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첫 번째 화요일에 '회사원과 사회교리 실천'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인 회사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가톨릭 사회교리의 의미와 실천 방법을 개인 경험에 비추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집필해 주신 조은기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는 서문과 본문만 해도 400페이지를 넘어선다. 분명히 중요한 점만을 골라 간략하게 간추렸을 텐데,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다행히 젊은이들을 위해 쓴 사회교리서 "DOCAT"(무엇을 해야 합니까?)은 양도 적고 이해하기도 쉬워서 실천해 보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막막하다. 사회교리의 내용은 도덕적인 기준이나 방향 제시인 경우가 많아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현실에서 신앙인들은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어느 작가는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고 했는데, 사회교리도 회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33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에서 일하면서, 사원, 대리, 과장, 부장을 거쳐 팀장, 임원, 대표이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신앙인으로서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것은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는 적응하느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적응을 마친 후에도 미사에서 접하는 성경과 전례에서 답을 구하려고만 했지, 회사생활과 관련된 사회교리에서 실마리를 찾을 생각을 못했다. 큰 틀의 사회 변혁에 대한 고민은 많았지만, 일상생활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다. 이 글은 아쉬움에 대한 반성이자 다시 시작하기 위한 계획을, 신앙인으로서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마련되었다.

회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먼저 고민하는 것은 취직할 회사를 선택하는 문제다. 내가 원하는 회사에 취직이 되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 나를 뽑아주는 회사를 선택하게 된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 상에 맞추어 취업 준비를 하다 보면 취직한 후에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인쿠르트 963명 대상 시행, 95퍼센트 신뢰 수준)에 따르면 80퍼센트 이상이 퇴사 계획이 있고, 퇴직 사유로는 연봉과 회사 미래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았다. 신앙인이 사회교리를 실천하며 회사생활을 할 때 어떤 회사가 가장 적합한 회사일까? 처음 직장을 정할 때나, 어쩔 수 없이 이직해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회사를 선택해야 할까?

80년대 필자가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 좋은 회사의 기준은 법을 지키며 이익을 최대한 내서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느냐 여부였다. 세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계층 간의 격차가 심해져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요즘의 기준은 다르다. 전통적인 기업은 주주, 고객, 구성원(사용자와 노동자)의 이해를 충족시키면 되었지만 현재의 기업은 이해관계자가 확장되었다. 지자체, 지역사회, 시민단체, 정부, 협력회사, 미디어 등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익을 내고 세금을 많이 내도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하기 어렵다. "DOCAT"에서도 기업의 성공은 이익의 효율적인 달성에 있지만, 이웃과 사회를 위해 가치 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어야 좋은 기업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기부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기업 활동의 모든 과정에서 공정하고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환경을 고려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기업인 몬드라곤 설립을 주도하고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사회적인 이익은 경제에 기여하는 이익을 통해 효율적인 것인지 입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이익도 사회에 기여하는 이익을 통해 보편적 이익인지 검증되어야 한다."("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협동조합, 2016) 단순히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바람직한 회사가 아니고 경제적인 성장도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과 같은 특수한 환경(사회교리의 하나인 연대성의 원리를 전통적으로 중시)과 몬드라곤이 울고르라는 협동조합으로 처음 시작한 1950년대가 스페인 경제 발전의 초창기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몬드라곤 협동조합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은 매우 드문 사례다. 몬드라곤과 같은 훌륭한 기업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서 회사의 목표와 비전이 부족해 보여도 회사와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차선의 방법이다.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의 발전 방향이 사회교리와 맞지 않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몬드라곤과 같은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사회교리를 실천하게 되겠지만, 보통의 회사여도 그 목적과 활동이 사회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디서든 사회교리를 실천할 수 있다. 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단계에서 경제적인 이익과 함께 사회에 기여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사회적인 기여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제시하는 항목들(빈곤, 질병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문제, 기후변화, 환경오염과 같은 지구환경 문제 그리고 경제사회 문제들)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기업 활동이 이러한 사회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다면 회사는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회사원이 사회교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노력은 회사의 발전 방향이 경제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회사가 만드는 상품과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어도 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 문제와 연결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사회교리가 회사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회사라는 제도 때문이 아니다. 회사와 신앙을 분리해서 생활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더 큰 장애물이다. 회사원은 깨어 있는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더 쉽다.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회사 밖 모임에도 참여하고 봉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사원, 대리 때는 회사생활과 나를 분리해서 생활해도 둘 다 충실하게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장, 부장, 팀장과 같이 역할과 책임이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렵다.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신앙생활과 회사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고 회사 안에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출발해야 한다.

조은기(아우구스티노)

80년대 가톨릭학생회와 야학에서 20대를 보내고, 33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에서 사원, 대리, 과장, 부장을 거쳐 팀장, 임원, 대표이사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현재는 은퇴하여 국내외 다양한 순례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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