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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하지 않은 것을 고백하지 않을까?[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오늘부터 매월 두 번째 화요일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 연재됩니다.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을 통해 평신도의 길과 성직자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일깨우고, 진리된 말씀을 실천함이 교회 쇄신의 길임을 전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김용대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성서 (이미지 출처 = Max Pixel)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코린 3,6)

하느님의 친구들은 두 종류가 있는데
다름 아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따라 산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의식을 치르고
관습을 만들어 살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렸지만,
그리스도 이후에는 새로운 법에 따라
우리가 구원받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도입부로,
신약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사람들의 영혼을 준비시켜 새로운 섭리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사전에 일깨워 주어
새로운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많은 무거운 의무를 지워 주고 죄를 지으면
심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과 엄격하신 하느님의 의로움을 보여 주고 있지만,
구원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문은 5000년 동안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힘들게 착한 일을 해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약성경이 성령을 통하여 평화와 기쁨을 보여 주기 전까지
그들은 지겹도록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새로운 섭리를 받아들이려면
먼저 구약성경에서 보는 것과 같은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슬픔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뿐만 아니라
겸손하게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손 아래 머리를 굽혀야 하고
외적 내적 고통을 겪어야 하고
죄가 있든 없든 온갖 시련을 다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잘못 생각하고 있을까 봐 두렵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행동했더라면
틀림없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을 것입니다.

온고지신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교훈 삼아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저질스럽게 내적 외적으로 받은 위로를 믿지 마십시오.
쾌락을 통하여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고 쾌락을 멀리해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성체를 받아 먹고
깨달음을 얻고 인간의 위로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할 마음을 갖기까지, 여러분 안의 깊숙한 곳에서
구약의 힘든 멍에를 지고 겸손하게 자기를 버리고 있는
과거의 자신들에게 머리 굽혀 절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하느님의 멍에는 편하고
하느님의 짐은 가볍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즉 주님의 수난의 징표를 잊지 말고
항상 여러분 안에 간직하고 무겁더라도 기쁘게 짊어지고 다니면서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려고 하라는 것을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충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고통받고 절망하고 불명예를 당하고 중상모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영혼이
평화와 기쁨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태어나게 할 때까지는
여러분 안에서 구약성경에 따라 산 옛 아담이 살고 있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대주교들은 한숨을 쉬며
안타까워하면서 수천 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여러분은 자기를 버리고 참고 견디면
일 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구세주를 다시 태어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1년이나 2년 동안 말라리아 열병처럼 앓게 되면
부득이 끝까지 참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려면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시대에 겪어야 했던 다른 시련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내리신 ‘심판’이었습니다.

이는 평생 후회하며 괴로워하는 내적 고통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없이 고해성사를 하여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제대로 보속하지 않으면 대죄를 수천 번 고백해도
이 후회의 괴로움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겸손하게 되면 이렇게 수없이 고백하더라도
아직도 하느님의 용서를 바라면서 남아 있는 후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시련은 새로운 위로를 바라면서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한
양심의 가책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헛수고를 하지 마십시오.
평생 이러저리 뛰어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위로는 여러분 안에서만 받게 되며 전혀 위로를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꾸준히 참고 기다리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내적 외적으로 덕을 쌓은 가장 거룩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그는 평생 네다섯 개의 강론밖에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강론은 ‘양심의 소리’였기에
똑똑하게 기억하여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온갖 강론을 다 들으려고 하지만 믿음을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느님을 제대로 모시려면
여러분의 내면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강론을 들으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이 참된 영성을 얻으려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말고
여러분 자신의 영혼 안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하여도 사람을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면은 좋게 보되
다른 사람들의 나쁜 면을 보아도 심판하거나 의심을 갖지 마십시오.

선조들이 과거의 율법에 따라 살았듯이
진심으로 하느님만 생각하고 진리만 찾도록 하고
나머지는 모두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맡기십시오.

구약성경의 세 번째 특성은 ‘구원에 대한 희미한 희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 예언자도 언제 구원받게 되는지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하느님의 때와 장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우리 안에 태어나셔서 완덕의 삶을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냐고요? 하느님께 맡겨두십시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650-653쪽)


종교개혁 전에는 교회가 신자들에게 지나치게 죄의식을 심어 주고 심판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 중심의 고해성사를 하게 함으로써, 신약성경에서는 사랑이 제1계명이지만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드물었으며 사랑하지 않은 것을 고백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죽을 때에도 사랑하지 않은 것을 고백하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신약시대임에도 구약성경 따라 살아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율법과 계명에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타울러 신부는 이를 꼬집었지만 종교개혁 뒤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참 사랑을 하는 사람이 드문 것이 현실이지만 고해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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