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세 번째 화요일에 '평화로 세상읽기'를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가톨릭교회 국제평화운동 단체인 팍스크리스티에서 한 경험과 평화의 관점에서 다양한 국내외 사회적 사건의 배경 및 의미를 소개하고 대화하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이성훈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평화의 관점에서 후대 역사가는 2023년을 어떻게 기록할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정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역사는 스스로 반복한다’는 말처럼 이 정의에는 과거에서 배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이 담겨 있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이 시대의 징표가 된 오늘날 역사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와 현재’의 대화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다가오는 기후 파국과 ‘전지전능’해지는 AI 등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 역사 기록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쟁과 민간인 대량학살은 인류 사회에 또다시 큰 충격을 주었다. 공교롭게도 3년 전인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사쿠데타로 촉발된 폭력과 내전 그리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해마다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적지 않은 국제 정치와 안보 전문가가 다음 차례로 타이완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작년 성탄절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해 상황을 ‘평화의 기근’이라 칭하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을 비롯해 남수단, 이디오피아 등 아프리카 곳곳의 무력 분쟁을 언급하고,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성탄절 메시지에 더 강력한 경고가 담겨도 전혀 놀라지 않을 정도다. 

60년 전인 1963년 가톨릭교회에는 중요한 두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바로 2차 바티칸공의회 와 교황 요한 23세의 '지상의 평화' 반포다. 

3년간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년 10월–1965년 12월)는 현재 시노달리타스(함께걷기)를 주제로 2021년 10월 시작하여 2024년 10월까지 3년간 진행하는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를 계기로 소환되고 재현되고 있다. ‘시노달리타스’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하느님 백성 모두의 주체적 참여를 핵심으로 강조한다.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제3차 바티칸공의회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교회의 현재를 좌우할 중요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결과물인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이 발표되었고, 마지막 회기는 내년 10월 로마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상의 평화'는 교황 요한 23세가 공의회 기간 중이던 1963년 4월 반포하였다. 공의회가 교회 내적인 행사였다면 '지상의 평화'는 대사회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1931년 비오 11세의 '40주년'과 1991년 요한바오로 2세의 '백주년'처럼 올해 '지상의 평화' 60주년 문서가 발간되기를 기대했었다. 대신 올해 10월 '하느님을 찬미하여라'(Laudate Deum)가 지난 2015년 '찬미받으소서' 후속으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교황청립 라테나노 대학교가 5월 11-12일 '지상의 평화' 60주년 기념 국제회의를 열었다.

요한 23세 교황은 60년 전에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했다. (사진 출처 = 바티칸뉴스)
요한 23세 교황은 60년 전에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했다. (사진 출처 = 바티칸뉴스)

1963년 쿠바와 2023년 우크라이나

공교롭게도 60년 전인 1963년과 올해의 국제 정치 상황은 너무도 유사하다. 1962년 10월 미국은 소련의 쿠바 핵무기 배치를 둘러싸고 핵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당시 요한 23세 교황은 비밀 중재안을 통해 핵 전쟁을 막아내는 데 일조했다. 이 사건으로 교황은 국제 평화 문제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음 해인 1963년 4월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반포했다.

60년 전과 오늘날의 큰 차이점은 소련이 러시아로 변했고, 갈등 현장이 미국의 ‘뒷마당’인 쿠바에서 러시아의 ‘안마당’인 우크라이나가 된 점이다. 물론 시대 상황도 크게 변했다. 1960년 초반을 '냉전'이라고 했다면 오늘날은 ‘신 냉전’이라고 부른다. 

당시와 달라지지 않은 점은 핵무기 위협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1982년 냉전시기 체결했던 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 연장을 거부하였다. 이 와중에 중국은 급속히 핵무력을 증강하고 있다. 기존의 북한 핵무기 개발에 이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핵 위협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서 ‘핵무기 자체무장론’ 등 안보불안감을 이용한 각종 정략적 주장이 넘쳐나고, 불안한 국민은 쉽게 동요하고 휩쓸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후유증에서 벗어나니 다시 ‘기후 우울증’ 위에 '핵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덧붙여져 짓누른다. 

60년 전 미국 대통령은 존 F 케네디였고, 현재 미국의 대통령은 조 바이든이다. 역사의 우연이겠지만 둘 다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으로 가톨릭 신자다. 전자는 쿠바 핵위기 사태를 정치 결단으로 평화적으로 해소했다면 후자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갈등을 막거나 해소하는 데 정치적 역할을 ‘아직’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지혜가 부족한지 용기가 부족한지 60년 전과 달리 교황의 반복되는 호소에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제대로 응답을 못하고 있다. 

역대 교황처럼 프란치스코 교황도 평화에서 핵반대 입장을 거듭 강조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핵문기 사용은 물론 소유하는 것 자체도 비도적적이다”라고 강조하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해 모든 국가 정치인이 노력할 것을 촉구하였다.1) 당시 필자는 팍스크리스티코리아(PCK) 회원 10여 명과 함께 교황의 나가사키 방문 행사에 참여하였다. 행사장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노력했다. 

8월 9일 히로시마 평화 순례를 마친 미국과 일본 4개 교구 교구장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성훈)
8월 9일 히로시마 평화 순례를 마친 미국과 일본 4개 교구 교구장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성훈)

나가사키 ‘핵무기 없는 세상 파트너십’

비록 평화단체의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올해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핵 감축에 대한 히로시마 비전’을 채택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올해 8월 미국의 핵무기 개발과 실험지가 있는 시애틀과 산타페 교구 두 주교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했다. 두 주교는 나가사키 우라카미 성당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주교와 함께 8월 9일 오전 11시 핵폭탄이 폭발한 시간에 추념 미사를 봉헌하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파트너십'을 선언하였다.2)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폭탄 피해 국가와 가해 국가의 가톨릭교회 주교의 역사적 만남이자 협력 선언이었다. 

마침 나카사키 평화순례 중인 필자도 '이음새' 회원과 함께 이 미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미사 기간 중 마음이 매우 복잡해졌다. 이 역사적 현장에 한국인 주교도 없고 선언문에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8월 6일 히로시마 피폭 공식 추념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추모 행사 중 2차 세계대전 전범을 '호국영령'으로 호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당시 약 33만 인구의 14만명, 나가사키에서 27만 인구에서 약 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중 약 10퍼센트는 한반도에서 강제로 거주하거나 일자리를 찾던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이용하여 자신의 전쟁 범죄에 대한 공식 사과 없이 자신을 피해자로 국제사회에 각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60년 전 그랬듯이 반공을 명분으로 정상국가화 했다면 최근에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핵무기 제작 과정을 다룬 미국 영화 '오펜하이머'는 아직 일본에서 상영금지 상태다. 

올해도 평화 대신 ‘지상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로 인해 대림절을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기쁨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내년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요한 23세 교황은 1962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시간 주간지 <타임>(TIME)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2013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한 202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 역사적으로 미국, 소련/러시아, 미국의 적지 않은 정치인이 올해의 인물에 두 번씩 선정되었다. 

해마다 12월 첫 주, 교회력으로는 대림 첫 주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을 발표한다. 과연 2024년 올해의 인물에 누가 선정될까? 1년 뒤엔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조 바이든이 나란히 두번째로 선정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상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올해 성탄 선물로 '지상의 평화'를 미국의 최고 권력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내고 싶다. 성탄 휴일 날 반나절이라도 개인 피정 시간을 만들어 숙독하는 시간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국익과 지정학적 이해 타산이 아니라 '지상의 평화'에서 강조한 공동선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갈등을 예방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1.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971

 2.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51

이성훈(안셀모)

아시아시민사회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파트너십 대표
팍스크리스티코리아(PCK) 창립 공동대표, 현 국제협력 이사
대학 가톨릭학생회 활동 경험을 계기로 홍콩, 제네바, 방콕 국제 가톨릭 및 인권NGO에서 15년 근무하는 등, 약 30년간 인권과 민주주의, 지속가능발전과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으로 평화와 기후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지식으로 나누기 위해 경희대, 아주대,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강의도 병행해 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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