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에서 동성 커플 축복이 가능하다는 선언문이 발표되면서 교회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18일 교종청 신앙교리부는 ‘간청하는 믿음-축복의 사목적 의미에 대하여’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축복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그 누구도 이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다.

이에 대해 한국 천주교주교회의는 어떠한 신분, 어떠한 혼인 상태에 있더라도, 이들이 청하는 ‘사목적’ 축복을 허용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 선언문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에는 동성 커플뿐 아니라 재혼, 동거 등 비정규적인(irregular) 혼인 상태에 있는 이들도 포함한다.

그동안 ‘가톨릭 전례 행위’의 맥락에서 이해해 온 ‘축복’에 대한 사목의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풀이되는 이 선언은 무슨 의미이고,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먼저 2021년 2월 신앙교리부는 ‘동성 간 결합의 축복과 관련된 의문에 대한 답변’에서, 교회는 동성 간 결합을 축복할 권한을 지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바 있다. 이때는 축복을 ‘준성사’라는 전례 행위의 맥락에서 해석해서 동성 커플을 전례 행위로서 축복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결정 역시 “교회의 공적 전례 행위로 오해받을 위험이 없는 적절한 방식으로만” 축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전례 행위로서 '축복'과 사목 행위로서 '축복'을 구분하는 것에 대해, 가톨릭 문화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축복은 되지만 전례는 안 된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축복을 허용하는 것이 동성 결합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며, 혼인 성사와도 구분된다고 부연설명이 붙는 이유다. 

축복은 하느님의 복이 내리기를 비는 행위로, 보통 성직자가 십자가 형상을 그으며 기도한다. 전례는 아주 간단히 말하면 교회의 공적 의식이고, 사목은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활동으로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은 뜻풀이를 읽는 것만으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간청하는 믿음’에서는 결혼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의식이나 복장, 몸짓, 문장 등으로 축복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가톨릭교회의 전례인 미사 형태여서도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어떤 방식으로 축복해야 한다는 규정이나 지침을 교구나 주교회의 차원에서 마련해서도 안 된다. 규정이나 지침은 교회의 공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복을 줄지에 관한 식별도 온전히 사제 몫이어서 선언문은 “사제들의 사목적 감수성이 잘 교육돼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축복하는 사제의 손. (이미지 출처 = Flickr)<br>
축복하는 사제의 손. (이미지 출처 = Flickr)

이번 결정이 아주 새롭고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동성 커플을 비롯해 비정규적인 혼인 상태에 있는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계속 강조해 왔다. 이는 특히, ‘가정’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 후속 권고로 2016년 나온 '사랑의 기쁨'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혼하고 새로운 결합을 맺은 이들이 여전히 교회에 속해 있다고 느끼도록 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파문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파문당한 것처럼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돌본다고 해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앙과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대한 증언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사랑이 드러나게 됩니다.”"(243항)

"시노드 교부들과 함께 저는 부모에게나 자녀에게나 쉽지 않은 상황, 곧 가족들 가운데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가 있는 가정의 상황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이가 자신의 성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존엄을 존중받고 사려 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250항)

"교회의 길은 어느 누구도 영원히 단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진심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296항)

프란치스코 교종은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하다’면서 교리나 도덕, 또는 사목에 관련된 논의를 모두 교도권이 관여하여 처리할 필요가 없다(3항)고 말했다. 어쩌면 축복의 의미를 확대하는 것은 그동안 사목 현장에서 실제로 이뤄졌던 배려들을 공식적으로 껴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축복’이라는 사목적 행위로 드러나지만, 이 기회에 교회 구성원 모두가 누군가를 도덕, 교리의 잣대로 판단하고 단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이들을 마음에서부터 품자는 취지다. 사제뿐 아니라 교회 구성원 모두가 사목적 감수성을 배우고 품어야 함을 새길 기회이기도 하다.

"저는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신자 여러분이 자신의 목자에게, 또는 주님께 봉헌한 삶을 사는 평신도에게 신뢰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바랍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생각이나 바람에 늘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여러분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개인적 성숙의 길을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빛을 분명히 얻게 될 것입니다."(312항)

그동안 교회 안에서는 비정규적 혼인 상태에 있는 이들에 대한 사목에 관해 숱한 논란이 있었다. 지난 10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에서는 성소수자를 주제로 여러 차례 논의했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도 최종보고서에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이 담기지 못했다. 이처럼 교회 입장이 기대한 만큼 빠르게 바뀌지 않지만, 이번 조치는 일종의 타협과 같은 것이기에 해결책으로 보기보다는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가톨릭교회 내 성소수자 인권 연대 단체인 ‘가톨릭앨라이 아르쿠스’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지라도 큰 변화”라고 교종청의 발표를 환영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는 성소수자라고, 성소수자 공동체에서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종교를 믿는다고 비난을 겪는 상황에서, 이번 선언문은 동성 커플이 경험할 수 있는 이런 낙인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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