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매체 시대, 디지털 영상의 물질적 존재론

이 글은 <가톨릭평론> 37호(2022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영화 '경아의 딸', 영상 유출과 소통 채널

올해 전주에서 열린 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한 영화 '경아의 딸'(김정은 감독)은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동영상 유출을 당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홀로 살아가는 ‘경아’(김정영)의 딸 ‘연수’(하윤경), 부푼 희망을 안고 최근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며 독립을 시작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사는 경아는 이런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늘 단속의 대상이 되고 영화는 모녀의 영상통화 장면에서도 그렇게 시작된다.

“누구 만나는 사람 없어?”

하지만 딸 연수에겐 엄마한테도 말 못한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헤어진 뒤로도 계속된 전 남자친구의 과도한 집착,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어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동영상 메시지가 엄마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 영상 속 딸아이의 적나라한 사생활 동영상을 받은 엄마, 친구의 연락을 받고서야 동영상 유포 사실을 알게 된 연수, 그런데 피해자인 딸은 내 편인 줄 알았던 엄마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어디서 만나도 그딴 놈을 만나!.... 도대체 이런 걸 왜 찍냐고.”

누구보다 힘들 딸에게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돼줄 거라 믿었던 엄마에게서 돌아온 건 비난과 모욕이다. 그리고 간신히 버텨오던 일상은 “인터넷 사이트에 유통된 것 같다”는 전화 한 통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유포된 동영상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끝도 없이 증식되는 인터넷 공간 앞에서 연수는 그날 이후 자신이 알던 모든 사람 앞에서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고자 한다. 그 후 원하던 교사 생활도 그만둔 채 도망치듯 떠나버린 딸의 텅 빈 자취방을 찾은 경아는 부서진 노트북만이 남은 그곳에서 홀로 감당했을 딸아이의 지옥을 삼키는 현장에 머문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라는 범위가 해당 여성만이 아니고 지인과 가족이 함께 짊어질 고통이라는 점에서 그 죄질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엄마와도 연을 끊다시피 한 연수는 동영상 삭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시작하고 은둔생활을 이어가지만 유포된 동영상은 ‘좀비’처럼 죽지 않고 어디선가 다시 살아 나온다.

영화는 영상 유출 피해를 본 여성이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지에 대한 자극적인 볼거리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수가 어떻게 다시 사회로 들어가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정을 연결해준 동료 선생, 친구, 경아가 간병하는 집의 변호사까지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성이 소리 없이 연대하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 모녀의 관계 설정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는 바로 가까운 사람들에 의한 것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때 나한테 했던 말은 생각나?.... 엄마도 아빠랑 똑같아!”

자신 역시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받았던 엄마 경아, 가장 가까웠던 남자친구의 디지털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딸 연수, 모녀가 겪은 폭력이 결국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 이 장면은 공감을 통한 이해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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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마등필름)

디지털 영상의 물질성

연수에게 찾아온 지워도 지워도 되살아나는 동영상의 악몽은 어느덧 현실의 위협으로 진화하고 전화번호마저 유출된다. 여자친구에 대한 분한 마음을 표출하려고 했다는 단순한(?) 범죄 동기가, 그래서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도 단번에 자백해 버리는 디지털 성범죄가 피해자에겐 일파만파가 되어 일생을 지옥에서 살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지털 영상 편집이 아날로그식 제작 방식과 달리 인터넷 이후 데이터의 저장고에 머물다가 링크를 타고 유통되고 순환되어 무한 복제되어 떠도는 생태를 가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매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는 0과 1의 숫자만으로 이루어진 데이터값에 의한 이미지다. 디지털 매체와 기술을 통해 현재 우리는 마치 거대한 저장고인 박물관에 접속하듯, 데이터로 변환된 아날로그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량을 가진 실존 이미지들(연수의 영상)도 일단 누군가의 저장고에 한 번 들어가면 데이터로 변환되어 그 이미지들은 모니터나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날로그 전시나 영화 관람이 일회적인 것과 달리 데이터화된 디지털 영상은 보관되었다가 무분별하게 복제와 증식, 그리고 이동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잔해’(digital debris)로 남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대의 이미지 순환을 탐구해 온 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은 이런 디지털 잔해의 이미지 선별은 “그것이 이동하는 대량유통의 논리에 따르는 순환과정을 통해 여러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1) 그래서 우리는 화상 채널 두어 개에 동시에 접속하는 순간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화면 정지나 로그아웃 상태에서 우리는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기술 이미지는 그 존재라는 것이 질량과 부피를 갖지 않는 데이터의 숫자로 이루어진 ‘비물질성’을 갖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순환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은 “물체 없이도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기술 이미지 자체는 실재와 허구를 오가는 ‘물질적’ 존재가 되었다.2) 인터넷은 정보의 매체(medium)지만 정보의 대상은 인터넷 외부, 즉 실제 세상인 오프라인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각자의 SNS 프레임이 허구를 지시하더라도 허구적 텍스트(영상)는 실제 인물로서 현실세계에서 작동한다.

그리하여 영화에서 연수는 검색창에 자기 이름 ‘박연수’라는 동영상 키워드 단어 몇 개만 두드려도 사적 영상은 타인들의 인터넷 플랫폼의 소재가 되고 신상 공개는 물론이고 무수한 댓글 창에는 모욕적인 말들이 끊임없이 증식한다. 즉 이미지들에 접근해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소환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데이터들은 여러 편집 방식으로 되살아나 원본 이미지의 내러티브를 해체하고,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맥락을 창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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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주마등필름)

기술 이미지의 축적과 미디어 생태계

앞서 언급한 조슬릿은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 이후, 오늘날의 이미지 생태계를 이해하고 이용하는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이미지 그 자체’(image itself)의 정치적 가능성을 언급한다.3) 그는 전 지구적으로 보편화된 텔레비전 같은 아날로그 방식의 매체도 공공담론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았는데, 정치 행동주의자의 미디어 전용과 같은 생태계에서 문화와 자본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조슬릿의 관점에서 인터넷 이후 이미지가 작동하는 시스템 전체를 놓고 분석해 볼 때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시대의 데이터화된 이미지가 어떤 힘을 가진다면 그것은 다수의 ‘웅성거림’(buzz)에 있으며 이미지의 희소 가치가 아닌 ‘히트hit 수’에 의해, 다시 말해 인터넷상에서 게시물의 조회 수에 의해서다. 각종 검색 엔진에서 히트 수가 증가할수록 검색 알고리즘은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저장되고 사용자의 첫 화면에 자동 추천되면서 이미지가 가시화되는 속도를 높인다.

또한 디지털 매체인 월드와이드웹의 환경에서 데이터화된 이미지의 개체 수의 증식을 유발하는 것은 바로 ‘링크와 연결’이다. 그것은 이미지가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의 결정적 조건이 그 이미지의 가치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쉽게 연결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조슬릿은 이미지의 힘(image-power)을 특정한 개별적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의 이동 시스템에 따른 개체 수의 증식에서 찾는다. 이미지의 개체 수는 복제와 증식을 통해 포화시키기도 하지만 ‘바이러스’처럼 다른 이미지로 옮겨가며 감염을 통해 나름의 힘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 매체와 기술은 이제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제한된 범주를 넘어 현실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인스타그램의 맛집 사진 이미지를 올리는 소상공인을 비롯해 ‘메타버스’를 활용한 아바타 전략은 선거운동에서 이미 그 영향력을 선보였다. 인간도 사물도 제2의 자연, 동시대의 데이터화된 이미지는 이제 특정 영역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현실을 넘나들며 그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경아의 딸', 김정은, 2022.(이미지 제공 =&nbsp;주마등필름)
'경아의 딸', 김정은, 2022.(이미지 제공 = 주마등필름)

'데이터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그리고 여성

오늘날 또 하나의 현실로 재편된 데이터 사회, 우리가 마주한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데이터의 바다'에서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환하는 이미지 생산과 이러한 데이터 이미지 배후의 기술과 자본, 권력과 정치의 맥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지구 내전의 시대, 디지털 시각체계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여러 신작 중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2013)에서는 디지털 세상에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사적이고 공적인 데이터가 자발적으로 수집되고 등록되는 카메라가 도처에 널려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완전히 숨을 수 있는지를 다소 유머스럽게 연출한 영상이다. 난해한 이 영상이 의미하는 바는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보이는 것과 아닌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구글 맵, 인공위성, 드론 항공지도 같은 ‘기술장치(기계)’라는 것이다.

영화 '경아의 딸'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고마운 장치였던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성범죄에 악용되면서 악마 같은 도구가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영화 '경아의 딸'은 가장 가깝고 친숙한 내 손 안의 존재(기계)가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변신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술매체 시대에 부각된 디지털 영상의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핵심은 영상매체의 순환구조에 대한 몰이해와 안일한 대처,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대상이 ‘여성’이라서 치명적이었다는 점이다. 여성에게만 강요된 순결의식이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건 기술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영화 곳곳에 드러난 여성주의적 시선이 내내 불편함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가부장적 구조에 무기력하게 대응한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경아가 도상(圖像)처럼 자리잡은 죽은 남편과의 사진을 떼어내고 그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다. 그리고 딸을 위험에 빠뜨린 디지털 성범죄자에게 엄벌을 처할 것을 탄원하는 ‘엄벌 탄원서’를 자필로 제출한다.

이에 연수는 “다 알고 찍었다”는 손가락질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 죄마저 덮으려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 합의하고 좋게 끝내자, 합의금은 최대한 넉넉히 챙겨 줄게.”

“합의할 생각 없어요. 끝까지 해보려고요.”

그리고 처벌받을 자는 따로 있지만 비난은 딸의 몫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엄마 경아는 이전과는 다르게 용기내어 말하려고 한다.

“내(경아) 잘못도 네(연수) 잘못도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여느 엄마와 딸들이 그렇듯 영화에서 이들 모녀의 내밀한 소통 채널은 여전히 영상통화다. 세상은 이제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복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텍스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 텍스트는 더 이상 거울의 바깥을 비추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거울 밖의 세상을 똑같이 재현하기를 갈망하기보다 기술매체 시대인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미디어를 생산하는 데서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1) David Joselit, After Art(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참조.
2) Boris Groys, In the Flow(Verso, 2016) 참조.
3) "피드백 노이즈 바이러스: 백남준, 앤디 워홀 그리고 이미지 정치에 관하여", 데이비드 조슬릿, 안대웅 옮김, 현실문화, 2016 참조.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비평 전공). 미학 연구와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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