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콕스, <종교의 미래>, 문예출판사, 2010

<세속도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하비 콕스가 <종교의 미래>라는 책을 펴냈다. '예수의 시대에서 미래의 종교를 본다'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원제목이 <The future of Faith>이므로 '신앙의 미래'라고 번역해야 옳다. 이 책에서 하비 콕스는 바야흐로 성령의 시대가 오고 있으며, 이 흐름을 막으려는 적대세력으로 '근본주의'를 지목한다.

하비 콕스는 요즘은 종교적 감성이 "내재적인 것 속에 있는 신성한 것의 재발견" 또는 "세속적인 것 안에 있는 영적인 것"으로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즉, "신의 장엄함이 가득차 있는 곳은 우리들의 일상 삶의 세계"이지 다른 세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하비 콕스는 신앙(faith)과 믿음(belief)을 구별하고 있다. 신앙은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확신"이며, 신학자 틸리히는 이를 두고 '궁극적 관심'이라 했고, 히브리인들은 '심장'이란 낱말로 신앙을 가리켰다. 그러나 믿음은 '견해'와 같은 것으로 훨씬 명제적인 것이어서 신조(信條)처럼 결정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이도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조와 교리 절대화가 신앙의 실제 왜곡할 수도..

이 믿음과 관련해, 콕스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논쟁처럼 사람들은 믿음에 관해 "낡아빠진 신 존재 증명들과 반박증명들"을 낳고 있으며, 오늘날도 도킨슨 류의 진부한 찬반의 논증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종교에서 정한 신조란 이러한 '믿음의 주요 항목들의 다발'이라고 말한다. "판잣집 미사처부터 고딕형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교회건물들이 그렇듯이, 신조는 그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그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나 교리적인 규준과 건축상의 구성은 둘 다 목표로 가는 수단이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그것을 결정적인 요소로 만든다면 그것은 밑바탕에 놓여 있는 신앙의 실제를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이어 하비 콕스는 그리스도교 역사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의 시대'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의 '믿음의 시대', 그리고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성령의 시대'로 나누고 있다.

신앙의 시대에는 예수가 보여준 자유, 치유, 연민의 새시대가 동터옴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살며 그리스도의 희망을 품고 그리스도가 시작하신 길을 따라 간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4세기 경에 시작된 믿음의 시대에는 예수를 모르는 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교리문답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예수에게 거는 신앙을 예수에 관한 신조로 대체했다고 전한다.

콕스에 따르면, 4세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아직 단일한 신조란 게 없었고 서로 다른 신학들이 광범위하게 번창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을 지배하고자 그리스도교를 이용하려는 영리한 결정을 내린 뒤로 문제가 달라졌다. 그는 이전까지 불법으로 여기던 갈릴래아 사람의 새 종교를 '합법'적이라고 선언하며, 교회'들' 위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황제가 주교들을 임명하고 파면하기도 했으며, 봉급을 지급하고 건축비를 지원했으며 구제금을 배포했다. 그 동안에도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와 나란히 태양신 헬리오스를 숭배했다.

▲ 하비 콕스
황제가 바란 것은 예전의 신들이 떠난 자리에 그들의 영토가 산산조각나지 않도록 그리스도교 신앙을 제국처럼 단일한 신조를 통해 통일시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리스도교는 제국화되었다. 권력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허둥대며 황제의 인가 인장을 지닌 교회에 가입했고, 주교들은 제국의 권력과 유사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직자 그룹이 나타나면서, 이들의 지침은 신조화되고, 이 신조는 성직계급과 제국의 법령에 의해 엄격하게 감시되었다고 하비 콕스는 전한다.

이 과정에서 385년 아빌라의 프리스킬리안을 바롯한 여섯 사람이 이단으로 몰려 처음으로 처형당했다. 프리스킬리안은 고기와 포도주를 금하고, 성서 연구와 황홀경을 허락했다. 이들은 제국교회와 다른 종교적 견해 때문에 처형되었는데, 그후 250년 동안 제국 당국은 25,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신조상 정확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그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교황교서 <유일하고 거룩한 가톨릭교회>를 발표해 세속영역에서도 교황의 권위를 주장했던 시대가 되어도 신조를 중심으로 한 이단논쟁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 유럽의 세속화, 20세기의 반식민주의 운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종교적 강박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 유럽연합이 그 헌법에 '그리스도교의'(christian)라는 낱말을 삽입하길 거부함으로써 믿음의 시대는 묘비에 비문을 새겨넣은 셈이라고 하비 콕스는 말한다.

그러나 실상 지난 1,500년의 믿음의 시대 동안에도 사람들은 신앙으로 살아왔음을 지적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문맹이었고, 사제들이 미사 중에 신조를 낭송하더라도 그들은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교회의 입장과 상관없이 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삶의 길잡이였으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왔다. 믿음의 조문들은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고, 그들은 여전히 예전부터 행하던 가장행렬과 민속축제, 성자들 이야기를 즐기며 살았다.

성령의 예측불가능성이 고위 성직자들을 두렵게 만들어

하비 콕스는 이제 새롭게 동터오는 시대를 '성령의 시대'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이 말은 13세기에 살았던 피오레의 요아킴이 제안한 것이다. 그는 역사가 성부의 시대에서 성자의 시대를 거쳐 성령의 시대로 돌입한다고 가르쳤다.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며 살 것이며, 종교적 위계질서는 별로 필요가 없고, 우주적 사랑이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 추종자들이 더 이상 사제와 전례는 필요없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요아킴은 사후 60년 뒤에 알렉산더 6세 교황에게서 이단으로 단죄받았다.

믿음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고위 성직자들은 '성령'에 대해 줄곧 불편하게 여겨왔다. 성령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가운데 한분이지만,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예측불가능성으로 교회 당국을 두렵게 만들었는데, 성령은 수은처럼 너무나 민활해서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자율적 평신도 여성 공동체인 베긴회와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제인 엑카르트에게 이어졌다. 엑카르트는 "영혼은 사람이 신성과 충만한 통교를 획득해서 사랑으로 충만할 때까지 키워야 할 하느님의 섬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교회의 의식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제한적인 의미만 부여했다. 이러한 생각은 같은 도미니코회의 타울러나 급진적인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에게도 이어졌다. 이들은 교회의 부와 권력을 비난했다가 대부분 처형되었다. 그러나 예수회의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우주 역사의 총체적 전개를 '영성화'의 과정"으로 보았으며, 독일 신학자 본 회퍼는 <옥중수고>를 통해, 교리적 사슬에서 해방된 미래에는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는 종교 안팎에서 스스로 '영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하비 콕스는 우리 시대에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침투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가에서 신비주의까지 그들에게 '영성'은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결과 바티칸에서는 요가교실에 참여하는 신도들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있지만, 가톨릭 수도자들 가운데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아시아적 영성수련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로 다른 종교전통 사이에 구멍이 나고 있는 것이며, 기성종교에서 한 다발의 신학명제들을 교리화해서 강요하는데 반발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충분히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결과 그리스도교는 과거의 어느 때 용납했으나 역사가 흐르면서 어디에선가 내버림을 받은 요소들을 다시 재생시키고 있다고 하비 콕스는 말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게 근본주의다. 그들은 의무적인 신조체계를 다시 강조하고, 신화적인 흠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으며, 진리의 배타적 독점을 주장하고, 때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하비 콕스는 이들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막으려고 애쓰는 배후세력이라고 지적한다.

하비 콕스는 맨처음 나타난 신앙의 시대와 지금 드러나고 있는 성령의 시대에 유사점이 있다면서, 그 당시 신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신조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으며, 당시에 성직계급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성직계급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신성에 대한 이론보다 신성에 대한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에 대한 경외감이 신조보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아인쉬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경이를 느낄 수 없고 경외에 홀릴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름 없으며, 꺼져버린 촛불이다."

교회는 완결된 존재 아니고 미래의 하느님을 향한 여정 속에 있다

하비콕스(Harvey Cox)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윤리학을 강의하는 신학자이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1년간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면서 동독 교회와 하버드대학교간의 연락을 받는 일을 하였다. 귀국후에는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했으며, 보스턴 흑인거주지역에서 살면서 흑인해방과 민권운동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였다. 저서로는 <예수, 하버드에 오다>와 <세속도시>가 있는데, 모두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창락 교수는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그 대학교 신학부에서 공부했으며, 한신대 교수 출신의 원로신학자다. 그동안 한국기독교학회 신약신학 회장, 한국민중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와 관계하고 있다. 하비 콕스의 이 책은 한국교회 현실 안에서는 앞서 나가는 느낌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 역사 안에서 예전에 이단으로 몰렸던 사조들이 다시 신원회복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주장했던 바를 상당히 수용한 바 있으며, 생태위기에 직면해 마이스터 엑카르트나 빙엔의 힐데가르트, 막데부르크의 메히틸드 같은 분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역사가 흐른다는 것은 곧 성령이 지금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우리 교회 역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어느 한 과정을 지나고 있는 순례자이며, 완결된 존재가 아니다. 교회는 미래의 하느님에게로 가는 여정 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비 콕스의 지적은 그 자체로 액면 그대로 진리는 아니라해도 충분히 참고할만한 재료를 내놓고 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종교간 장벽을 넘어서, 교리와 신조의 틀을 잠시 접어두고 그분의 음성을 다시 새롭게 들어볼 기회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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