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냉전시기 사고가 불러온 결정
신뢰와 대화 통한 평화, 더 멀어졌다

11월 21일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
11월 22일 남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1조 3항) 효력 정지
11월 23일 북한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파기 선언

남북 간 상황이 급박하게 위기로 치닫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2일, 북한이 제1호 군사정찰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밝히면서, 즉각 ‘9.19 남북군사합의’(이하 9.19합의) 1조 3항에 대한 효력을 정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통일부는 ”북한 안보 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효력을 정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효력 정지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묻고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9.19합의는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정상회담을 통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4.27 판문점 선언’에 담긴 비무장지대(DMZ) 비무장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군사당국자회담 정례화 등을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다.

효력 발생 조항을 포함한 6개 조항으로 구성된 9.19합의는 남북이 “지상,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을 일으키는 근원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1조),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질적 군사적 대책 강구”(2조),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 모색”(3조), “교류협력과 접촉, 왕래 활성화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대책 강구”(4조),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조치 강구”(5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효력을 정지하기로 한 조항은 1조 3항으로, 남북 군사분계선 상공의 공군 완충구역으로 전투기, 헬리콥터 등 기종에 따라 비행금지구역을 두고, 이 구역에서 비행, 미사일 사격 등 전술 비행을 금지한다는 조항이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교류 증대”, “군사긴장 완화”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핵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제공 - 공동취재단)<br>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교류 증대”, “군사긴장 완화”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핵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제공 - 공동취재단)

한국 정부의 1조 3항 효력 정지에 대해, 북한 국방성은 다음 날인 23일 “(남한 정부는)파기에 대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으며,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21일 북한이 발사한)군사 정찰 위성은 날로 우려스러워지는 조선반도(한반도) 주변에서의 적들의 각이한 군사적 행동들을 엄밀히 감시하고 그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한 자위권에 해당한 조치이며, 합법적이며 정당한 주권 행사"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군사분계선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해 채택한 합의서 정신에 전면 도전해 각종 군사적 도발을 전방위적으로 입체적으로 계단식으로 확대해 온 주범은 명백히 대한민국"이라며 자신들이 아닌 "남한이 합의 정신을 위반"했다고 했다.

한편,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9.19합의가 한국에 전술상 불리한 내용이며, 한국만 이를 이행하고 있다며 파기 또는 효력 정지를 주장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4일에도 북한 무인기 사태를 들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1월 26일 통일부는 “실제 북한의 영토 침범이 있을 경우 효력 정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10월 신원식 국빙부 장관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주장하고,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9.19합의가 “남한 정찰 자산 운용을 과도하게 막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사전에 포착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남한 정부의 9.19합의 일부 효력 정지와 북한의 파기 선언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또 9.19합의가 남한에 불리하다는 것은 어떤 맥락일까.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11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북한이 효력 정지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 국방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11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북한이 효력 정지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 국방부)

9.19합의 파기는 남한 정부가 먼저, 북한에게 더 유리한 결과
협정 파기로 남한이 얻을 수 있는 것 없어, 더 불리하다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는 “9.19합의 파기가 오히려 북한에 더 유리하다. 이는 서로를 무력의 장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며, 우발적 도발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우려했다.

한국 정부가 효력 정지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대략 3가지다. 북한이 그동안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과 이번 정찰 위성 발사, 그리고 한국의 정찰 수행 작전에 합의 내용이 방해된다는 것이다.

정 신부는 정찰 위성을 쏜 것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 맞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마땅하고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없어, 9.19합의에 제동을 건 것이라면서, 남한 정부가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걸고 효력 정지를 시켰지만 사실상 남한이 먼저 협의를 파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9.19합의 때문에 남한의 정찰 활동 등이 위축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면서, “한국 정부는 군사분계선 안에서 그동안 북한이 합의를 어긴 수가 3600번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만큼을 감찰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감시 감측 기술뿐 아니라 미국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효력 정지와 그에 따른 파기 선언에 대해, 정 신부는 “접경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협의에 따라)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은 남한에 유리한 것이다. 협의 파기는 역설적으로 북한의 군사 행위를 허락해 주고 열어 준 꼴”이라며, “이번 합의 파기는 잘못된 상황이며, 긴장을 더 높이는 것이고 무력 도발을 막는다는 목적이라면 적절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 입장에서도 평화는 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그러나 이번 합의가 파기된 상황은 과거에 쌓아온 신뢰를 깨버린 것이고, 다시 그만큼의 신뢰를 쌓기 훨씬 어려워졌다. 대화나 신뢰를 통한 평화라는 부분에서 뒷걸음칠 친 것”이라고 말했다.

백장현 박사(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는 9.19합의 효력 정지의 이유가 북한이 먼저, 수없이 어겼다는 것이라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다면서, “북한이 9.19합의 외에 정전협정을 어긴 횟수는 그 이상이다. 그럼에도 정전협정은 더 복잡한 사안 때문에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9.19합의을 파기해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백 박사는 9.19합의이 남한에 불리하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에 대해, “2018년 협정 당시, 국방부는 남북의 정찰 능력을 평가하면서, 한국의 시력이 1.5에서 1.4가 됐다면 북한은 0.4에서 0.1이 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며, 한국은 정찰위성, 드론, 비행기, 감청 수단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협정에도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는 당시의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9.19합의는 무력시위를 중단하고 서로 평화적 노력을 하자는 ‘안전핀’이었다면서, “다시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면, 남는 것은 무엇이고, 얻을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언제든 무력시위, 분쟁이 가능한 상황이 된다는 것은 외교, 경제 등 대외의존도가 높은 남한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북한이 어긴다고 해도 지키라고 압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중국과 선을 긋고 미국과의 관계에 전력하는 윤석열 정부의 냉전 시기 사고방식으로 외교 방향이 파탄 난 상황이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행보를 자유롭게 했고,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맺은 북한의 군사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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