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려는가'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사회교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2년간의 이야기를 이제 마무리하려 합니다. 무슨 제목으로 어떻게 마무리 할까 하다가 요즘 유행하는 영화 ‘서울의 봄’이 떠올랐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 독재정권의 종식을 기대한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졌지요. 그래서 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기를 일컫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는 이 시기를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지요.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진짜 봄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전의 겨울보다 더 추운 겨울이 찾아왔지요.

그 시절 봄을 찾지 못한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봄이 찾아왔음에도 그 봄을 지키지 못했던 당시 무능했던 정치인들은 결국 신군부의 군홧발에 다시 한번 무릎을 꿇게 되고, 겨울의 세력은 봄을 밀쳐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봄을 빼앗은 세력들을 단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다양한 이유로 겨울을 유지시킨 자들에 대한 단죄는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예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잠시 봄인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 이후 우리나라에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 훨씬 오래전 세월에도 봄을 외쳤던 이상화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지난 대선 지금의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우리는 다시 한번 제대로 된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 경제, 안보, 문화 어디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이 감이 안되니 자신이 임명하는 사람들의 됨됨이도 정말 가관입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모릅니다. 아니 이제는 자기들끼리도 싸우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대로 된 개그콘서트가 벌어지고 있지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우습고 하찮은 대한민국의 겨울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 시선을 우리에게로 옮겨 봅시다.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4년 방한 시 아시아 청년대회 미사에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신앙의 지혜를 불어넣으십시오." 이는 젊은이들에게만 한정된 말씀이 아닙니다. 교황님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 중) 그리고 그 힘을 통해 “복잡한 현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182항 참조) 사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50여 년 전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각 지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각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 (1971년 교서 ‘팔십주년’ 4항)이라고 하셨지요. 이렇게 내가 살아가는 자리에 대한 관심은 우리 신앙인이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예비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그 여정이 시작되었지요. 선거는 항상 중요하지만 한없이 깊은 겨울로 빠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특별히 중요한 선거일 것입니다. 봄이 온 줄 알았지만 사실은 봄이 아니었던 80년대 그때 그 시절의 아픔을 이제는 끊어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내년 선거를 할 시기가 오면 날씨는 분명 봄의 한가운데이겠지요. 부디 날씨뿐만 아니라 진정한 대한민국의 봄이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코너의 제목대로 보고 관찰하고 판단하는 현명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봅니다.

오늘로 '관찰, 판단, 그리고 살아가기' 연재를 마칩니다. 2년간 사회의 크고작은 이슈들을 다루며,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살기 위한 고민을 사회교리로 풀어주신 유상우 신부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유상우 신부

부산교구 우정 성당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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