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활용한 전시 '불멸'(예미킴)

최근 인공지능(AI)의 기계 학습을 예술 창작 방법으로 시도하는 작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신 및 창작활동을 모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시사점을 주고 있다. 주로 과학 기반 전공자들이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선보이는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예미킴(YEMIKIM) 작가 역시 카이스트에서 건설환경공학을 전공한 예술작가에 해당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제작한 작품들을 출력해 액자로 전시하는 아날로그 방식과 AI로 배경음악을 만든 가상(virtual) 갤러리인 메타버스 방식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동시에 보여 준다.

최근 제주에서 선보인 개인전('불멸'(Eternity),2023.10)에서는 숲, 정령, 유니콘 등의 프롬프트(prompt)로 생성한 (비)인간 이미지들을 디지털 공간에서 만들었다. 이들은 유기적 알고리즘인 우리의 정신이 기술로 매개된 디지털 영역으로 이동했을 때 죽지 않고 되살아나 ‘불멸’을 이루어 나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유한한 인간을 너머 ‘불멸’의 신이 되려는 것인가? (편집자 주 : 프롬프트는 연극을 공연할 때 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따위를 일러 주는 일을 말한다. 인공지능에서는 언어 모델을 기반한 AI 서비스, 생성 AI에 입력하는 입력값을 의미한다.)

이에 작가는 “DNA를 통한 생명체의 정보 복제 및 전수, 번식의 과정을 AI로 대용량 정보 분석, 생성, 복제하는 과정에 비유하여 인류의 지식, 인간 정신의 불멸에 대해 고찰하였다”고 전시 의도를 밝힌다. 이는 오늘날 포스트 인터넷(Post Internet) 예술로서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 속에서 이를 활용하여 작업하거나 이러한 세계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는 예술에 속한다.

이렇게 인공지능 장치를 활용하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 아이디어를 위해 이미 축적된 데이터와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감각 데이터를 붙잡아 작품 제작에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프롬프트 명령어를 이용해 원하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작가의 아이디어는 인공지능 작품을 개념미술로서 보아 온 과거 미술사에도 이미 존재했다. 여기에 오늘날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은 데이터라는 재료에 대한 의도적인 조작이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포스트휴먼 담론에서 다루는 신유물론적 관점이 인간과 기계, 물질과 정신에 대한 세계관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철학 및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틀로 자리 잡은 신유물론에서 물질은 단순한 객체가 아닌 행위성을 가지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존재다. 이렇게 기술을 통한 인간의 변화를 ‘포스트휴먼’이라 할 때 이는 인간 이성의 우월성을 전제로 한, 자율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근대적 인간 개념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2023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예미킴 개인전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제주문화예술재단)
2023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예미킴 개인전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제주문화예술재단)

전시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조작으로 증강 현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면 평면 그림은 살아 움직이는 디지털 세계로 되돌아간다. 빌 브라운이 주장하듯 “물질은 비물질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매체의 영향력 아래 상호작용하며 우리가 물질성이라고 여기는 것 너머의 관점들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렇듯 '불멸'에서 보여 주는 작품의 물질성은 접촉과 비접촉 사이에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의 플랫폼에서 데이터로 되살아난다.

21세기 초,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말에 따르면, 전자 알고리즘이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해독하여 호모데우스를 창조한다는 가설, 여기서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신비한 블랙박스인 호모사피엔스의 뇌는 전기적 화학작용으로 정보를 주고받는데, 그 과정을 만드는 것은 DNA 유전자로 합작한 결과다. 또한 신경생리학적으로 ‘기억’은 신경 네트워크 안의 신호 전달 통로의 영향 결과로 저장된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인 우리의 정신이 디지털 영역으로 이동한다면 우리의 영(soul)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기억(data)으로 있는다. 인체가 유기물로 이루어진 정밀한 기계라면 기억은 디지털에서 데이터이고, 이를 분석하고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 AI는 알고리즘 생명체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저장하여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수 있는 AI는 인류의 지식을 확장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통해 영원함(Eternity)을 이룬다. 따라서 '불멸(Eternity)'은 생물학적 진화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유기체와 기계가 합성되어 인간 휴머니즘적 존재에서 혼성적 존재로 재탄생하는 후기 진화론적 단계를 유비한다. 

이렇게 인간 유기체가 기계 하나처럼 다뤄질 때 ‘인간(Man)’을 중심에 두고 차이를 열등함으로 만들어 온 기존의 휴머니즘은 새로운 방식의 환경적 상호 접속이 가능해진다. “자연도 문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도나 해러웨이의 말대로 자연과 문화, 인간-비인간의 상호작용은 지구 환경에 속해 있는 생명 주체에 대한 사고 전환을 가져온다.

인간의 유한함을 신이 아닌 기술로 넘어서려는 현재, 인간과 인공지능은 막연한 공포라기보다 기대 속에 새로운 관계로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물의 척도로 공식화한 합리적 진보 개념에 생물학적, 도덕적 믿음을 결합시킨 인간에 대한 확신을 벗어난다면 말이다.

* 행성적 사유와 (비)인간들의 향연 , '불멸(Eternity)'에 대한 필자의 평론 글 참조. https://neolook.com/archives/20231010d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미술 비평 Art Theory and Criticism ph.D)

미술 평론 및 대학에서 예술 이론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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