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신학 오디세이아]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찬미하오리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성모의 밤’ 행사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촛불을 켜고 성가를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건 어쩌면 성모의 밤 자체보다도, 행사가 끝나고 신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정리하기 직전 그 짧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달콤한 5월의 밤에, 성모상 앞에 아름답게 놓인 촛불과 함께 젖어들던 행복한 침묵…….

물 흐르듯 내 마음을 흐르는 성모송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또 수도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운 것이 바로 성모신심인 것 같다. 아쉽고, 무엇을 기도할지조차 모르게 막막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던, 영혼의 탄식과 같던 성모송.

미국의 성당에는 성모의 밤이 없다. 아마 5월이 성모성월인 것을 모르는 이도 아주 많을 것이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신심을 강조하지 않는다. 더욱이 내가 십년 넘게 살고 있는 버클리는 매우 진보적인 곳이라 신학적 대화를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지만, 성체조배나 묵주기도 같은 신심행사는 흔하지 않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신심행위를 갈망한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생들이 성체현시를 원했다. 학생들이 자진해서 하고 싶다고 하니 나는 무조건 찬성부터 했다. 가톨릭 대학이라고 해도 가톨릭적인 것을 거의 요구하지 않아서인지, 학생들의 전례 참여가 참 저조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이 나를 흥분시켰다. 이 모임을 주관한 학생이 “마치 내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도 된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접촉하고 초대했다”면서 “성체현시를 거행하니 오라고 하는 초대가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하는 거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사람들이 이런 신심행위를 꺼리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아직도 모든 전례가 사제 중심이라는 것이다. 사제가 제의를 입고 성체를 현시하고 향을 올리는데, 나부터도 솔직히 ‘참 사제 중심이다’ 하는 생각에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학생들을 지지해 주기로 한 약속 때문에 꾹 참고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성체를 바라보는데, 생각지 않았던 감동이 몰려왔다.

빵의 형상으로 계신 예수님의 몸을 머리로 헤아릴 길 없기에 그저 바라만 보았다. 내가 비록 열심한 사람은 못 되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성체 앞에서 보냈던가! 이 신앙의 전통을 젊은이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 참 마음 든든하고 또 고마웠다.

그런데 더 나를 감동시킨 것은 함께 드린 묵주기도다. 그날은 멕시코나 엘살바도르 출신의 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한 단은 영어로, 한 단은 스페인어로 묵주신공을 바쳤다. 영어로 할 때는 그저 묵주기도를 영어로 한다는 정도였는데, 스페인어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소리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들렸다. 내 어머니가 바치던 기도 소리를 그대로 따라하며 익힌 아주 오랜, 그리고 익숙한 기도의 울림이라고나 할까?

사실, 신심이 두텁기로 유명한 남미, 필리핀, 베트남 계통의 신자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들의 모국어로 묵주기도를 배우고, 나중에 커서 영어로 묵주기도를 배운다. 그러다보니 영어로 묵주기도를 못할 건 없지만, 자기 모국어로 묵주기도를 하면 무언가 매끄럽고,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나도 영어로 묵주기도를 할 때는, 그 뜻을 하나하나 새기면서, 혹은 발음에 유의하면서 바치게 되지만, 혼자 묵주기도를 할 때는 우리말로 하게 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으로 시작하는 성모송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 흐르듯 내 마음을 흐르는 것이다.

▲ 프라 안젤리코의 템페라화 ‘수태고지’(1434년)

고통을 넘어 하느님의 약속을 믿은 성모님

그러니 누가 ‘신심’을 ‘신앙’만 못한 것이라 할까. 신심은 논리를 넘는 감성과 애정이 담긴 신앙의 행위이기에, 신앙공동체가 살아온 체험의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성모신심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아름다운 신앙의 행위인 것 같다. 호흡처럼 묵주기도를 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신앙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성모신심은 관상의 경지를 가르쳐 준다. 이웃이 힘든 순간에 어김없이 함께하는 레지오마리애 단원의 작은 희생들이 신앙을 사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런데, 우리가 성모님을 기리는 그 신심의 바탕은 무엇일까? 어느 날 성경을 읽던 어머님은 중학생이던 내게 “성모님은 참 팔자가 세구나” 하셨다. 나는 처음 어머니가 던진 말씀이 좀 엉뚱하게 들렸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성경을 읽어봐.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지셨지, 또 이집트로 피난 가셨지, 게다가 자식을 여의셨잖니”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참 그렇네” 하고 말았다. 너무 좋아하면 닮게 된다는데 나도 다음에 팔자가 세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슬쩍 들었지만, 나는 그저 성모님이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마리아론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성모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한 신학자는 엘리자베스 존슨 수녀님인 것 같다. 나는 미국에 가자마자 우연히 그분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첫 학기라 잘 들리지 않는 내 귀에도 분명하게 그분은 우리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을 하고 계셨다. 모든 여인의 삶, 그것도 많은 고통을 살아냈기에, 성모님은 모든 신앙의 모범이 된다는 그분의 설명이었다. 관습을 깨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묵묵히 걸어간 여인. 그래서인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를 보면 성모님은 천사의 방문을 받으며 결코 기쁜 얼굴이 아니다. 성서는 성모님이 천사의 아룀이 무슨 뜻일지 곰곰이 생각했다고 전한다.

특히 성모님의 일생 중 가장 힘든 부분은 아드님 예수의 시신을 거두는 순간이었으리라. 1980년대, 우리나라 민주항쟁 중, 5월이면 우리는 어머님의 눈물도 함께 기억했다. 돌아가신 부모는 땅에 묻지만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데, 성모님의 아픔은 자식을 여읜 모든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도 남기에 영원한 위로자가 되신 것이 아닐까. 그래서 중세의 성화들을 보면,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순간 기절하는 성모님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는 어머니로서의 삶이 성모님의 삶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그분의 생이 진정한 모범이 되는 것은 초대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생애를 마감하신 것이다. 루카 복음에 의하면, 그분은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기도할 때 함께 계셨고, 성령이 임하실 때도 함께 계셨다. 요한 복음에 의하면, 성모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사랑받는 제자와 함께 가족공동체를 이루라고 부르심을 받는다. 요한 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인이시여”라고 하시는데, 요한 복음에서 “여인”은 특별히 제자들을 부르는 칭호다.

그러니까 성모님은 이 순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살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의 어머니이며 동시에 교회의 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 인간의 길을 가신 그분의 삶을 기리고, 애정을 담아 아름다운 5월의 밤을 보내는 것이다. 아픔과 고통을 넘어 하느님의 약속을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시다고 가슴 깊은 곳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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