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참을 머물렀던 말이 있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마태 25,15) 하늘나라를 비유로 설명하는 주님의 말씀이지만 지상 나라, 특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너무나 잘 맞는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다섯 탈렌트를 소화할 능력이 있고 누군가는 두 탈렌트를 누군가는 한 탈렌트도 소화할 능력도 없는 사람도 분명 존재합니다. 분야를 따져도 될 것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다섯 탈렌트를 소화할 능력이 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한 탈렌트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각 분야에 따라 능력대로 일을 맡기고, 더불어 자신의 능력을 솔직히 인정하고 일을 맡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치 측면도 마찬가지지요. “선출된 공직자들은, 각자의 특정 영역(입법, 통치, 견제와 균형 제도 확립)에서, 국민 생활이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들을 모색하고 달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09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국민에 의해 뽑힌 이들의 역할에 대해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순간 저는 술 마시고 남 탓하는 데는 다섯 탈렌트가 넘는 능력을 가지면서도 나라를 통치하는 데는 한 탈렌트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정치에 대한 능력이 없으니 그가 또다시 그 밑의 일을 맡기는 사람 역시 한 탈렌트도 소화할 수 없는 사람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지요. 사실 애당초 제 능력이 안 되고, 능력대로 일을 주지 못할 사람을 뽑은 국민의 탓이 더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의 말처럼, 능력도 없는 종에게 일을 맡긴 건 바로 우리 국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마을 이장도 버거워 막걸리나 마시면 어울릴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에 있고, 건물 경비 일도 제대로 못할 것 같은 사람이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의 사단장을 하고 있으며, 자식들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정치 권위의 주체는 주권을 지닌 이들로 간주되는 국민 전체이다. 다양한 형태로, 국민은 자신들이 자유롭게 선출한 대표들에게 주권의 행사를 위임하지만,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그들이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교체시킴으로써 이러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특권은 보존된다."(간추린 사회교리 395항)

복음이 증명하듯 다섯 탈렌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과 두 탈렌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에 맞는 결과를 주인에게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도 제대로 굴릴 수 없는 사람은 땅에 숨겨 두었던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핑계를 대지요.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력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1년 반 넘게 지겹도록 우리나라에서 보고 들은 현실입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전 정부 탓, 야당 탓,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 탓으로 돌리는 정권의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오히려 이 종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종은 한 탈렌트라도 그대로 지켜서 가지고 주인에게 왔지요. 쉽게 말하면 본전은 챙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권을 가진 자들은 한 탈렌트, 그 본전도 지키지 못하고 깊고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표현대로 핑계만 대고 일을 하지 못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마태 25,26)을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출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리에 심심치 않게 플래카드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출마 예정자들의 얼굴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다섯 탈렌트를 맡길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한 탈렌트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뽑은 결과를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핑계만 대고 일을 하지 못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발전시킬 수 있는 “착하고 슬기로운 종”들이 더 많은 일, 더 큰 일을 맡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유상우 신부

부산교구 우정 성당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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