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한상봉, 이파르출판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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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면 되나
내 살아 홀로 그대 만나러 가는 길
어디로 가면 닿는가
남녘으로 남녘으로만 가면 우리 만나는가
북으로 북으로 치달으면 만나는가
한 목숨 내가 버리면 우리 만나는가
피 젖은 헌 가마니에 나도 가 누워
그대 묻힌 어느 시궁에 따라 묻혀서
한 시절 묵묵히 순한 지렁이떼 키우고 나면
그러면 비로소 만나질 건가
아아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 수는 없어
그대 찾아나선 길
나는 갈곳이 없다
그대의 이름을 물을 곳이 없다
김사인의 ‘가는 길’입니다. 살면서 지은 빚이 많습니다. 하늘은 넓고 생각은 짧아 늘 다른 이들이 애써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야 합니다. 갈래길이 나와 당혹스러우면, 그 자리에 앉아 다시 지혜를 달라 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되갚아야 할 몫이 많은 나는 그 몫마저 다른 이의 이름을 빌어 갚으려 합니다. 이 책 역시 빚을 빚으로 갚아나간 흔적입니다.
그대를 찾아나선 길에서 만난 것은 그저 ‘사람’뿐입니다. 하여 다시금 생각하는 것은 내가 찾아나선 그분이 이미 그 사람들 안에 계실 텐데,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 호흡속에서도 호흡하시고, 그들 손으로 일하시며, 그들 마음 안에서 쉬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 눈빛 안에 머무시고, 그들의 언어로 발음하고 계실 것이라 믿게 됩니다. 그들을 ‘신비가’라 부르든, ‘혁명가’라 부르든, 아니 ‘성인’이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제 안에도 계시고 지나가는 바람결에도 계시니 말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걸어야 한다’는 것. 그분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수납자(雲水衲子)처럼 자신의 생애를 두고 걸어갈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기어코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이승에서 기어코 그분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길’ 자체가 그분임을 알기에 서운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거룩한 갈망’이겠지요. 목마름이 있어야 물을 찾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여기에서 고요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자신에게 묻는 것이지요. 아직도 갈망하는가, 그대? 하고 말입니다.
이 책에 담긴 잡문들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세 해 동안 <야곱의 우물>이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글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간헐적으로 써온 글을 묶은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구하는 심정으로 여러 탁덕현인들에게 지혜를 빌린 것이지요. 그들은 모두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지상에서 천상을 매만지던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몸으로 갈망했던 사람들입니다.
마이스터 엑크하르트는 우리 안에 ‘거룩한 불꽃’이 이미 있다고 믿었기에, 모든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신성을 찾아서 순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있는 그 불꽃과 접속된 이는 자기를 넘고 종교를 넘어서 한달음에 그분에게로 갑니다. 이 책에서는 홀로 사막에서 그분을 만났던 안토니오부터, 베네딕토처럼 공동체 안에서 그분을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처럼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그분을 만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수도자이며 혁명가였고, 사제이며 지식인이었고, 농부이며 노동자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히 우리시대에 주목할 만한 지혜로 빈센트 반 고흐와 헨리나웬, 토마스 머튼, 도로시 데이에게는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바다를 건너간 이 사람들을 길동무 삼아 동반하고픈 이들에게 이 책이 소박하지만 따뜻한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책 본문에서 한상봉 씨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름다운 혁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먼저 모든 교리적 논쟁을 접고, 정말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길을 하느님 안에서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이미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다른 영혼들도 만날 것입니다. 이웃과 갈라지지 않는 사랑 안에서, 우주 안에 깃든 모든 하느님의 거룩한 기운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길동무들과 나누면서 우리 자신과 세상의 동시적 변형을 꾀하는 ‘아름다운 혁명’을 기다립니다.(P.18)
의인은 성인에게서 길을 얻고, 성인은 의인에게서 몸을 얻습니다. 만일 도종환 시인이 해인에 이르고자 한다면 성인에게서 길을 얻기 위함이고, 다시 화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은 의인에게서 몸을 얻어 온전한 사람, 참사람을 세우기 위함일 테지요. 독일의 수도승이며 신비가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사람의 목적은 신이 되는 것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느님께 우리 영혼이 함몰되어 그분의 바다에 잠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다함없는 하느님의 사랑에 심취하여, 그 든든한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겠지요. “먼저 사랑하라. 그리고 뭐든지 행하라.”고 아우구스띠누스 성인이 말한 것도 같은 뜻이겠지요.(P.25)
성자들은 사막으로 나갔으며, 그 사막에서 나타난 분이 세례자 요한이었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오신 분입니다. 그분이 태어나셨기 때문에 빵 굽는 마을 베들레헴이 성지가 되었고, 짐승들의 말구유가 거룩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거닐던 들판과 나무그늘, 거리와 선창가가 아름답게 빛나고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우리들 일상생활이 빚어지는 곳에 그분도 더불어 계시고 거룩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거룩함을 찾는다면 모를까, 그분 안에서 거룩함을 찾으려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분의 냄비가 걸려 있던 남루한 천막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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