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세 번째 금요일에 '한반도 지금 여기는'를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외교, 남북관계, 북한 이슈를 시의성 있게 다룹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백장현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2030년 엑스포 유치전에서 거둔 119 대 29 성적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난 1년 윤석열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엑스포 유치위원회를 꾸려 삼성, 에스케이, 현대자동차, 엘지 등 대기업까지 동원해 대규모 유치 활동을 벌였다. 유치위원회는 막판 역전도 가능하다며 고무됐지만 정작 투표 결과는 참패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가장 주요한 원인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노골적인 미국 편향 외교를 펼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인권, 법치 등 ‘가치 외교’의 기치하에 국제 규범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연대를 역설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비판했다. 또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첨병 역할을 자임했다. 이러한 외교 정책에 윤 정부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름부터 기이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해양 세력’이 ‘대륙세력’을 인도양-태평양에서 봉쇄한다는 전략인데, 해양 국가도 아닌 한국이 왜 이 전략을 채택하는가? ‘교량 국가’인 한국의 처지에서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모두를 다 포용해야 국익에 부합한다. 그리고 왜 앞에 ‘한국판’이란 형용사를 붙였는가? ‘인도-태평양 전략’이 인류 모두에게 보편 타당한 전략이기에 ‘한국 버전’이란 의미에서 앞에 ‘한국판’이란 형용사를 붙인 것인가? 참으로 국적 불명의 기이한 네이밍이다.

원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의 아베 수상이 기획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여 출범시킨 구상이다. 2007년 8월 아베는 인도를 방문해 인도 의회에서 ‘2개 대양의 결합’이라는 연설을 했다. 그 요지는 인도양과 태평양에 인접한 일본과 인도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외교로 양국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 호주와 함께 4개국 쿼드 연대를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아베의 구상은 중국을 봉쇄해 주저앉힌 후 일본이 다시 아시아의 맹주에 오르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전략 속에는 일본 우익의 ‘기지국가론’이 꽈리를 틀고 있다. ‘기지국가론’이란 한반도를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가능한 상태인 ‘전장 국가’로 만들고, 일본은 그 후방의 ‘기지 국가’로 자리매김하자는 전략이다. 한반도를 분단시켜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맞부딪치는 긴장 지역으로 만들어 놓을 때 일본의 안보가 확보되고 경제적 이익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2010년대 초반 중국에게 GDP 규모에서 추월당하고,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패배해 울분에 찼던 일본 우익들의 공감 속에서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도와 아세안(ASEAN) 국가들의 참여가 중요한데, 정작 이들은 중국 봉쇄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자신들의 국익에 배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도는 쿼드에 참여하고 있지만 국익에 부합되는 사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참여할 뿐 중국 봉쇄에는 냉담하다. 아세안도 미, 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다른 편으론 경제 협력에 적극적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오히려 미, 중에게 아세안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될 맞춤 전략을 가져오라고 한다.

하필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아세안 정상들의 면전에서 미국 편향 외교를 선보였다. 작년 11월 프놈펜에서 열렸던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와 맹목을 보여 준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대통령이 미, 일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들고 다니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자신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가치 블록을 구축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중 잣대에 의한 위선적 외교를 벌이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국가들의 눈에 윤 대통령의 이런 행태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유치위 관계자들이 엑스포 유치 활동을 극성스럽게 할수록 졸부에 대한 혐오감까지 겹치며 역효과가 커졌을 개연성이 높다.

지난 11월 29일,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사우디아라비야 리야드가 119표, 부산이 29표를 얻었다. (사진 출처 = MBCNEWS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11월 29일,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사우디아라비야 리야드가 119표, 부산이 29표를 얻었다. (사진 출처 = MBCNEWS가 유튜브 채널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미국의 리더십 약화와 119 대 29의 세력 분포

119 대 29에서 29는 현재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따르는 국가 숫자와 엇비슷하다. 12월 12일 UN총회에서 이스라엘-하마스의 즉각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 투표가 있었는데, 찬성 국가와 반대, 기권 국가의 비율이 153 대 33이다. 미국은 이 결의안에 대해 인질을 잡은 주체가 하마스라는 점과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는 내용이 빠졌다는 이유로 반대했는데, 여기에 동조한 국가가 33개국이다. 이 투표 결과는 국제 질서가 탈냉전 이후 초강대국 미국 중심의 1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의 숫자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주도하고 있기에 일견 전 세계가 다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참여국은 40여 개 국가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서는 호주, 일본, 한국밖에 없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멕시코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브릭스(BRICS)를 위시해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은 러시아 제재에 냉담하다. 인도의 경우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불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 석유 수입을 늘렸다. 또한 러시아와 거래에서 루피-루블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서방의 금융제재에 구멍을 내고 달러체제 균열까지 노려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의 리더십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급격히 퇴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부터 세계경찰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며 패권적 리더십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 우선주의’로 다자주의 협력을 무시했고, 거래주의 시각에서 동맹국도 무임승차국으로 취급했다. ‘강한 미국’을 표방했지만 국제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국익을 위해서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며 규범과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의 회복, 동맹과의 다자협력 강화 등 말은 현란해졌지만 ‘미국 우선주의’라는 본질은 오히려 트럼프 시기보다 강화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 우방국과 협력해 중국,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항하겠다며 가치 연대를 주창하고 있지만, 자국 우선주의, 이중 잣대 등의 이유로 많은 국가에게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편향 외교의 후유증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 미, 일 편향 외교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1.3퍼센트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세계 경제 성장률 2.7퍼센트에 한참 못 미칠 뿐 아니라, 30년 이상 정체를 겪고 있는 대표적 저성장 국가 일본의 경제성장률 1.8퍼센트보다도 더 낮다. 한국 경제의 부진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최대 교역국인 중국 교역액이 줄어든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중국 수출이 줄면서 한국의 무역수지도 적자를 내기 시작했으며 그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중국의 수입시장 점유율에서도 줄곧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이 작년에 타이완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올해는 타이완, 미국, 호주에 이은 4위로 곤두박질쳤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 환경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와 중러 관계 악화는 북러 군사협력 강화로 나타났다. 적대적 남북 관계 속에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기술 전수와 북러 군사협력 강화는 안보 불안을 불러오고 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자명한 이치를 윤석열 외교안보팀만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저서 "통일코리아 가는길", "북핵해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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