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배 작가의 '부유/현실/기록'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일관된 작업 주제로 진행해 온 오원배(吳元培, 1953-) 작가가 인천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인천아트플랫폼, 2023.10.7.-2024.3.3.)

개항지로서의 인천은 작업의 모티브이자 부조리한 인간 실존 문제를 드러내는 자양분이 되는 장소이기에 전시된 아카이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풍경은 바로 청관(淸館, China Town)이다. 이곳 일대는 1884년 청국이 일본을 견제하며 체결한 통상조약(인천구화상지계장정, 仁川口華商地界章程)과 관련된 곳으로 청나라의 관청이 있던 동네다. 이후 청관은 1937년 중일전쟁을 비롯해 현재의 차이나타운에 이르기까지 부침(浮沈)을 반복하다가 인천 미술작가의 전시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마치 인간이 그 의지와 상관없이 ‘환경에 던져진 존재’로서 사회 제도 속에서 부조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프랑스 실존주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를 연상시킨다. 타인에 의해 결정된 부조리한 사형 선고 앞에 구원의 마지막 유혹을 뿌리치고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방인"의 뫼르소, 오원배 작가의 작품 속에서 뫼르소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1970년대에는 유신독재의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탈을 쓴 익명의 인간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후 사회적 환경과 제도와 맞물려 전쟁과도 같은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매 시기마다 부조리한 사회적 환경에 던져진 존재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인간 소외’다.

그리고 사회적 긴장이 완화되는 21세기에 들어서 작가에게 인간 존재 탐색은 휴머니티의 경계를 묻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 작품들 역시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인공지능 시대에 부상하는 사회 문제에 관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생존을 위해 개인의 사적 공간이 사라지고 국가 주도로 결정된 ‘보이는 손의 위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또한 이순신 동상으로 상징되는 광화문 광장에서 외치는 자기만의 큰 목소리들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올 때 합리와 이성을 전제로 한 근대적 휴머니티에 대해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작품 속 정의의 여신 디케에게 물어보지만 답은 없어 보인다. (그림 1)

(그림 1) 오원배 작가 작품 ⓒ김연희
(그림 1) 오원배 작가 작품 ⓒ김연희

사이보그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로봇 인간과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의 존엄을 위협받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국가 시스템 혹은 사회적 환경에 의해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부조리만큼이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밀려 실존을 위협받는 ‘기계의 인간화’ 문제는 결국 ‘인간 소외’로 귀착된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인간의 존엄을 위협한다지만 그럼에도 이에 대한 저항은 거대한 네 점의 대형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인간의 몸이다. (그림2) 마치 카뮈의 "페스트"에서 도시 전체가 격리되고 폐쇄된 공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죽음과 암흑의 정점에서도 희망은 죽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원배 작가의 작품 속 인간은 주어진 환경을 피하지도 정주(定住)하지도 않는다. "페스트"에서, 영웅적이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 죽음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사람들은 연대의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희망은 대형 작품 속 인간만이 아니라 새로이 피어날 나무 뿌리 사이, 인간 너머의 생명으로 이동한다. 

(그림 2) 오원배 작가 작품 ⓒ김연희
(그림 2) 오원배 작가 작품 ⓒ김연희

이렇게 신작 드로잉 작품들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응하는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 준다. 직설적인 몸의 재현적 경향보다는 추상화된 인간과 자연, 도형과 선들이 드로잉 소재로 사용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반복적 형상은 단순화된 자연의 이미지다. (그림3) 소외된 인간의 부조리 문제는 점차로 인간을 넘어서 생명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변화된 환경은 신체의 일부가 된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려 주고 그 자신을 세계와 연결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작품 속 인간들은 또 다른 실존 경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하는 세계 속 그 과정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은 살아 있는 생물이며, 현실과 부딪히고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예술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오원배 작가 작품 ⓒ김연희<br>
(그림 3) 오원배 작가 작품 ⓒ김연희

페스트균은 결코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 다시 습격해 오리라는 담담한 어조는 우리에게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관된 관심사인 오원배 작가의 인간 실존은 죽음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부조리한 존재임과 동시에 죽음을 넘어서는 무언가와의 접속을 통해 영원을 꿈꾼다. 바로 이러한 절제된 믿음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부조리한 환경에 대처하는 작가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미술 비평 Art Theory and Criticism ph.D)

미술 평론 및 대학에서 예술 이론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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