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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 정직 철회혁명시인, 1985년에 니카라과 혁명정부 참여로 정직돼

프란치스코 교황이 니카라과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에게 34년 전에 내려진 정직 조치를 철회했다.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는 시인으로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분도출판사에서 “말씀이 우리와 함께–솔렌티나메 농어민들의 복음 대화”와 시집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가 나왔고,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가 나온 바 있다.

니카라과 주재 교황대사인 발데마르 소메르타그 대주교는 2월 18일 성명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르데날 신부에게 내려진 “모든 교회법적 견책을 없애는 자비를 베풀었다”고 밝혔다. 이는 올해 94살인 카르데날 신부가 교황청대사관을 통해 교황에게 청을 드린 데 따른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5년에 당시 니카라과의 좌파 산디니스타 정권에 (장관 등으로) 적극 참여한 카르데날 신부와 여러 사제를 정직시켰다. 카르데날 신부는 1994년에 (집권세력인) 산디니스타 해방전선에서 물러났다.

소메르타그 대주교는 카르데날 신부의 정직이 정확히 언제 풀렸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나과 교구의 실비오 호세 바에스 보좌주교는 2월 15일 자신이 병원에 있는 카르데날 신부 옆에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림으로써 (이때 풀렸음을) 시사했다.

2015년 1월, 90번째 생일을 맞은 니카라과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 americamagazine.org)

바에스 주교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올렸다. “오늘 저는 내 친구 사제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가 있는 병원을 찾아서 그와 몇 분간 얘기를 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한 뒤, 나는 그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가톨릭교회의 한 사제로서의 그에게 축복을 청했고, 그는 기쁘게 그렇게 해 줬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남미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싫어 했다. 그가 1983년에 니카라과를 방문했을 때 혁명정부의 문화장관이던 카르데날 신부가 영접을 나왔다. 그는 교황 앞에 한 무릎을 꿇고 교황이 손에 낀 교황반지에 키스하려 했다. 그러자 교황은 손을 뒤로 빼고 손가락을 움츠려 그가 키스를 못하게 했다. 이 장면은 교황청과 산디니스타 혁명정부 시절(그리고 남미 해방신학)과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장면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교회법에서는 가톨릭 사제가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공무원, 정당의 지도부 등) 정파적인 정치 직무를 맡는 것을 금하고 있다. 당시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예수회)를 비롯해 그의 동생인 페르난도 카르데날 신부(예수회, 교육장관), 미구엘 데스코토 신부(메리놀회)는 교황청과 각자가 속한 수도회로부터 산디니스타 정부에서 나오라고 몇 차례 설득함에도 응하지 않은 끝에 결국 정직됐다. 함께 정직됐던 에드가르 파랄레스 신부(미주기구 주재 니카라과 대사)는 이에 자신의 환속을 청했다.

데스코토 신부는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제재 철회를 청했고, 교황은 그의 정직을 풀어 줬다. 페르난도 카르데날 신부는 1997년에 예수회에 복귀를 허용 받았는데, 그가 산디니스타 해방전선에서 나온 지 4년 뒤였다.

기사 원문: https://www.americamagazine.org/faith/2019/02/18/pope-francis-lifts-suspension-imposed-nicaraguas-ernesto-carde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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