 거룩해 보인다. 특히 이번 여행 중 놀라운 일은 내가 처음 만났던 이곳 미시시피의 꼬마들이 제법 커서, 우리가 집짓는 작업장에 와서 목재도 나르고 니스 칠도 함께 하며 자신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이 꼬마들을 나는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친한 꼬마는 수줍은 성격의 마리안나인데 지금 10살이 되었다. 내가 처음 그 애를 만났을 때 5살이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만져보고, 내 머리를 잡아당겨보며 신기해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꼬마가 태어나서 처음 본 아시아 사람인 것이었다. 마리안나는 내게 바로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이 책, 저 책 읽어달라는 대로 책을 읽어주다가, 아주 흡족해 하는 이 꼬마에게 “마리안나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하고 물었다. 마리안나는 아주 강한 남부 사투리로 ‘나는 미용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때 사실 나는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5살 어린아이의 꿈 치고는 너무 현실적이라서. 나는 그 아이가 여자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뭐 그런 꿈을 듣고 싶었나 보다.

ⓒ박정은
하지만 그게 내 편견일 수도 있고, 또 내가 그 아이의 꿈을 놓고 뭘 어쩔 수 있나 하는 생각에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그 후 해마다 나는 이 수줍은 꼬마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이번에는 우리 팀이 도착하자마자 마리안나가 달려와 나를 맞았다. “우리 집이 생겼다”며 손으로 가리키는데, 학생들과 작년에 열심히 일한 바로 그 집이었다.

마리안나는 자전거를 타며, 한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길 건너 옥수수를 잘라내고 난 빈 들판에 가서 마음껏 달리고 춤을 추었다. 흡족한 얼굴로 환히 웃는 그 꼬마에게 아직 네 꿈은 미용사가 되는 거냐고 물었다. 마리안나는 수줍은 듯 그렇다고 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그래, 좋은 꿈이야”라고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그녀의 동생이 “아니에요. 마리안나는 당신처럼 선생님이 된대요” 했다. “정말? 야, 신난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기뻤다. 그녀의 새로운 꿈에 대해서. 마리안나를 보니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었다. 마리안나의 손을 꼭 잡고 옥수수밭 위를 뛰어 내달리며 나는 말했다. 나는 너의 새로운 꿈을 사랑한다고. 너랑 나랑은 좋은 선생님이 되자고 이야기했다.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꿈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면서 나의 기쁨이 커져 감을 절감했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자 집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꼬맹이들이 소년으로 커 가면서 변한 얼굴 속에도 내가 기억하는 꼬마의 얼굴이 있는데, 나는 아마 이 소년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까만 얼굴에 강한 눈빛이 자존심이 아주 강한 아이란 인상을 주었다. 그 애는 우리 일터에 와서 함께 집짓기를 거들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우리의 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 아이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우리가 작업하는 곳에 왔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엄마가 그 아이 모르게 ROTC 훈련에 등록시켜 내일이면 어디론가 떠날 예정이란 것이었다.

그 애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결정을 한 엄마한테 너무나 화가 나지만, 울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열입골 살인 그 아이가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이 서러워서 울컥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없는 이 작은 마을에서 이 소년이 할 일은 많지 않다. 그래서 숀과 같은 미국의 가난한 청년들은 군대에 간다. 군대는 그들의 교육을 보장하고 안정된 수입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숀을 군대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은 별로 없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너의 엄마라도 너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세상은 넓으니 밖으로 나아가 네 꿈을 한 번 펼쳐 보라고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이야기했다. 그날 저녁 작업을 끝내고, 우리는 숀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다. 숀처럼 가난해서 군인이 되었던 에드워드가 기도를 했다. 그의 미래가 아름답고 희망적인 것이 되라고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었다. 내가 울고 싶으면 울라고 하자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울지 않을거예요”라고.

열흘간의 일정을 마치며, 나는 학생들과 함께 우리가 집을 지어준 텃와일러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그간의 체험이 우리에게 준 풍요로움을 감사하며, 우리가 만난 어린이들이 꿈을 키워가도록 기도하면서. 침묵 속의 산책 중, 나는 내 학생들의 눈가에 비치는 아름다운 눈물을 보았다. 거기서 나는 또 한 번의 봄을 만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묘비명엔 “저기 꿈쟁이가 온다. 저자를 죽이자. 그리고 그의 꿈이 어떻게 되나 지켜보자”라는 창세기의 말씀이 새겨져있다. 희망 없어 보이는 미시시피의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의 꿈은 자란다. 미시시피의 3월은 텅 빈 들판이지만, 곧 목화가 만개할 것이다.
 

 
 

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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