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한 상황들을 고려할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대략 여섯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먼저, 한국교회가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위기인데 이를 위기로 보지 못하는 것이 진정 위기의 징후이니 위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기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지려면 그동안 익숙해있던 삶의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급선무가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 가난한 이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눈높이를 낮춰야 하겠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추려니 진정한 회심과 섭리에 대한 신앙이 필요하다. 결국 근본적으로 신앙을 쇄신하는 것만이 해법이 되겠다.

두 번째로, 각 교구에서 도출한 시노드 최종의안 뿐 아니라 시작단계에서 교구민들로부터 들었던 의견들을 다시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종의안을 불가피하게 두세 개로 압축했다 하더라도 처음에 수렴한 의견들도 실제 사목현장에서 해결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교구가 사목정책을 수립하고 이것이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할 때까지는 보통 십년 가까이 걸린다. 그러면 본당에서는 이 기간에 주임신부를 두 명이나 맞게 되므로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모든 일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애초부터 본당신부들과 신자들이 직접 본당에서 실천해야 하는 과제들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반드시 이행되도록 감독하고 지도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현재 구조에서는 신자들도 바뀌어야 하지만 사제들이 바뀌는 것이 급선무이다. 요구만 한다고 바뀔 것이 아니므로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는 조건들을 먼저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세 번째로는,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먼저 교회 내부의 문제, 과제, 비전 등 모든 주제들을 공공연히 토론할 수 있도록 기존 교회언론에 자유를 주어야 한다. 교리에 배치되는 것은 금해야 하겠지만 본고에서 대상으로 삼았던 과제들은 충분히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심층적인 토론을 위해 교회 기관지 가운데 하나에게 이런 공간을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이처럼 자신 있게 내부를 열어 보이고 자정기능이 있음을 보일 때 공신력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 신학자들에게 가르칠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시기상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은데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평신도들이 교구, 연구소, 본당 스텝으로 일할 수 있을 때 한국교회는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다. 아울러 학회도 이들에게 개방하여 학문발전은 물론이고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네 번째로는, ‘종교권력’이라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우리 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세성장에 취해 이웃 종교와 시민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말하고 보는지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이를테면 김수환 추기경에게 보내는 존경의 표시가 우리 교회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동일시하려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사실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그분이 1970-80년대에 보여주었던, 그리고 사셨던 예언자적인 모습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그 시기를 돌아보면 그분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교회 전체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김수환 추기경과 현재 교회의 모습을 혼동하면 자칫 사회로부터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아직 우리 교회는 자신을 김수환 추기경과 동일시할 수 있는 상태도 수준도 아니다. 종교는 도덕적 권위를 통해 힘을 얻지, 정치권력을 통해 힘을 얻지 않는다. 일부라 하더라도 교회가 권력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의 모습 가운데 이런 면모가 없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해보아야 한다. 현재 이런 이야기를 그것도 교회 외부에서 듣고 있으니 거대 종교집단이 된 우리가 새삼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로, 이제 한국교회는 선교 3세기에서도 30년을 경과하였다.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러나 외래종교가 그 문화 안에 뿌리를 내리는 데는 500년 이상 걸린다. 물론 뿌리내리는 작업은 신자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된다. 가톨릭신자들이 일상에서 보여준 신앙인의 모습이 대를 물려 전수되고 사회적으로 인지되고 상호 접변을 일으켜 문화를 복음화할 때 가톨릭신앙이 문화 안에서 뿌리 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별 교구 차원의 과제도 있지만 교회 전체적으로 한국사회에 대하여 발언하거나 제시해야 할 것도 적지 않다. 한국사목연구소 해체 후 주교회의 산하 각 위원회들이 이 일을 맡고 있는데 자발성에만 기초하고 있어 체계적이고 일관된 연구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제대로 연구기능을 갖춘 연구소로 ‘한국사목연구소’를 부활시켜 본래 이 연구소가 설립될 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박문수 (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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