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신학자]

대한민국 군형법 92조는 "계간 및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성간 성행위를 “계간(鷄姦)”이라는 치욕적인 용어로 비하하는 동시에 “추행”이라고 규정하여 동성애를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대표적인 반인권 조항이죠. 형법과 군형법 등 성폭력을 규율하고 있는 법률들이 강제적인 성추행을 처벌하고 있는데 반해, 이 조항은 “계간, 기타 추행”이라면 일괄적으로 징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입니다.

동성애 혐오증이 만연한 군대 내부에서 “기타 추행”이란 다분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겠죠. 2010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이 형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가 마치 모두 비도덕적이며 폭력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 개병제의 현실 속에서 군에 입대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성 소수자들은 더욱 극심한 고립과 폭력을 경험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 미군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미군 내 동성애 금지법 폐지를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한 재미 한국인 댄 최(Dan Choi) (사진출처/http://lgbtpov.frontiersla.com)
헌재의 판결을 읽으며 미군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미군 내 동성애 금지법 폐지를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한 재미 한국인 댄 최(Dan Choi)가 떠올랐습니다. 댄은 아랍어 통역관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군인입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국가를 위해 일하는 군인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 커밍아웃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댄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활약으로 미군 내 동성애 차별조항은 폐지되었지만, 정작 댄은 커밍아웃 이후 자신의 부모님과 친지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댄의 부모님은 캘리포니아에서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집안의 자랑이자 명예였던 댄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댄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게이’가 하나님의 뜻에 반(反)한다고 말하더군요. 내겐 종교적 영향이 강하게 배어 있고, 난 예수님이 제일 좋은 멘토이며 내 삶의 모범이라고 생각하는데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어머니에게 게이라고 밝혔을 때 엄마는 ‘성경에서 돌로 치라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나를 돌로 쳐 보라고 했어요. 엄마는 ‘너 잘못된 거야. 지옥 갈 거야. 성경에서 그렇게 말했어’라고 했어요. 내 종교를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마치 내 종교에 ‘강간당한’ 느낌을 받았어요.”

동성애자 인권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법이죠. 이 사랑의 문제에 관해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또 다른 열렬한 사랑의 이름으로 이웃을 모독합니다. 동성애 뿐이 아니지요. 사랑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동시에 우리와 다른 이들을 가차 없이 정죄하곤 합니다. 사랑, 참으로 모호하고도 폭력적인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주는 그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한 신학자를 소개하려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윤리학자이자 예일대학의 교수이고 자비의 수녀회 (Sisters of Mercy, RSM)소속의 수도자이기도 한 마가렛 팔리(Margaret A. Farley)입니다. 팔리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섯권의 책과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수 많은 강연을 통해 동성애, 여성의 권리, 낙태, 결혼과 재혼 등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교회가 올바른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끊임 없이 자극하고 도전해왔습니다.

정의는 사랑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안내자

제가 소개하려는 팔리의 책은 2006년에 출판된 <정의로운 사랑: 그리스도교 성윤리 구상>(Just Love: A Framework for Christian Sexual Ethics)입니다. 팔리는 이 책에서 특별히 “사랑”이라는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단어가 어떻게 성의 문제에 개입해 왔는지 치밀하게 분석합니다.

팔리는 사랑을 “마음을 움직이는 (affective)반응, 마음과 마음이 동하여 이루어지는 연합, 그리고 상대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긍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이란 감정과 행위에 내재된 “관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신학자 팔리는 많은 그리스도교 성윤리학자들과 견해를 같이 합니다. 그러나 팔리의 성윤리는 사랑의 관계 형성에 있어 정의(justice)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설정한다는 점에서 다른 신학자들의 성윤리와 구별됩니다.

▲ 마가렛 팔리가 2006년에 출판한 <정의로운 사랑: 그리스도교 성윤리 구상>(Just Love: A Framework for Christian Sexual Ethics)

정의는 사랑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안내자라고 팔리는 설명합니다. 사랑이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추상적인 전제는 정의가 개입될 때 “무엇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됩니다. 아무리 사랑이 깊다할지라도 모든 사랑이 선한 사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함에 있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궁극적인 질문은 그 사랑이 정의로운가, 올바르고, 선하고, 공정하고, 진실한 사랑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의는 무엇일까요? 팔리는, 정의란 다양한 삶의 정황에 수반되는 깊은 성찰과 판단들에 의해 그 때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보편적이고 원칙적인 규범에 종속되어 항상 변치 않는 어떤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정의는 사랑을 삶의 실재와 만날 수 있도록 이끕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정의를 통해 비로소 구체적인 삶과 만나고, 의무, 책임과 연관되며 치열한 고민과 참여의 과제를 떠 안게 됩니다. 성윤리는 이렇듯 정의라는 개념으로 견제되고 비판되는 사랑에 관한 윤리입니다. 팔리는 사랑과 성이 정의로운지 판단할 수 있는 성윤리의 토대로서,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 자율적인 동의, 상호성, 평등성, 헌신, 관계의 결실, 그리고 사회 정의를 제시합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동성애를 금지

총 일곱장으로 구성된 <Just Love>에서 팔리는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종횡으로 누비며 역사, 철학, 신학, 인류학, 의학, 생물학적 자료를 통해 정의로운 사랑과 정의로운 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을 전개합니다. 그중에서도 동성애에 관한 부분은 동성애 담론을 둘러싼 상이한 입장 가운데 우리가 직시해야할 진실이 무엇인지 준엄한 어조로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팔리의 주장을 살펴보기에 앞서, 동성애에 접근하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돌아 보아야겠네요.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동성애를 금합니다. 동성애 행위가 자연법에 어긋나며, 생명 탄생을 위한 성적 결합이 아니라는 이유죠. 가톨릭은 인간생명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기에, 인간생명에 대한 모든 인위적 개입에 반대합니다. 여기에는 낙태, 안락사, 인공수정, 인공피임, 동성애 등이 모두 포함되죠.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가톨릭은 동성애를 죄로 보면서도 “자신에게 귀책사유 없는 동성애 지향”은 인정합니다. 따라서 독신서약을 해야하는 사제의 경우, 동성애가 내면의 성향으로 머물고 행위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사제가 되는데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평신도의 경우 혼인관계 이외의 성행위는 모두 죄악이기 때문에 동성애 또한 죄입니다. 동성의 성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습니다 (교리서 제 2357조).

헌신과 책임에 바탕을 둔 동성애, 교회가 금지할 수 있나?

성서와 교회전통에서 말하고 있는 동성애 문제를 각각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재해석하며, 팔리는 우선 동성애 문제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합니다. 팔리는 재생산과 이성애주의를 성윤리의 원칙으로 고수하는 한, 교회가 동성애에 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엄연히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 할 뿐 아니라 책임감있는 사랑과 우정을 지속시키는 동성애자들을 자연법에 의거하여 맥락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것”과 “사회가 자연스럽다고 인정한 것”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한때는 노예제도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되었었습니다. 어떠한 윤리의 문제도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규범속에 가두어 질 수 없고, 성윤리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최근 교회 안팎의 다양한 담론을 통해 재생산과 이성애주의의 완고한 틀이 무너지고 있는 현상을 주목하면서, 팔리는 바로 이 시기, 우리는 동성애를 둘러싸고 제기 되는 질문들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더이상 “동성애가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를 질문할 것이 아니라, “동성애 관계의 참된 성격이 무엇인가? 동성애 관계를 정의로운 사랑으로 인정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질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이 이렇게 전환될 때, 성윤리에 개입하는 자연법의 문제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자연법이 인간의 성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헌신과 책임이라는 것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거죠.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동성이냐 이성이냐가 아니라, 평등과 상호 존중, 보살핌과 배려입니다. 서로에 대한 헌신과 책임은 건강한 관계 형성에 가장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헌신과 책임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이 관계의 전제가 되는데, 교회가 동성애를 금지해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팔리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사실 동성애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성애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비난과 반목과 혐오입니다. 여전히 동성애를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욕망으로 규정한다면, 교회는 은연 중 이웃을 정죄하고 거부하고 처벌하도록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증오를 조장합니다.

팔리는 바로 이러한 검증없는 가르침이 이른바 “동성애 라이프 스타일”을 승인하고 격려하는 문화적 움직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웃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심지어 나무에 매달아 죽이고, 아들과 딸을 죄인이라고 정죄하며, 평생을 몸담아 왔던 종교로부터 “강간당하는” 느낌을 갖게하는 그 무시무시한 폭력이 그러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가 우리와 함께 오늘을 살아간다면, 과연 그는 무엇을 더 안타깝게 여기며 무엇에 더 분노할까요? 지독한 오해와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면서도 파트너와 함께 예쁜 사랑을 가꾸는 동성애자들일까요, 아니면 문자적 해석에 의존하여 이웃에게 정신적 육체적 상해를 입히는 완고한 그리스도인들일까요?

마가렛 팔리의 책들 (번역된 책이 아직 없습니다):
A Metaphysics of Being and God (J.V. McGlynn와 공저, 1966); Personal Commitments: Beginning, Keeping, Changing, 1986; Embodiment, Morality and Medicine (Lisa Sowle Cahill 와 공저,1995)
Readings in Moral Theology No. 9: Feminist Ethics and the Catholic Moral Tradition (C. Curran, R. McCormick과 공저 1996); Liberating Eschatology: Essays in Honor of Letty M. Russell(Serene Jones와 공저, 1999)

 
조민아 교수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구성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셀 드 세르토의 시각을 확대 해석해 중세 여성 신비가 헤데비치(Hadewijch)와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글을 분석한 연구로 논문상(John Fenton Prize)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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