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르파주, 이성엽 옮김,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Muchacho)>(씨네북스, 2011)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니카라과를 검색하면 몇 권의 책밖에 없지만 1980년대에 의외로 니카라과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도대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심지어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던) 이 중남미의 이 작고 가난한 나라에 대해 왜 그리 많은 관심을 가졌을까? 1979년의 혁명 때문이었을까? 글쎄 혁명은 거기서만 일어났나. 그것은 그 보잘것없이 작은 나라가 전 인류를 향해 보여준 모범과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가 있어서다.

지금은 사라진 홍대입구의 사회과학 서점 ‘이어도’에서 샀던 멕시코의 저항 만화가 리우스의 <산디니스타, 니카라구아>(오월, 1988)를 통해 니카라과 혁명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잠시 니카라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니카라과 이름만 들어도 온 신경이 쏠리곤 했다. 비록 타협적이고 개량적으로 변했지만 다니엘 오르테가가 2007년에 재집권했다는 소식이 무척 반갑기도 했다.

▲ 오월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리우스의 만화 시리즈는 마르크스, 마오쩌둥 등의 사상뿐만 아니라 체 게바라, 쿠바, 니카라과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변혁운동을 깔끔하고 위트있게 잘 소개해주었다.

다시 이 한 권의 만화(또는 그래픽노블) <게릴라들: 총을 든 사제>가 한동안 잠잠했던 니카라과에 대한 생각을 깨워준다. 프랑스의 작가 르파주의 이 작품은 만화도 하나의 예술적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섬세한 터치와 탄탄한 이야기 구성은 참으로 감탄하게 하는데, 이 책은 여러 번에 걸쳐 찬찬히 읽어봐야 한다. 색채의 변화, 대사 속에 들어 있는 여러 함의들, 그림 속 장면들. 정말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1976년 11월 니카라과, 정부군은 산디니스타 저항군을 색출하기 위해 농민들을 수색한다. 수색 중에 젊은 여자에게서 라이터가 발견되고 바로 체포된다. 왜 라이터가 문제가 될까. 소모사는 자기 공장에서 생산된 성냥만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저항군은 라이터를 사용했다. 라이터는 일종의 저항군의 상징처럼 되는데, 이 책 곳곳에 라이터는 의미심장하고 다각적인 소품이다.

소모사 일가는 1936년 사카사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1979년 축출될 때까지 니카라과를 통째로 삼켰고 말아먹은 독재세력이다. 니카라과의 모든 부를 미국과 나누어 가진 이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배를 사정없이 불리는 동안 이 나라는 아주 가난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정권은 얼마나 파렴치했던지, 한번은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 2만 명이 사망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구호기금 상당수를 삥땅쳤다고 하고, 게다가 폐허가 된 도시를 국가방위군이 약탈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고 불행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전설적인 산디노의 반미해방 투쟁이 있었고, 그의 이름을 따 수십 년간의 독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결성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산디노, 산디니스타 이는 이 불쌍한 나라의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산디노, "혁명가는 죽어서도 투쟁한다"

산디노는 정치적 신비주의자로 ‘혁명가는 죽어서도 투쟁한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산디노의 해방투쟁을 계승한 산디니스타(산디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를 이어 싸워갔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파로 결성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게릴라 활동과 민중 봉기로 노선을 정리하여 소모사 독재정권에 집중적으로 투쟁하였다.

▲ 미제국주의와 투쟁하다 39세에 세상을 떠난 산디노는 멕시코의 사파타와 더불어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깊은 혁명적 영감을 주었다. 니카라과 현대사에서 산디노라는 이름은 희망과 해방의 상징이다.

사제서품을 앞둔 가브리엘은 예수 수난 벽화를 그리기 위해 루벤 신부를 찾아 한 시골마을에 도착한다. 루벤 신부는 소모사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있었다. “저항군과 크리스찬은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지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야.” “하느님은 사랑이시지만, 정의를 행하는 분이시기도 하지.”

루벤 신부는 가브리엘의 틀에 박힌 그림을 혹평하면서 진정한 예수 수난의 그림을 그리자고 한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의 운명인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 했던 예수를 생각해보란 말이야! 예수의 얼굴과 몸에 흐르던 뜨거운 피와 땀을 생각해보게! 십자가의 무게에 짓늘린 그 어깨를 떠올려보란 말일세!” 먼저 마을의 사람, 풍경들을 그리게 한다. 사실 가브리엘은 니카라과의 유력가문 데 라 세르나 집안의 자식이다. 소모사와 유착한 또 다른 착취자의 아들을 마을사람들이 반갑게 맞을 리는 없었다. 데 라 세르나 이 이름은 가브리엘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교묘하고 효과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곱디곱게 자란 가브리엘은 저녁 무렵 먼발치에서 민초들의 삶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런 풍경들이 이 어린 사제 지망생을 마구 뒤흔들고 괴롭힌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크로키 작업은 자신을 둘러싼 막을 하나씩 벗겨나간다. 아주 조금씩 그들에게로 다가가면서 루벤 신부가 요구했던 진의를 몸으로 알아간다.

드디어 예수 수난 벽화는 완성되었으나, 또 라이터 때문에 가브리엘은 정부군에게 한참 두들겨 맞고, 밀고를 하게 되어 게릴라를 지원하던 루벤 신부는 잡히고, 콘셉시온은 살해당한다. 그의 아버지 후안 데 라 세르나에게 붙잡혀 가다가 차에서 뛰쳐내려 도망간다. 다친 몸을 이끌고 밀림을 헤매다가 게릴라에 합류한다.

게릴라들은 정치범 석방 협상을 위해 미 군사고문관 맥더글라스를 체포하였다. 이 양키의 대사 중에 미 제국주의의 지저분한 오만이 엿보인다. “우리나라의 기계와 기업, 석유, 달러 없이 도대체 너희들이 뭘 할 수 있겠어? 먹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물어뜯는 법은 없지. 너희들이 아끼는 그 ‘민중’은 우리한테 돌아와달라고 애걸복걸할거야. 그럼 우리는 해방자처럼 박수를 받으면서 이 땅에 귀환하는 거지. 물론 너희들은 대가를 치를 테고.” 게릴라 대장 제르만은 한마디로 응수한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항쟁하는 자들도 있겠지. 너희들은 절대 희망의 불을 끌 수 없어.”

게릴라들은 니카라과의 해방과 궁극적으로 인간해방을 위해 싸우지만, 배고픔과 두려움 같은 인간적 한계를 동시에 안고 지낸다. 그 안에서 다툼도 많고 애증의 관계도 만들어진다. 가브리엘은 총을 잡지만 제목처럼 강렬하고 용맹한 활동을 하지는 못한다. 어쩌다가 동지를 위해 정부군을 살해한 뒤에는 십자가를 부여잡고 절규한다. 그렇게 조금씩 게릴라가 되어간다. 그 와중에 가브리엘은 데 라 세르나 집안의 자식임이 밝혀지지만 그들의 동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미 성당 벽화를 그리다가 마주친 적 있던 영국인 파우스토와 사랑이 싹튼다. 지극히 예민하고도 비밀스러운 동성 간의 사랑이 비쳐진다. 이미 제르만의 아내 마누엘라와 통정한 파우스토의 한마디가 이 모든 상황을 압축해버린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 언젠가는 결국 대가를 치르게 되지.”

동지들이 하나씩 세상과 등진다. 제르만은 동지들이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소모사를 몰아내고 소박하게 살기를 바랐던 리고도 싸우다 죽는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데 라 세르나 집안 출신임을 활용해 루벤 신부와 맞교환되려 한다. 파우스토가 붙잡지만 떠나간다. 정부군은 가브리엘을 향해 비꼬는 말을 내뱉는다. “자기 운명을 벗어날 순 없지.” 가브리엘은 미국으로 떠난다.

십자가와 ‘낫과 망치’가 만나 이룬 혁명

1979년 7월 드디어 니카라과는 약 40년간의 소모사 독재정권에서 해방되었다. 산디니스타는 마나과에 입성했고, 소모사는 도망을 간다. 니카라과의 혁명정부는 여러 혁명정부와 사뭇 다른 행보를 걸었다. 산디니스타 혁명을 혼합경제, 민족단합에 기초한 민중적·민주주의적·반제국주의적 혁명으로 규정하였고, 무엇보다 국가주권의 보호와 국가재건을 강조하였다. 정치적으로는 다원주의적 경쟁을 허용하여 야당의 자유로운 조직과 활동을 보장하였고, 경제적으로는 국가부문과 사적 부문을 동시에 용인하는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였다.

▲ 산디니스타 혁명군의 마나과 입성. 참으로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나날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많은 대가를 지불했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또한 많은 대가가 준비되어 있다.

앞에서 루벤 신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무엇보다 이 혁명은 십자가(그리스도교)가 진정으로 ‘낫(농민)과 망치(노동자)’와 만난 혁명이다. 여러 사제들이 총을 들고 저항군에 가담했고, 사제 4명이 각료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또 해방신학에 바탕을 둔 ‘민중의 교회’라는 조직을 형성하여 토지개혁과 산디니스타의 사회주의 정부에 가세하기도 하였다. 여느 혁명정부와 달리 보복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혁명 이후 1979년 11월 17일 7명의 주교들은 다음과 같은 교서를 발표하였다.

“…사회주의가 전횡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의 명령과 계획에 민중을 무조건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라면, 이때는 우리 성직자들이 이러한 잘못된 사회주의를 거부할 것이다.…그러나 본래의 사회주의가 의미하듯이 니카라과의 사회주의가 민중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이며, 민중이 참여할 수 있는 국가계획경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때는 우리가 사회주의가 목적하는 바에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덧붙여 말하면, 우리는 니카라과의 혁명사업이 독창적이며, 철저히 민족적이며 그리고 다른 모델의 흉내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온 국민과 같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나 식민주의, 전체주의가 아니고 진정한 니카라과 사회를 수립하려는 혁명적 자세인 것이다.” (리우스, <산디니스타, 니카라구아>, 오월, 1988)

이렇게 니카라과에서 그리스도교 세력이 혁명세력과 연대하는 것이 보수적인 바티칸에서는 달가울 리 없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니카라과를 방문했을 때, 니카라과의 “민중의 교회라는 것은 해괴망칙하고도 위험스러운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또 당시 문화부 장관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맞춤하려고 했을 때도 손을 뿌리치고 “그대는 그대의 직분과 교회와의 관계를 명백히 하시오!”라고 쏘아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는 혁명가이자 시인이자 구도자였다. 그는 혁명과 영성의 조화를 모색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슬픈 현실에 직면해 새로이 시편을 쓰기도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가브리엘은 다시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파우스토와도 재회하지만 그의 태도와 상황은 웬지 가브리엘에게 쓸쓸함만 전해준다. 다시 마을을 찾은 가브리엘, 처음 이 마을을 찾았을 땐 소년 같던 그가 이젠 아저씨가 다 되었다.(책의 표지처럼)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한참 벽화를 그리고 있다. 그들의 힘겨웠던 삶과 투쟁을 담은 벽화를. 한 켠에는 가브리엘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루벤 신부가 그린 벽화가 있다. 모두 라이터를 들고 있다. 라이터, 이들의 생과 사를 갈랐던. 처참한 소모사 독재의 단면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던.

산디니스타 혁명정부는 할 일이 정말 많았다. 폭압적인 공산정부라는 매도와 달리 이들은 너무 관대하고 유연했다. 소모사가 싸지른 온갖 오물을 치우고, 민중의 건강, 문맹퇴치 등을 비롯한 기초적인 여러 과제들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 레이건 정부는 소모사 일당을 사주하고 지원해 니카라과 혁명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 일명 콘트라 반군은 가뜩이나 재건에 힘을 쏟아도 모자란 니카라과를 혼란스럽게 했다. 미국은 적성국으로 분류된 이란에 무기를 팔아먹고 그 수익으로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1986년 이것이 폭로된 게 ‘이란 게이트(이란-콘트라스 사건)’다. 이후 콘트라에 대한 지원이 끊기자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오갈 곳 없는 콘트라와 그들의 가족 전체를 사면하는 대화해정책을 편다.

그럼에도 자연재해와 미국의 여전한 봉쇄 같은 내외적 우환이 산디니스타 혁명정부를 지속시키지 못하였다. 수십 년간의 지난한 투쟁으로 성립된 혁명정부는 1990년 선거를 통해 권력을 내주어야 했다. 이때 미국은 오르테가를 낙선시키기 위해 상대 후보에게 9백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한다. 일명 ‘포위된 혁명’으로 불리었던 니카라과 혁명의 실험은 이렇게 잠시 멈추게 된다. 그러나 이 가난한 나라의 행보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는 여러 나라, 민중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한 민족이 위대하다는 것은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인내를 갖고 자신들의 운명을 당당하게 만들어간다는 점에 있음을 이 작은 나라가 선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은 아직 서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제목처럼 ‘총을 든 사제’라고 할 수 없겠다. 사실 소년이라는 뜻의 원제 ‘무차초(Muchacho)’가 더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혁명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제를 앞둔 한 청년의 성장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세상물정 모르던 가브리엘에게 다가왔던 것들은 그에게는 온전히 금지된 것들이다. 혁명, 관습이 금지한 사랑 등. 그냥 불쑥 다가왔던 여러 것들이 더 이상 그를 예전의 그로 두지 않는다. 아무런 아쉬움 없이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에게 주어진 벽화 그리기, 게릴라 활동은 일종의 강렬한 부르심이었다. 가브리엘은 그로 인한 상처와 시련을 견디면서 단련되었고, 자기자신을 발견해간다. 사제로 살아가든 화가로 살아가든 그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든, 그는 진정한 니카라과인, 진정한 그리스도인, 그리고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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