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 '가톨릭교회와 이주사목'을 한 해 동안 연재합니다. 왜 교회는 이주와 이주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 왔는지 역사적 맥락을 깊이 알아가며, 영적 풍요로움도 함께 담고자 합니다. 집필해 주신 김민 신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가톨릭교회 내에서 일어난 변화는 매우 컸다. 아마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의 변화들의 가장 큰 분수령으로 꼽을 수 있는 일들의 상당수가 프란치스코 교황 시기에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교회사가 근현대 가톨릭교회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과 후로 구분하듯이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기의 교회에서 일어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이주 난민 이슈에 대해서 교회가 매우 적극적으로 현실 국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이탈리아 이주민의 후손이라는 전기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교황 선출 직후부터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선출 직후 최초로 가진 해외 방문이 난민들의 섬인 람페두사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그 유명한 ‘무관심의 세계화’에 관한 강론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다르게 현실 참여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했다. 강론에서 교황은 고통과 죽음을 맞닥뜨리고 있는 난민들의 상황과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을 고발하면서 이러한 “이름이 없고 얼굴이 없는 이들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년 1월, 교황청이 주재하는 외교관들과의 모임에서 이주/난민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가톨릭교회의 로드맵을 공개했다. “우리 모두는 이주와 관련하여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응급상황에 따른 응답에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이주민들이 그들을 받아들인 나라들에 통합하는 데 효과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아마도 2013년 교황 선출 이후부터 2016년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주 난민에 대한 교회의 응답이 너무 산발적이고 응답의 목표가 불확실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에 교황은 2016년 말과 2017년 초에 거쳐 교황청에 새로운 부서-사실 기존 부서들을 통폐합하고 한 부서로 통일적인 리더십을 부여한 것-를 만들었다. 바로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교황청 부서’(이후 온전한 인간발전부로 표기) 설립이다.

이 새로운 부서의 이름은 1967년 발표한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천명한 가치, 즉 우리의 참된 발전은 물질적일 뿐만 아니라 영적, 정신적이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그러한 발전을 온전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는 명제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부서는 단순히 바티칸의 그 복잡한 관료제에 새롭게 추가한 부서가 아니라 20세기 가톨릭의 사회참여라는 거대한 흐름-이 흐름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 나중에 바오로 6세가 되는 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몬티니다. 이 문제적 인물은 나중에 다시 언급될 것이다-이 맺은 결실로 평가해야 한다.

한참 바티칸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중심으로 이주 난민 이슈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각국의 주교회의들에 이주 난민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라고 촉진하며 온전한 인간발전부를 설립하여 이러한 노력을 총괄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 국제 사회에서 이주 난민에 관하여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주와 난민은 비단 현재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소위 세계화에 따라 국가 간 장벽이 낮아지면서 1990년대 이후 거대한 이주 흐름이 뚜렷해졌다. 이 흐름은 분명한 특징이 있었는데 국제정치학에서 남반부에서 북반부로의 이주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즉 저개발 국가에서 이른바 선진국으로의 이주인데, 문제는 이 흐름이 1990년대 이후 전혀 통제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특히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던 나라들이 유럽 국가들과 북미 국가들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지중해를 건너 유입되는 이슬람 이주민들로, 그리고 북미 국가들은 남미 이주민들로 인하여 거대한 인구학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 국가들과 북미 국가들은 출산율 저하로 이러한 이주를 완전히 배척할 수만은 없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주 난민 이슈는 매우 복잡하게 꼬여 버렸다. 인구감소에 따른 노동력 확보라는 경제적 측면, 그리고 식민화를 당한 이들과 식민화를 한 이들 사이의 문제라는 국제정치적 측면, 또 인권적 측면으로 매우 복잡하게 흘러갔다.

아무도 손댈 수 없어 보이던 이주 난민 이슈는 2016년 9월 분수령을 맞았다. 각국 외교관들과 국제기구, 민간단체 대표들이 이주 난민의 인권 보호와 안전한 이주에 관하여 포괄적인 국제 협정을 제정하기로 합의 본 것이다. 이것이 뉴욕 선언이다. 이 뉴욕 선언이 계기가 되어 이른바 ‘질서 있는 이주’를 위한 국제적 컨센서스 형성을 향한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이후 3년 가까이 분주한 모임을 통해 이 움직임은 이주를 위한 글로벌 콤팩트와 난민 글로벌 콤팩트-글로벌 콤팩트는 한마디로 말하면 강제력은 없는 국제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었다.

두 글로벌 콤팩트는 사실 대단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것이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집권 정당이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에 따라, 그리고 대통령과 의원들의 성향에 따라 이주와 난민에 대한 입장이 판이하게 달라지며 결국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이 글로벌 콤팩트에 반대하였다. 또한 유럽 연합 내부에서도 대부분 국가는 찬성하였지만 폴란드와 헝가리는 반대하였다. 이러한 우여곡절에도 글로벌 콤팩트라는 이주 난민에 관한 문서화된 포괄적인 약속이 나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바티칸이었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뉴욕 선언과 글로벌 콤팩트 사이의 기간 동안 바티칸은 부단히 이주 난민을 위한 여론 변화와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새로운 부서를 만들고 수많은 네트워크를 동원하였는데, 2016년 이후 그 노력의 상당수가 바로 글로벌 콤팩트의 탄생에 집중되었다. 실제로 글로벌 콤팩트가 나오기 전인 2017년에 바티칸의 온전한 인간발전부는 ‘글로벌 콤팩트를 위한 20가지 실천방안’이라는 문서와 ‘난민과 이민을 위한 20가지 사목행동 지침’이라는 무서를 배포하였는데 이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빠른 대처였다. 글로벌 콤팩트 제정에 참여한 많은 이는 두 글로벌 콤팩트 제정에 기여한 나라로 멕시코와 스위스와 함께 바티칸을 꼽고 있는 것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바티칸은 이주와 난민에 대해서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일까? 왜 가톨릭교회는 이주와 난민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 때문에? 이는 적절한 답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주 난민에 대해서 뚜렷한 입장을 표명했고 분수령을 마련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황의 기여는 현실 국제정치에 교회가 뛰어들었다는 것으로 정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전부터 교회는 이주와 난민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하자.

김민 신부(사도 요한)

예수회 한국관구, 예수회 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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