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기도와 노동 함께하는 공동체

나무와 풀꽃들이 밤의 자욱을 떨쳐 내는 고요한 새벽 5시 30분, 자연의 일부인 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공동 숙소 '더부네' 2층의 경당을 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충청북도 단양군 보발리에 자리잡은 '산위의 마을' 공동체 식구들과 지난 7월 15일 이곳에 들어온 단기 입촌자 10명이다. 단기 입촌자들은 7박 8일간 공동체에 머물며 노동과 기도를 포함한 공동체의 일상을 함께한다.

▲ 산 위의 마을 새벽 미사 ⓒ문양효숙 기자

오전 6시 미사를 시작으로 7시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치면 단기 입촌자들은 밭에서 일할 준비를 하고 성모상 앞에 모여든다. 7시 50분, 하루를 여는 기도를 올린 후 마을 대표로부터 작업 배치를 받고 12시까지 오전 노동을 한다.

이날 작업은 강낭콩 수확 및 까기, 그리고 풀 뽑기다. 각자 맡은 일에 따라 산자락 밭으로, 비닐하우스로 흩어진 이들은 아이, 어른 할 것 같이 한데 어울려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때로는 노래도 부르며 '노동'에 임한다. 삶을 뿌리로부터 다르게 살고 싶어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50대 참가자는 "귀농에 대한 스스로의 중간 점검도 하고 땅도 밟고 싶어서 왔다. 며칠째 비가 와서 밭일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몸을 움직여 일하니 역시 좋다"며 정성스레 강낭콩을 따서 푸대에 담았다.

▲ 아이에서 어른까지, 함께 일하고 기도하는 산위의 마을 단기 입촌자들 ⓒ문양효숙 기자

오전 10시, 맑은 종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공동체 안의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에 각각 6번씩 '간종'이 울리는 때는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는 명상 시간이다. 공동체 성원들은 이 짧은 시간 동안 '깨어 있기'를 위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고 곁에 누가 있는지 살피며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직접 경작하는 밭에서 난 가지, 고추, 감자 등의 작물과 닭장에서 매일 꺼내는 달걀 등으로 차린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2시까지는 개인적 휴식 시간을 보낸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1학년인 두 아들과 함께 단기 입촌한 유경주 씨는 이 시간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산책에 나섰다. 산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걸으며 토끼들에게 줄 풀을 뜯기도 하고 아이에게 목마를 태워 야생 복분자를 따먹기도 했다.

▲ 산책 중에 발견한 복분자를 따먹는 유경주 씨와 아들 정지성 군 ⓒ문양효숙 기자

▲ 산위의 마을 공동체를 향해 나 있는 오솔길 ⓒ문양효숙 기자

유경주 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걱정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 온 며칠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푹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아이가 변하는 게 눈에 보인다"고 한다.

"낯을 많이 가리던 아이가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첫날엔 반찬 투정에 밥도 남기던 아이가 어느새 혼자 밥을 떠서 맛있게 먹고 있더라. 무엇보다 아이들이 차분히 앉아서 묵주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첫째 아이와 마음의 애착 관계가 매우 깊은데 서로에게 독립적이 되기 위해 이곳에서 6개월 정도 생활 유학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주변의 어린 동생들을 챙기고 노동과 산책을 즐기던 유경주 씨의 첫째 아들 지창이도 "처음에는 전자기계를 쓸 수 없어서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그냥 뛰어노는 게 더 좋다"며 "엄마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오후 휴식을 마친 단기 입촌자들은 공동체 대표인 박기호 신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박기호 신부는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살아온 모습이 자신의 죽는 모습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아파서 더 이상 노동이 있는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 판단되면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한 모습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주변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곡기를 끊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며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5시 30분 이른 저녁식사를 한 뒤 6시 45분에 성모상 앞에 모여 묵주 기도를 바치고 경당에서 저녁기도 시간을 보낸다. 5살 아이부터 60대 어른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한국어와 라틴어로 반복해 부르는 성가는 경당전체를 울리고 이내 마음 깊은 곳에까지 이른다.

▲ 아침 노동을 시작하기 전 성모상 앞에서 공동체 식구들과 단기 입촌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생활 유학생들의 숙소인 기와집(왼쪽)과 단기 입촌 공동 숙소인 '더부네'(오른쪽) ⓒ문양효숙 기자

8시 이후 단기 입촌자들은 자유로움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공동체 안의 가정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단기 입촌한 조지혜 씨는 NGO에서 일하던 남편이 준비했던 유학을 접으면서 삶을 전면적으로 재고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인도의 오르빌 공동체에서 석 달간 생활하며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도 유경주 씨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의 삶이 '불안함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밤에 누우면 미래가 두려워서 잠이 안 왔다. 아이는 혼자면 안 될 것 같은데 여건상 더 낳기 어렵다. 남들이 누리는 것의 꽁무니를 따라가면서 살아 봤지만 그렇게 살면 살 수록 두려웠다. 남들은 차도 1600에서 2000으로 바꾸고 아파트 평수도 커지고 아이들 사교육도 더 좋은 걸 시키는데…… 끝이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의 신앙관, 교육관, 가치관과 전혀 맞지 않는다.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묻고 기도하고 선배들도 만났다. 그러다가 이런 공동체의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삶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이곳에 왔다."

쉽지 않은 길인데 '다른 삶의 방식'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하는지 조지혜 씨에게 물었다. 그는 "쉬운 길은 아닐 테지만 선택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자기 혼자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하고 되물었다. 그는 "핵가족 안에서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았지만 그것보다는, 서로의 것을 포기하지만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누리는 행복이 더 클 것 같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으로 공동체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외따로 떨어져 불안감과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현대 도시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온전하고 자유로운 것인가를 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노동과 기도가 함께하는 산위의 마을에서의 7박 8일은 자기 삶의 자리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더불어 개인의 소유, '일한 만큼 번다'는 명제, 너와 구분되는 나, 자유에 대한 욕구 등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가치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시간이다.   

단기 입촌 마지막 날 새벽 미사 강론에서 박기호 신부는 현대 사회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노동'과 '대가족 제도'를 잃어버렸다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그것을 회복시키고자 여기, 공동체로 모여 있다"고  말했다. 강론을 마치며 박기호 신부는 단기 입촌을 마무리하는 이들에게 화두를 던졌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연 안에서 고민해 보라. 당신들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인가, 아니면 빼앗긴 것인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7박 8일 단기 입촌 일정

▷ 32차 : 8.12(일)~19(일) (접수 마감)
▷ 33차 : 9. 2(일) ~ 9(일) (접수 중)
▷ 34차 : 10. 14(일) ~ 21(일) (접수 중)
▷ 35차 : 11. 4(일) ~ 11(일) (접수 중)

대상 : 20~50대 신체 건강한 기혼 및 독신자 신앙인(10명 이내 접수순)
참가비 : 20만원(부부: 35만원 / 동반 자녀: 중3 이하, 1인 10만원)

* 문의 : 산위의 마을(http://www.sanimal.org, 043-421-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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