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생들의 시국 선언문을 접했습니다. 신앙의 못자리라고 불리우는 신학교에서의 시국선언은 2016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2016년 당시 사제서품을 앞둔 부제였던 저 역시 부산신학교의 시국 선언 초안을 잡고 동기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서 끝나지 않고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해 함께 노력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 헌장 1항으로 시작하는 당시 시국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사목헌장 1항) 가톨릭교회는 교회 공동체가 인간과 인간이 형성하는 사회 공동체에 긴밀히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그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시대의 징표'를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이고 구원 역사를 설명하는 섭리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교황청 훈령, '일치와 발전' 122항)

그리고 다시 한번 미래의 사목자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신학생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에제 18,31)라는 예언서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번 선언문은 현 정부의 잘못된 행적을 지적하면서 이에 따른 교회의 가르침과 성찰을 아주 구체적으로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여기’에 나왔던 학생회장 부제님의 말씀 “전교생이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고 서로를 설득한 과정이었으며, 단지 정권 비판이나 퇴진 요구가 아니라 현 시국에 대해 어떻게 복음적으로 말하고 공유할 것인지 고민한 과정의 결과”는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정치 또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더불어 요한바오로 2세부터 현 교황의 가르침까지 사회를 바라보는 교회의 시각도 함께 제시하며 이 시대를 성찰했습니다. 더욱이 시국 선언을 발표한 10월 11일은 교회 역사 안에서 참으로 의미 깊은 날입니다. 요한 23세 교황에서부터 요한바오로 2세 교황까지 현대 가톨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지금여기 자료사진

이 시국 선언을 보고 응원 댓글도 있었지만 비판 반응도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왜 정치 문제에 관심을 두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의 양성은 단순히 학문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미 교회는 사제 양성과 그에 따른 교육을 이야기할 때 공권력은 정당한 가치 서열과 역사적 상황의 요청을 존중하면서 전체 시민과 지상적-현세적 면모 및 초월적 면모 모두를 고려한 전인격의 유익을 위해 공동선을 실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가톨릭 교육성, '사제 양성과 교회의 사회교리 그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본 지침', 37항 참조) 게다가 몇몇 분이 지적하신 바와 달리 신학생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다 온 1학년 신학생부터 곧 사제품을 앞두고 있는 부제님들까지, 10년 터울 선후배들이 하느님에 대해 배우며 나누고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그저 어리다고 치부하고, 젊어서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 가진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어른들의 행동이지요.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사랑과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한 시국 선언에 응원을 보냅니다. "통치의 책무를 맡은 이들은 개인과 민족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도록 부름받았다.(교황 프란치스코, '모든 형제들' 188항 참조) 탄압과 분열이 아닌, 소통과 대화의 정치를 통해 정의(正義)의 사회를 실현하라. 참다운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간추린 사회교리", 21항)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관심, 그리고 행동으로 투신할 것이다"라는 이 시국 선언의 마지막처럼 자신의 못자리 공동체 이름으로 나온 이 선언문의 말들이 단순히 글로만 아니라 훗날 언젠가 다가올 사제의 삶 속에서도 녹아나길 기도해 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때의 마음을 잘 간직하고 살아왔는지, 지금 모습이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교회는 인간을 “교회가 따라 걸어가야 할 길”인 동시에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다른 모든 길의 바탕이 되는 길”(요한 바오로 2세, 인간의 구원자, 14항)이라고 가르칩니다. 그 길을 함께 용감히 걸을 수 있는 힘을 함께 청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

부산교구 우정 성당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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