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지난 10월 31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 씨가 자결했다. 12월에 돌을 맞는 딸과 아내를 남겨두고 죽을 수밖에 없던 그의 생존을 위협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 서른셋, 얼마 전까지도 형에게 업어달라고 응석 부리던 막냇동생. 그가 노동조합을 통해서 눈뜬 현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이 가족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던 회사. 어떤 가치를 지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책임질 수 없을 것만 같았을 가족.

삼성 본사와 서비스센터의 ‘바지사장’들에게 농락당하던 자신들의 권리를 찾겠다고 노조를 만들었더니, 이제 삼성의 부속품이 아닌 노동자로, 참 인간으로 살게 되었다는 삼성노조 노동자들의 대화를 보노라면, 고(故) 최종범 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 *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페이스북 페이지의 게시물을 허가를 받아 사용합니다.

다른 듯 비슷한 삼성과 천주교

이게 사는 건가 싶었던 최종범 씨의 상황에 대해 ‘삼성이니까 뭐~’ 이러면서 우리 교회가 안도할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것은, 삼성과 한국 가톨릭교회의 거리가 의외의 지점에서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썩 괜찮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가족’, 천주교 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경건하고 거룩한 종교다운 이미지를 견주어 보면 될 것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신자 수와 천주교에 대한 호감도,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 그로 인한 종북몰이, 천주교에 대한 환상과 일반화…….

또 다른 하나는 ‘노조 없음 혹은 인정 안 함’, 즉 무노조 신화다. 2005년 5월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식당 외주화 방침을 세우고 27명의 영양과 직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던 성모자애병원이 있었다. 보건의료노조 성모자애병원지부 관계자의 말로는 인천 지역 성당에 다니는 조합원들이 줄줄이 ‘더는 노조 활동하기가 어렵다’면서 탈퇴서를 제출했다는 거다. “딸이 인천 지역 모 성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탈퇴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성당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이모를 통해 노조 탈퇴 압력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천주교 인천교구를 통해 노조 탈퇴 종용이 이뤄졌다고 했다. (* <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6일 기사 ‘'성당' 마저 노조 탈퇴 요구하나’ 참고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609)

어느 병원의 원장 수녀가 노조와 협상을 거부하며 “예수님도 사탄과 협상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는 얘기는 씁쓸하게 회자되고 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CMC 해고자 5명의 상황도 그렇다. 그나마 병원은 노조라도 있지만, 일반 교구청별로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반 이후로 전혀 없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본사와 하청, 혹은 지사 간의 노동조건 차이’ 문제다. 이건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닐 수도 있지만, 천주교의 각 교구청을 본사에 대입하고, 본당을 하청회사 또는 지사에 대입할 경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동절 유급휴가, 성탄과 부활 후의 휴무, 연차 사용의 쉬움, 즉 주로 휴가 · 휴직 사용의 문제에서 교구청과 본당 사이의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즉 본당에서 일하는 직원은 교구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대기업 직원이지만 실제로는 5인 이하 사업장 직원의 처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연차나 육아휴직 등을 신청할 때 곤란을 겪는 일이 꽤 많은데, 한 사람이 휴가를 쓰면 다른 사람은 자신의 휴무일을 반납하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무자가 한 명인 성당도 많아서, 이런 조정조차 어려운 경우도 꽤 있다.

부서지기 전에 지킬 수 있다면

사제 인사이동이 있으면 사제와 동반하는 사무장이나 식복사(사제관 주방 근무자) 때문에 본당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맥없이 일터를 잃어야만 하는 일이 쉽게 일어나던 때가 있었다. 최근 와서 그런 일은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울대교구는 본당 직원들을 교구청 직원으로 등록하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기꺼이 한 일이라기보다는 노동 관계 부서의 권고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성당 직원, 그러니까 교회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나는, 무노조 신화를 이어가는 천주교와,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응원하는 200일이 넘는 대한문 미사 사이의 거리감이 참 부끄럽고 어색하다. 게다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따스하게 대하는 많은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의 시선도 낯설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와 내 동료의 노동을 그런 눈빛으로 봐준 사람이 있었나. ‘아, 저 시선을 받으려면 교회 내 노동자들도 목숨을 걸고 노조를 만들고, 온갖 생존의 위협을 감수하는 고된 싸움을 해야만 하겠구나’ 싶었다.

대한문 미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아무도 모르게, 여전히 다양하고도 사소한 이유로 일터에서 내몰리는 교회 내 노동자들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 사정을 모른 척 외면하듯이 지켜보아야만 하는 처지라는 게 참 어렵고 힘들다.

지옥 같은 돈 중심의 사회에서 가족들과 살고 아이를 키우려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다른 성당에서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일자리를 잃어도 말도 못 꺼내고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왜 당신의 권리를 버리느냐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 잠시 자존심이 상해도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 우리 모두 사람이라서 그렇다.
 

림보 (필명)
장래희망 있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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