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 홍성옥]

본당에 대해서 못마땅한 것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니까 듣고 있던 분이 그랬다. “아직 교회에 대한 기대가 많으신가 봐요”라고. 자신은 기대를 버리니까 본당 생활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수긍해서 그랬는지 그때는 반론하지 못했는데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섭섭한 마음도 들면서 그럼 교회에 대해 기대를 버려야하는 것인가, 되묻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2010년 6월, 10년 동안 몸담았던 본당 교리교사를 그만두고 나니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된 기분이었다. 소속감을 잃은 탓이라기보다 그동안 교리교사의 역할이 본당에만 머물게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본당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론 가까운 본당을 제쳐두고 여기저기서 상황이 되는 대로 미사를 드리곤 했다.

ⓒ박홍기

그러던 중 오랜만에 본당 교중 미사에 참례했다. 여전히 열심이신 낯익은 분들의 활동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부단한 봉사가 본당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음을 알게 했다. 지난 해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주일이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성당에 들어오는 순간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공동체에 분열이 있을 수 있다”는 말부터 던졌다. 때가 때이니 만큼 대선에 대한 관심을 일축하면서 도덕 시간 같은 강론이 길게 이어졌다.

나의 마음 상태와 상관없이 미사는 잘 진행됐지만, 그날 분심이 많이 일어나 미사를 드리는 둥 마는 둥했다. 물론 신부님의 말씀에 수긍하고 있는 분들도 다수라고 생각한다. 미사 전례가 강론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강론을 통해서 본당 신부의 생각도 짐작할 수 있고, 내 생각과 일치할 때 성당 가는 맛도 나는 것 아닌가?

새 신부가 부임할 때마다 신자들은 ‘초보’가 된다

본당의 주인은 신자라고는 하지만, 본당 신부의 태도는 여전히 본당 분위기를 좌우한다. 그 일이 있은 연후에 사제 인사이동 소식이 있었고, 이례적으로 비교적 젊은 신부가 우리 본당에 부임하게 되었다. 새 사람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을 것이고 한 3년 동안 본당과 거리를 두고 혼자 삐쳐 있었지만 나는 본당과 화해하고 싶었다.

새 신부가 오니 색다른 감각으로 미사 분위기도 한껏 살아났고 강론 시간에 웃음소리도 수시로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본당 사목 방향 <2013년 신앙생활 실천>이 나왔다. 명함 크기의 개인 소장용과 본당 제출용이 있었는데, 본당 제출용엔 이름과 연락처를 적게 되어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표시하여 제출하면 되었다.

1.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는 신앙인이 됩시다.
2. 그날의 복음과 아침 · 저녁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신앙인이 됩시다.
3. 평일 미사의 맛을 아는 신앙인이 됩시다.
4. 교회신문 · 잡지 · 서적을 가까이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5. 일상생활에서 결정적일 때 기꺼이 손해를 볼 줄 아는 신앙인이 됩시다.

세례 받은 시간을 더듬어 보니 스무 해가 넘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마땅하고 옳은 항목들인데, 이 항목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 자신이 어린이 취급받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래도 세상에 대한 복음적 시선으로 날카로운 촉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2퍼센트 부족함으로 다가왔지만, 지갑 속에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한 장 곱게 넣어두고 있다. 위 신앙생활 실천지침이 사목회의를 통해서 결의된 사항인지 신부님의 일방적 지침인지 알 수 없지만, 왜 새로운 신부가 부임할 때마다 신자들은 언제나 ‘초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교우에게 실천 덕목을 공모해도 좋았을 것이다. 각자 신앙의 연륜도 다를 것이며 신자들이 지향하는 바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그네의 집 같은 본당이 되길 바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세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교회의 태도를 반성하며 시작되었고, 기쁨과 희망이 되자고 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도 본당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웃 본당에 간다 해서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본당에 대해 푸념을 하더라도 초대교회 공동체 같은 ‘본당’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다.

우리 본당 이웃에는 모범적인 의료생활협동조합도 있고, 대형 마트도 있고, 노점상도 있다. 우리끼리만 잘 단속하는 본당이 아니라, 본당이 지역사회와 연대하는 역할로 역동성 있는 나그네의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부님, 우리 본당에서 정세미(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미사) 한 번 하면 어떨까요?”
“신부님,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으로 사회교리가 좋을 것 같은데요.”
“신부님, 환경, 평화를 위한 사목위원회를 신설하면 어떨까요?”

이번 주일엔 신부님 뵙고 마구 졸라봐야겠다.

홍성옥 (빅토리아,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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